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텝 이야기
오후 4시. 회사용 실내 슬리퍼를 벗고, 운동화를 신는다. 오후 4시의 바람과 공기는 오전 내내 빠듯했던 긴장감은 느슨하게 하고, 남은 오후를 위해선 다시 힘내자며 격려를 한다. 걷다가 문득 카페 앞 신메뉴를 소개하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무심히 한잔을 사들고 목적지없이 주변을 눈에 담으며 그냥 그렇게 걷는다. 꼭 달리지 않아도, 몇 키로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걷는 것이 주는 회복을 알게 된 이후 마음이 답답해지면 그렇게 운동화로 갈아신는다.
원래부터 이렇게 걷는 걸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워낙 걷는 걸 싫어했고, 체력도 약했고, 운동도 너무 못했다. 심지어 수영강사는 레슨 도중 내게 “이렇게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은 처음봤어요!“라며 운동을 배울 의지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려버렸다. 이런 내게 몸치라는 별명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걷기를 포함해서 운동이나 몸으로 하는 활동은 항상 거리를 두었다.
일의 중압감이 점점 커지고, 해야할 일도 눈덩이처럼 커져갈 즈음 작은 일에도 충동적으로 화를 내고 사람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 높아져가는 걸 느꼈다. 처음엔 매월 맞이하는 호르몬 변화 수준의 감정의 잔잔한 파도였는데 어느 날부터 큰 태풍이 되어 나의 정상적인 일상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은 ‘앉아만 있지 말고, 좀 일어나 나가라. 바깥 바람 좀 쐬고 걷고 오자’며 소매를 끌어당겼다. 귀찮아하며, 못 이기는 척 일어났지만, 그 때부터 일상에 변화를 준 걷기 일상에 들어서게 되었다.
걸을때는 언제까지 어디를 가야한다는 목적의식이 없이 나아간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느낌도 매번 다르고, 늘상 가던 길도 새로움 투성이고, 단 한번도 같은 공기였던 적이 없다. 걸을 때 나는 시각보다 후각이 더 예민하게 반응해서인지 이젠 방배동 근처의 오후 4시의 냄새가 어떤 것인지 머릿 속에 있다. 아마 미래의 언제가 이런 비슷한 냄새를 맡게 되면 요즘 이 동네를 걷던 이 기억을 되살릴것 같다. 누군가 들숨과 날숨이 끝나면 죽음이라고 했다. 날숨 후 들숨이 되지 않는 그 날 그게 죽음인 거다.
그 말을 생각하며 다시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포복을 넓혔다. 들숨에 집중하면 공기가 들어오는 만큼 살 날이 있다는게 감사하다. 그냥 부담없이 한 두걸음으로 시작한 걷기였지만 걷는 행위는 꽤 쓸모있는 시간이 되었다. 왜냐하면 걸으면서 고민이 해결되기도 하고, 미웠던 사람이 이해도 됬으며, 조금 더 웃었고, 척추와 등의 통증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언가가 정리되고, 깨끗해진 심상으로 돌아오니 걷는 건 마치 청소와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작은 방법 하나를 찾았다. 감탄이 늘어나고, 불필요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삶이 풍요해진다. 감사는 깊이 들이키고, 후회나 욕심은 날숨에 멀리 뱉어버리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전력질주 하듯가면 100미터 밖에 못간다. 오래가려면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24시간 중에서 하루의 걷기, 이 시간은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계기판이다. 오늘 하루 중 떨쳐야 할 건 버리고, 고마움을 품어야 할 것엔 감사인사를 한다. 4시의 짧은 들숨날숨, 그렇게 오늘도 스몰 스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