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자분께서 따님과 통화를 하신다.
"아빠가 데리러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평소 아무렇지 않게 듣던 단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잊고 있었던 단어.
아.빠.
아빠에 대한 정이라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아왔던 아이는
상상 속 아빠처럼 자상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빠처럼 든든하게 날 지켜주는 그를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아빠처럼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아내가 엄마 대용이 아니듯,
남편도 아빠 대용이 될 수 없다.
남편이랑 트러블이 잦은 날이면 아빠라는 존재가 그리워진다.
날 낳아준 생물학적 아빠 말고,
막연한 상상 속,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딸바보 아빠.
평생을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아빠란 존재가 사무치게 그리운 걸 보니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아니, 죽도록 외로운가 보다.
세상에 내 편이 되어줄 가족이 단 한 명도 없기에 이런 그리움이 솟구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혼자라지만
이 세상에 진짜 나 혼자 남겨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평생을 미워하던 원수 같던 가족마저도 그리워진다.
어린 딸에게 사랑 대신 상처만 가득 남기고 떠난 아빠.
저 세상에서는 부디 딸의 행복을 빌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