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명절이 싫었어.
연휴라 늦잠을 자고 싶은데, 엄마는 큰집에 가자며 아침부터 성화였거든.
우리 집에 친척들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큰집 가서 명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면 싸우거나 스트레스 주는 어른들도 없고,
아침에 일어나 1시간 거리인 큰집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왜 그리도 싫었는지.
엄마는 평소 굳건한 성품이셨지만, 명절만 되면 엄청 외로움을 타셨어.
늘 가족이 북적이는 집안을 부러워하셨지.
그래서 명절마다 빨리 큰집에 가자며 재촉했는지도 몰라.
결혼을 하고 나니 명절이 더욱 싫어지더군.
그런 엄마를 덩그러니 혼자 두고 시댁에 가야 했거든.
엄마는 명절 당일 외롭게 혼자 아침을 차려 드셔야 했어.
점심을 먹고 시댁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모시고 큰집으로 갔어.
하루에 두 탕을 뛰려니 귀찮았지만 엄마를 위해 가야만 했지.
사실 남편에 대한 복수심도 살짝 섞여 있었어.
시집살이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시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한 건 사실이잖아.
시댁에서는 노예처럼 일만 하지만,
우리 큰집에 가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온다는 사실에 쾌감이 들더라고.
어렸을 때부터 우리 외숙모는 나한테 일을 안 시켰어.
죄송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하려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지.
(나도 귀한 집 자식이었다고!)
날 그렇게 아끼시던 집안 어른들도 세상을 떠나시고,
엄마마저 이 세상을 안 계시니 더 이상 마음 기댈 곳이 없어지더라.
터를 잃은 실향민이 된 기분이랄까.
명절마다 뭔가 공허한 느낌이야.
광활한 대지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가족이라 믿었던 사람에 대한 믿음마저 희미해져서 더 그럴지 몰라.
엄마가 느꼈을 그 외로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도 명절이 계속 싫어질 것 같아.
평소에는 못 느끼고 살던 외로움이 먹구름처럼 짙게 내 마음에 스며드니까.
명절같은 거, 없어졌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