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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마음 Jun 29. 2024

죄책감을 안다.

나도 모르게 쌓여버린 죄책감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편두통이 있으시다고 했다. 뇌출혈 발병 후 재활치료 내내 혈압도 없으시고 머리쪽으로 큰 이벤트가 없으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며 생활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 갑자기 시작된 편두통은 같은 나이대에 평균 혈압보다 더 높은 혈압수치를 동반했다. 아빠의 걱정어린 전화로 엄마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대학병원을 예약했지만 예약환자가 밀려 다음달 쯤은 되어야 예약진료를 볼 수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급한대로 현장접수가 가능한지를 물었고 가능한 현장접수일자를 받아들어 일자가 도래되길 기다렸지만 점점 기력이 쇠하시는것 같은 느낌에 이튿날 바로 지역 의료원에 찾았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친정동생이 대신 받았다. 일전에 엄마 머리를 손질해드리러 방문했던 친정에서 동생과 크게 다투었던 일이 있었다. 나는 짐짓 긴장하며 전화를 했다. 엄마를 모시고 의료원에 가려고 한다 얘기하니 동생이 본인이 의료원에 모시고 가겠다 이야기 했다. 동생과 엄마가 함께 의료원에 가는 모습을 그려보다 중간에 감정조절이 안되어 엄마한테 말을 쏟아내는 동생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도 곧바로 그리 가마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친정동생과 엄마 아빠는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그 인근 동네에 살림을 차렸다. 친정집에 이런저런 일이 있으면서 차라리 내가 더 먼 곳에서 살림을 차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친정 집 근처에 살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그곳으로 쫓아가는 생활을 6년 가까이 했다. 하루는 가까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고, 하루는 버겁다 싶은 생각이, 하루는 내가 굳이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에 살아도 관여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싶지만 내 성향상 그게 되지를 않으니 나또한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대충 집안일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병원에 가는길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와는 달리 화난 목소리로 "왜!" 전화를 받는 탓에 온몸이 다시 뻣뻣하게 굳었다.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지 싶었지만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 출발했노라고 이야기를 했다. 알았다며 전화를 확 끊어버리는 탓에 역시 내가 모시고 갈테니 너는 니 일을 봐라 이야기하는 것이 나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신경과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병원 로비에도 신경과가 있는 병원 통로에도 가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전화를 다시 걸었더니 이번에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신경과에 있노라고 이야기를 한다. 조심스레 신경과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동생과 엄마가 보였다. 동생과는 저번 다툼 이후로 첫 만남이었다. 저번에 다툼이 내 입장에서는 제법 큰 다툼이었던지라 동생을 바라보는데 몸 안에서 불편함이 확 밀려왔다. 불편함을 애써 감추며 교수님과는 어디까지 이야기 했느냐고 묻고 엄마의 상태에 대해 교수님으로부터 나머지 설명을 들었다. 


최근 편두통으로 잘 드시지도 주무시지도 못한 엄마는 수액을 맞으러 주사실로 가셨다. 어색한 나와 동생만 덩그마니 병원 로비에 남았다. "커피한잔 마실래? 내가 살게" 하며 먼저 제안한 동생이 병원 구석에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민트초코라떼를 시키고 동생은 카라멜마끼야또를 시켰다.  음료를 받아들고 내친김에 나는 크로크무슈도 하나 주문했다. 원형 탁자에 앉아 나는 동생에게 살짝 물었다. 


"엄마 모시고 온다고 고생 많았어. 근데 있지, 아까 무슨일로 기분이 나빴던거야?"

"아..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않아서."

"왜 무슨일이었는데."


동생은 자기안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망할 노인네로 시작되는 동생의 불만의 시작은 아빠였다. 이제 자기는 참는 한계를 넘었다며 신랄하게 아빠를 비난하던 동생으로부터 지난번 투닥거렸던 때와 같은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그 때 동생과 날선 대화를 나눈 뒤로 거의 꼬박 하루를 편두통으로 앓아 누웠다. 왜인지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동생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했다. 


"OO야, 니가 불편하고 힘든건 알아. 그럼에도 우리는 상황에 대한 나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어."


동생이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이내 선택은 무슨 얼어죽을 선택이냐며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되받아쳤다. 동생과 아빠의 갈등의 골은 제법 깊었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것은 아니지만 어느순간부터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것의 출발은 아빠로부터 기인한 것이다라고 핏대높혀 이야기 했다. 자꾸 도 넘는 발언이 계속되자 나는 그 자리에 있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내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거리며 쳐다보는것만 같았다. 동생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남발하기 시작했다. 이 갈등의 끝은 죽음뿐이라고 신체적인 위협을 암시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단단히 마주앉아 잘 타이르면 상황이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 했던 것이 곧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동생에게는 바늘하나 꽂혀 들어갈 틈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어 틈날때 마다 보았던 책의 좋은 글귀들을 어떻게든 기억해내려 애썼다. 나를 일으켜주었듯이 동생에게도 적용되리라 믿어 매일같이 필사했던 글귀들을 생각해보려 애써도 머리는 점점 하얘지기만 했다. 


