어느덧 두 번의 설렘이 지나가고 이제 내겐 주어진 설렘은 단 한 번, 그 귀한 설렘을 가슴에 가득 안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우리 부부는 평소 여행을 즐겨하기에 여행 준비에 대한 걱정은 없는 편이다. 떠나기 전 휘리릭 한 보따리 싸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난생처음 방문하는 호주, 그것도 인구 밀도가 낮기로 유명한 서호주로 떠나야 하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서호주 국민의 70프로가 거주한다는 퍼스를 제외하고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만발의 준비가 필요했다.
겁 많은 우리 부부가 겁 없이 덜컥 캠핑카를 렌트한 이유도 바로 그러했다.
숙소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기에 일단 잠잘 곳을 확보해야만 여행 계획이 가능했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개기 일식이다.
2023년 4월 20일 개기일식은 서호주 엑스마우스라는 마을에서 볼 수 있기에 개기 일식을 보려면 그곳으로 떠나야 했다. 개기 일식 하나 보자고 그 먼 서호주를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했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각 세계인들이 그 작은 마을로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숙소가 부족했고, 캠핑장도 1년 전에 동나버린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골프장 주차장에 머무를 수 있었지만 전기와 주방, 물 등을 사용할 수 없는 주차장 따위를 꽤 비싼 값으로 대여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좀 아쉬울 따름이다.
바가지요금은 어느 나라나 국룰인 걸까?
뭐... 전기가 안 들어온 덕분에 더 멋진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며 심심한 위로를 해본다.
캠핑카가 있다고 해서 아무 곳에서나 막 잘 수 있는 건 아니다. 정해진 캠핑장에서만 정박이 가능하다.
물론 기가 막힌 포인트를 잘 찾는 고수들은 아무 곳에서나 비박이 가능하겠지만 우리 같은 초보는 어림없다.
숙소를 예약하듯 미리 캠핑장을 예약해야 했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급히 밥을 챙겨 먹고 그 캠핑장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 호주는 땅덩이가 넓어 이동거리가 6~7시간은 기본이었다.
자칫 게으름을 피우다 해가 져버리면 살 떨리는 야간 운전을 해야겠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야행성인 캥거루를 만나는 것도 두렵지만(도로에 죽어있는 캥거루 사체들을 너무 많이 봐서), 반대편에서 오는 거대 화물차량은 공포 그 자체였다.
느긋하게 움직이다가 야간 운전을 맛본 이후 우린 부지런한 부부가 되기로 했다. (야간 운행 시 만났던 캥거루야, 우리 차로 뛰어들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마워. 흑흑.)
로드 트립은 상상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집을 지고 평생을 떠도는 달팽이에게 연민과 존경심이 생길 정도로 집을 달고 다니는 건 고되고 힘든 여정이었다. 역시 낭만은 현실과 공존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 여행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낭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밤에 화장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가장 낭만적이었다.
세상 어느 부부가 밤에 손 잡고 화장실을 간단 말인가!
매일 새벽 깜깜한 밤하늘의 반짝이는 은하수를 따라 남편 손을 꼭 잡고 화장실을 다니던 순간들은 그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좋아하는 맥주도 안 마실만큼 밤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섭고 귀찮았지만 밤하늘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감동 그 자체였다.
살면서 그렇게 수많은 별을 보게 될 줄이야.
매일매일이 별들이 향연이었고, 경이로운 축제에 초대받은 이방인은 그 찬란한 별과 은하수를 마음에 담으며 별사탕처럼 달콤한 잠에 빠져들곤 했다.
힘들었던 현실이 낭만이 되고, 낭만마저 현실이 되는 것이 로드 트립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빨래도 낭만으로 느껴진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빨랫줄은 신의 한 수였다. 혹시 몰라 챙겼던 빨래집게도 너무 유용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빨래집게는 필수다.
미처 빨래집게를 챙기지 못한 여행객을 위해 마지막 캠핑장에 빨래집게를 기증하고 왔다.
나는 떠나왔지만 나의 빨래집게들은 호주에서 펄럭이는 빨래들을 고정시켜 주며 본연의 임무를 다하며 살아가고 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