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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Oct 26. 2023

당신 때문이었다. 결혼.

- 당신 덕분이었고 -


무뚝하게 반으로 잘린 바나나.

먹다 말살그머니 봉지 속에 안겨온 밤만쥬.

부랴사랴 나가 차가워진 손에 들려온 따끈한 호떡.


당신이 무심히 건네준 이런 것들을 나는 여전히 좋아한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과일은 사치라며 야무지게 지갑을 닫았다. 이런 스크루지 며느리를 간파한 시어머니는 주말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챙겨 보내주셨다. 거기에 더하여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기에 며느리 손에 무사히 닿을 수 있고 내가 반드시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과일도 함께. 


그렇게 결코 돈을 주고 사 먹을 턱이 없는 바나나를 사고서는 반으로 가른 다음, 둘 중 송이로 골라 아이들 편에 보내주신다. 한 송이를 통째로 보내면 다 먹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정녕코 반송이. 그리고 본인이 먹을 것을 사는 김에 넣은 거라고, 부담 갖지 말라는 마음까지 담아 보내쿨한 반송이인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며느리가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지혜로운 거짓말쟁이 어머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다부지게 나를 먹여내셨다.

그렇게 집안에 갇혀 있던 나를 치유해 주셨다.



바나나는 원래 달콤한 거지. 하지만 꺽둑하게 잘려 먼 길을 달려 반송이의 바나나 중에 하나를 뽑아 먹으면 들러는 동안 시간과 사랑에 숙성된 일까, 갈색으로 달려가는 노랑의 맛에 마음까지 진득하게 뭉그러졌다. 당신의 당부대로 매일 하나씩 노랑빛 사랑을 동당 뽑아 먹었다.

당신이 챙겨준 약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당신은 더없이 깊은 마음으로 나를 도닥였다. 부러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 말로 채근하지도 않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포근하게 보듬어주었다. 

그런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을 떡을 만들어 파셨다. 손주들이 생기고는 가게를 닫으셨고. 과자를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출출할 때면 떡을 크게 만들어 냉동실에 소분해 두었다가 간식으로 꺼내드셨다.


그러다 과자와 같은 것들을 받으면 군것질을 주식으로 하는 며느리가 떠올랐을까. 몇 개 들어있지도 않은 조구마한 봉지 하나를 뜯어 맛보시고 나서, 맛있으면 내게 가져다주셨다. 아이들이 찾지 못할 곳에 깊게 숨겨주시기까지. "먹을만하더라. 밥 먹기 싫을 때 이거라도 먹어."


갓 태어난 아기주먹만 한 '만쥬', 이름만큼이나 살보드라웠다. 맛보다 그 보드라움이 입에 남아 지워지질 않았다. 그러고는 는 김에 해온 거라며 국과 반찬들을 가득 내어놓으셨다.


차를 몰아 30분을 달려온 이유가 만쥬가 먼저였는지 수가지의 반찬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지만, 뭉클해지는 마음을 전해줄 무언가가 내게 없었다. 퉁퉁 불은 얼굴을 보고서애써 내게 묻지 않으셨다.


고이 돌아 반찬통을 정리하시는 당신 등에 고요히 감사하다고 조아릴 밖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보글보글 물을 끓이고 아껴두었던 잔을 꺼내 뜨끈한 커피를 타드렸다. 그리고 내 것까지 만들어 아껴두었던 남편의 얘기들을 보글보글하게 내어드렸다. 미주알고주알 내지 않는 아들의 일상 중에 빛나는 얘기들로만 골라 들려드리면 당신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환해졌다. 


그 빛이 마음어둠조금씩 몰아냈.




토요일, 내가 화실을 가는 이면 으레 시부모님은 아이들만 기다리신단다. 죄송천만한 나마음으로는 끼니든 청소든 더 몸을 쓰실 것을 알기에 말리지만, 남편과 아이 은 당당하게 시댁을 방문한다.


본인들이 오는 것을 가장 좋아하신다며 거침없이 방문해서는 냉장고 도깨비처럼 먹을 것들을 다 비우고 오는데, "이렇게나 잘 먹으니 요리할 맛이 나지!"시어머니의 문장은 사실일까. 


"애들이 얼마나 예쁜데. 애들 오는 날엔 잠을 제일 깊게 자. 얼마나 잠이 잘 오는 줄 알아?"

나는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더 쓰이는 걸까.



십 년지나도록 아니 시간이 갈수록 격해지는 손주 사랑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는 가게는 두셨다가 아이들 오는 날에 들러 먹을 것들 오신다.


아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 호떡을 다 먹고 맛있다고 하니, 집에 돌아갈 시간에 맞춰 따끈한 것으로 다시 사 오셨다. 

"이건 너희 먹지 말고, 엄마 드려."

당부하시며 아이 손에 검은 봉지를 쥐어주셨다.


아이들이 겨우 참았다며 뜯지 않고 내게 건네준 봉지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방금 주신 것처럼 데워 호 불어 먹었다.

전해주신 그 마음 고대로 삼켜내고 싶어서.


그렇게 당신은 오늘도 이유 없는 나의 우울과 부재 대해 채근하지 않고 나를 먹이고 일으켜 주었다.




언젠가 내가 시어머니라는 자리에 도달하는 때가 온다면 당신과 같이 근사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결코 자신이 없다. 당신의 아들과 동일한 직장에서 일하다 뛰쳐나와서 내내 집의 한 구석에서 범접불가한 우울의 아우라를 풍기며 지내는 며느리를 당신과 같이 대할 수 있을까.


상상은 쉽다. 그래, 나도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 나 자신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내어줄 근사한 마음이 없다. 내어주려는 순간 되려 상대를 더 어둡게 칠해버릴까 봐 불안하고 두려울 .

그러니 이것만큼은 정말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당신으로부터 비밀히 배우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이 없는 먹는 것안부나 걱정하는 말들을 대신하여 언어 그 이상의 온기를 전할 수 있음을, 비싸지도 않고 모양이 사소하고 수려함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사랑이 담긴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것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 그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내가 당신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듯 당신도 기꺼이 그러함을 느낀다.



언젠나도 당신과 같은 존재이고 싶다. 사소한 달콤함으로 거대 달콤함을 표현해 낼 수 있부모이자, '때문'이라는 단어보다는 '덕분'이라는 말이 더욱 다정하게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고 싶다.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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