"그거 알아? 누나가 나 어렸을 적에 언어장애인이라고했던거. 맞아. 나 언어장애인이야"


얼굴이 창백히 짐이 느껴졌다. 대관절 카페에 앉아 이게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는것인지 당최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웃음꽃을 피우며 재잘거리는데 나와 동생은 외따로이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것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그 래 도 OO아, 우 리 는  상 황 을 선택 할 수 있어"

"뭐야 종교믿어?"


수치심이 확 일었다. 차를 들어 원형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언어적인 폭력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만 손에 들지 않았지 온몸으로 폭행을 당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상황을 잘 이끌어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순간 너무 수치스러웠다. 같잖은 노력으로 비춰지는 것 같고 나의 애씀이 전혀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모멸감마저 느꼈다. 


동생을 어떻게든 좋은쪽으로 개선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풀썩 꺾여버렸다. 동생의 마지막 한문장에, 니가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제와 나를 바꾸겠다고? 하는 비아냥이 묻어있는 것만 같았다.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순간 부풀었던 적개심의 화살이 내게로 와 박혔다. 어떻게든 이 대화의 통제권을 본인이 가져가려고 하는 것일거야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누가 목을 잡고 흔드는것처럼 말문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너는 가해자야. 나는 피해자고. 가해자였던 니가 내게 이래라 저래라 자격은 없어. 


부지불식간 가해자가 되버린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민트초코음료를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애써 잊으려고 했지만 동생의 말 대로 나는 어린시절 동생을 지켜주지 못하고 가혹하게 대했던 철부지 누나였다. 눈에 살기를 가득안고 거침없이 말을 쏟아낸 동생은 이제 더 내게 할말 없지? 하며 자리를 떴다.


나는 한참이나 그곳에 앉아 내게 올라온 수치심과 모멸감을 어찌할 바 몰라 그냥 반의 반도 마시지 못한 음료수의 빨대끝만 쳐다보았다. 동생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내가 무슨 기대를 한거지.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어 애 당초 엄마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는것은 내가 히야겠다 하는 마음이 오간데 없어졌다. 한참을 앉아있다 문자로 집에 갈때 엄마 휠체어 잊지말고 챙겨가 라는 말을 보내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수치심과 모멸감이 있던 자리에 분노가 일었다. 니가 뭔데 십여년도 더 된 일을 가지고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거야. 그걸 아직도 갖고 사는건 너도 문제있는거 아니야? 나이가 거의 사십이 다 되어 가는데 어디서 다 지난 이야기를 가지고 아직도 자기가 피해자니 뭐니 운운하는건 너무 비열하고 비겁한 처사 아니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몰랐다. 밖에서는 말하나 끔뻑하지 못하는 주제에 내가 지금 만만하도 내게 쏟아내는거야 뭐야. 화가 차오르고 차오르다가 갑자기 그애 말이 정말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 애의 논리대로 내가 그 때 언어장애인이라고 했던것때문에, 학창시절 뭣도 모를 때 주방에 있던 과도를 꺼내들고 너 한번 진짜 죽어볼래 하며 위협을 했었던 일 때문에, 핸드폰에 동생새끼라고 저장을 해놓았기 때문에 시험기간 도서관에서 집중이 안되 복도를 돌아다니던 동생에게 너 공부 하나도 안했으니 시험 다망칠거라고 악담을 했기 때문에, 몸을 꼬집었기 때문에, 머리를 때렸기 때문에 



그 아이 말마따나 세상을 잘 살아나가지 못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려니 치밀었던 그 분노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집으로 가는 그길 내내 나는 죄책감과 분노사이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교한 아이들을 돌보고 나의 일상을 헤쳐나가야 하는데 속에서 빵빵하게 부푼 죄책감과 분노가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선 까닭에 웃어도 웃는것 같지 않았고 먹어도 먹는것 같지 않았고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어도 마음까지는 나누지 못하였다. 



나의 이 죄책감이 정말 나의 삶의 생기를 다 앗아가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 죄책감인건지를 알고 싶다. 

나의 죄책감이라는 것이 진실로 나를 성장시키고 나의 삶을 풍성하게 가꿔줄 만큼의 힘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 

나의 이 죄책감에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있고 거짓이 담겨있는지를 알고 싶다. 




죄책감을 알고싶다. 죄책감을 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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