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저것도 특출 나게 잘난 것 없는, 그런 애매한 인간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애매함은 명확해졌다.
어린 시절 나의 꿈, 주변의 기대감을 발판 삼아 올라가던 계단은 곧 취업이라는 에스컬레이터로 변하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그것은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지하철 안에 있는 수평 무빙워크 같은 것임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열심히 해야 중간이라도 간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이란 무엇일까. 결국 '중간'이라고 표현되는 어떤 바운더리 안에 들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일까.
지방 평준화된 지역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적당히 공부를 잘했지만 그렇다고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는' 이런 타이틀의 우등생은 아니었던, 살면서 치렀던 다양한 시험에 합격은 했지만 손가락 안에 들어본 적은 없었던, 눈코입 다 가지고 태어났고 'oo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말은 들어봤으나, 정말 괜찮기만 했었던,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나는 유리 멘탈의 소유자였던 것,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
이런 나를, 어중간한 사람 1,2,3,4.... 중 14,000번째 언저리 즈음이라고 표현하면 되었을까.
사회로 나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업무량이 많아질수록, 내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늘어날수록, 그와 비례하여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의심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특히 직업과 관련된 의심이 주를 이루었는데, 팀원들 없이 나 혼자서도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곧 팀장이 될 연차가 되는데 내가 팀원들을 통솔할 수 있는가, 내가 모셨던 팀장님들과 같이 어른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내가 그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뭐 이런 의심들 말이다.
음악이면 음악, 스포츠면 스포츠, 이렇게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든 것도 아니고, 적당한 서류 작업, 적당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적당히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을 활용하는 나의 일은, 나라는 존재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잠시 쉬게 되었고,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돌아서는데 드는 생각은.
'아 역시 별거 아닌 일이었네, 내 일.'
일을 쉬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숱하게 고민했던 지난 순간들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적고 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짐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려온 8년의 사회생활이 잠시 일시정지되었다. 이 일시 정지된 기간 동안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조금 더 깊이 있게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고싶은데, 그게 가능할까. 다시 돌아갈 그때가 되면,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