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과 외향 사이
나는 어렸을때부터 실전에 약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평소 시험을 잘봐도 모의고사 때는 원래보다 점수가 안나오는 스타일이였다. 음악 실기 시험을 위해 방에서 피아노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제법 멋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문 밖에서 듣고 있던 이모가 라디오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실기 시험때는 반에 반에 반도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다. '아니, 이 정도로 망친다고?' 당혹감과 창피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진하게 경험했다. 학창 시절 시험때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설사를 해댔고, 아침부터 미지근한 물 외에는 아무것도 하루 종일 먹지를 못했다. 교복 치마의 허리 벨트도 자극이 되니 시험 중에는 풀어놓아야만 했다. 그 외에도 잘하고 싶은 욕구,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중요한 순간에 실력을 발하기는 커녕 다된밥에 재뿌리고, 뒤집어 엎어 밟아버리게 까지 만들었다.
이런 나이기에 긴장감이 없어보이는 외향형 인간들을 보면 솔직히 부러움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예전에 비해서는 여유를 찾았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내 속에는 잔치날만 되면 맛난 음식을 거부하는 설사 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 지난번 중요한 미팅에서도 내가 뭔가 말을 던져야 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던질 말을 찾지 못했고, 애매한 공백의 시간엔 다들 나를 주목하는게 싫어 눈을 아래로만 깔고 있었다. 이럴 때 한마디 딱 치고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까지 준비하고, 진행하고, 고민한 것들이 많은데, 이게 제대로 한방에 표현되는 과한 액션이 나오질 않으니 때론 답답하고, 소심해지기도 한다. 과한 목소리가 싫지만 인상적인 목소리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뭔가 소심해보이는 내향적 온도를 가지고 있는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때는 누구보다도 주도적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를 보면 100% 내가 외향인줄 안다. 같이 일해본 파트너들이 내 일하는 모습에서 100% 외향성을 감지하고 나면(착각이지만 그들은 같은 부류라고 확신한다), 좀더 사교(?)적 관계로 진보하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나의 내향성을 들키기 전에 은근슬쩍 갖가지 핑계로 일 외의 시간에서는 잠수를 타버린다. 일을 가지고 논의를 하면 몇 시간이고 내 발언권을 지키며 장악권을 놓지지 않을 수 있지만, 사적인 대화나 사교적 대화에는 몇 마디 존재감 없이 힘들게 버텨야만 한다. 사회적 시간을 보낸만큼 홀로적 시간을 보내주어야 에너지의 균형이 맞춰진다. 이런 형국이니 문득 '아니, 사회생활하면서 이렇게 사람 안만나도 되나, 이렇게 어필안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기에 한번 맡겨진 일은 누구보다 꼼꼼하게 하고 있고, 매사에 신중한 편이며, 쓸데없는 실언을 하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극도의 예민함과 신중함에 내향성까지 합치되었으니 일을 하거나 관계에 있어서 항상 결과와 과정, 이해관계, 타이밍 등 모든 면을 신경쓰고 고려했다. 이런 성격에 신뢰를 많이 받았고, 인생에서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감사한 일을 많이 배우고 경험했으며, 많은 것을 이루고 얻고 살았다. 좀더 외향적이고, 정치적이며, 시의적절한 사회성 제스츄어를 더 잘했다면 더 성공했을까? 더 만족했을까? 더 행복했을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지 않았을까?
이쯤되면 나도 나의 내향성을 극복할 의지는 없어보인다. 아니 의향이 없다. 누구보다 나의 내향성과 예민함과 긴장감을 존중한다. 내향성에서 묵힌 에너지가 일에선 주도성으로 발휘되어 뜻밖의 모습으로 비춰질 때, 그렇게 앞뒤 안맞아보이는 반전도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리더나 경영학적으로나 브랜드 측면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리더들도 내향형이 많은데? 위안이 된다. 뇌를 쉬지 않고 쓰고 있기에 나만의 생각이 계속 쌓이고, 의외로 외부의 영향을 잘 안받고, 내 고집을 고수하는 그 줏대도 좋다. 나의 내향성은 극복보다는 타협을, 주도성은 강화보다는 환영을, 그냥 있는 것을 드러내며, 내게 다정하게 그렇게 살련다. ~ 처럼 해야 하는데 하며 안간힘 쓰다가 이도저도 안된 것 말고, 나여서 내가 이래서 이런 모습이라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을 보니 조금더 열어두어도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제는 다시 모의고사나 피아노 실기 같은 걸 볼 일이 없다는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