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리 Sep 20. 2023

글이요? 그냥 쓰면 됩니다

얼떨결에 시작된 글쓰기 수업

어떤 분이 내게 반색을 하며 물었어.

"작가라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당히 당황스럽곤 해. 그다음 물음은 뻔하거든.

"그래서 어떤 거 써?"

"뭐 썼어?"

"유명해진 거 있어?"

작가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네! 라고 대답했다가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난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아주 소박한 작가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작가냐는 질문에,

"그냥 뭐..."

말을 흐리는 습관이 생겨버렸지.

이번도 마찬가지였어. 대충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분이 날 잡는 거야.

"우리 조카도 작가야.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써서 책도 많이 냈다나 봐."

"아, 네..."

그래서 자기는 어떤 글 써? 책은 냈어? 

다음 쏟아질 질문을 예상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닌 거야.

대충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분께서 이런 말을 하셨어.

"부럽다. 글 잘 쓰는 사람."

툭 내던지듯 한 말이지만 그 말엔 진심이 묻어 있었어. 

그제야 나도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을 바라봤어.

희끗한 머리에 세월의 나이테처럼 깊게 파인 주름을 보니 예순은 족히 넘어 보였어.

하지만 청아한 음색과 미소는 영락없는 소녀였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초롱초롱한 눈에서 밝은 에너지가 막 뿜뿜 하는 사람.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분의 진심 어린 고백에 나 또한 진심으로 다가가게 되더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그냥 쓰시면 돼요."

그분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부하며 말했어.

"글은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야. 난 그런 재능 없어. 못 써."

"재능도 필요하지만 쓰는 게 더 중요해요. 아무 거나 일단 써보세요."

내 말에 그분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셨고, 난 그분이 떠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어.

그분 말씀대로 글은 재능이 필요할 지도 몰라. 

나한테 그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시절이 떠오르더라.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버린 숱한 시간들이 반성되면서 말이지.

글은 무조건 써야 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쓰고 또 써야 하는 거야.

내 안의 내가 내게 소리쳤어.

"재능 운운하며 떠들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란 말이야!"

 

만나는 사람마다 스승으로 알라.

 

괴테의 말처럼 난 스승을 만났는지도 몰라.

바람처럼 스쳐갔던 그 스승 덕분에 정신 차리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

재능도 노력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잖아? 

글 쓰는 걸 즐기자.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처럼.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글 쓰기 수업에서도 이렇게 말할 생각이야.

그래. 일단 써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속이 시끄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