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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수정 Apr 28. 2024

그렇게 들이대던 치과의사는 왜 사라졌을까

내 책을 읽고 메일로 컨설팅 문의를 했던 그 의사는 강남 8학군에서 자랐고, 전라도에 치과를 개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의 탄탄한 지원과 강남학군에서 자란 그는 유명한 자기계발서가 카톡 프로필에 올라가 있는 성공지향 마인드로 뭉쳐있는 사람이었다. 커피와 함께한 대화의 시작은 좋았다. 그가 꿈꾸고 있는 핑크빛 미래, 개원에 대한 포부, 병원 브랜딩에 대한 생각, 내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까지 주고받는 대화는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에는 심지어 나와 컨설팅을 하기 위해 예정된 인테리어 일정까지 전부 뒤로 미루겠다는 적극적인 자세에 약간 부담감을 느꼈지만 이내 자신감으로 바뀌면서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제시켜야만 했다. 


거기까지는 너무 완벽해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컨설팅 비용을 제시하는 단계에 다다르자 무언가 나의 불편한 마음은 그 전까지 한껏 높여놓은 대화의 온도를 급격하게 떨어지게 했다. 가격이란 ‘가치를 충분히 제안하고, 그 가치보다 싸게 느껴지게 하면 그것이 탁월한 가격 제시이다’라며 의사들에게 멋지게 슈팅하라고 설명했지만, 그 날 나의 슛은 골인은 커녕 맥없는 헛발질로 골 근처에도 못간 격이었다. 아니 헛발질도 모자라 내가 그 앞에서 고꾸라져 넘어졌다는게 더 어울렸다. 그 의사가  ‘대표님이 가격을 얘기할 때 뭔가 머뭇거리는 걸 느꼈다, 그런데 자신있게 제시하셔도 된다, 대표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도리어 내게 가르쳤으니까. 애써 미소를 유지했지만 당황했던 기색을 감추기엔 내가 너무 솔직했다. 그리고 '내게 당신의 컨설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 그였지만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고객의 기대를 높이지 말라는 말이 있다. 기대가 높아진 만큼 만족시키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고객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초반 기대관리를 한다. 초반에 기대를 높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받은 것 이상의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무의식은 계약을 해도 5초의 기쁨만을 줄 뿐 이내 부담감으로 바로 전환시켜버린다. 어쩌면 나는 이 치과의사와 계약을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성공개원을 위해 서울에서 지방을 오며 가며, 밤새워 마케팅을 공부하고, 자금조달을 이렇게 저렇게 애써 하고 있단다. 그의 구체적인 포부와 간절한 기대와 당찬 욕심까지도 본 상황에서 내 무의식이 이 계약을 거부했던 것 같다. 지방 개원이기 때문에 초기에 잘 자리만 잡으면 성과는 낼 수 있을 것이 보였다. 하지만 성과가 나기까지 분명 '기다림'의 분량을 채워야 하는데, 그동안 이렇게 적극적이고 열정적을 넘어 조급해보이기도 하는 그의 '기대'에 이 '가격'을 받고, 부응할 수 있을지 내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내가 성공시키고 싶은 고객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느 토크쇼에서 '연기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병헌한테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하냐'고 질문하는 걸 보았다. 그는 담백하게 답변했다. 자신이 그 캐릭터에 설득을 당해야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다며, 내 자신을 설득시키는데까지의 고민과 시간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가 설득되지 않으면 타인이 설득되지 않는다'는 이 배우가 말한 단순한 명제가 이번 계약 불발의 이유를 말해주는 듯 했다. 나는 컨설팅 금액에 대한 댓가로 주어질 '고통'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설득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 계약은 해야만 한다'는 이유도, '꼭 하고 싶다'는 이유없는 설레임도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고객이 나한테 일을 전적으로 맡길 사람인지, 맡기면 기다릴 줄 아는지, 기다린 후에는 결과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지, 선한 동기가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사람이 피드백이 좋고, 일의 성과도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케팅의 성공은 무조건적인 계약보다 내가 성공시키고 싶은 고객인지 아닌지(내 경우는 나를 믿고, 기대관리가 잘되는)를 잘 분별해내는데 있다. 향후 가망 고객 미팅에는 꼭 기억해야겠다. 브리핑이 아니라 그를 인터뷰하러, 팔러가는게 아니라 선택하러 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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