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고 무겁게 삶을 대하다.
의료원에서 돌아오고나서 한동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써 균형을 맞춘것들이 한순간에 어그러진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나는데 누구한테 풀길이 없어서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동생을 탓하지만 돌고돌아 화살이 내게로 왔다. 거실에 전날 야간근무를 하느라 꼬빡 밤을 새운 남편이 쇼파에서 잠을 자는지라 가슴이 터질것처럼 답답해도 찍 소리도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허공에 대고 뻐끔뻐끔 말을 내뱉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뒤척거리던 신랑이 일어나 안방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린채 눈물만 흘려보내는 나를 보고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슨일이야 묻는 내게 나는 그냥 나를 내버려 달라고 부탁했다. 신랑이 집요하게 무슨일이냐고 채근하자 나는 마지못해 병원에서 동생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동생이 날이 갈 수록 본인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신체적 위협을 암시하는 말을 계속적으로 내뱉는데 너무 두렵고 힘들다고 했다.
신랑은 가만히 듣고나서 동생에게 마음을 가다금고 다시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정말 그런생각을 갖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우발적으로 내뱉는 말인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언젠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듣는다면 두려움으로 그 상황을 피하거나 축소하거나 무마하지 말고 구체적인 계획을 되묻는것이 외려 의도를 낮춰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동생에게 전화를 건 뒤에 엄마를 모시고 잘 들어갔느냐고 묻고는 조심스레 아까 차를 마시며 주고받은 이야기에 대해 꺼냈다. 동생은 말이 없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가족을 해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만약 해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해할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동생은 스스로 화가 통제가 되지 않을 때에는 정말 그럴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확히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바 없다고 답했다.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동생하게 좀더 단호히 이야기를 해주었음 하는게 떠올랐다.
"OO야, 니가 힘들때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 그런데 만약 니가 가족구성원 중 누구에게라도 해를 입힌다면 누나는 그때 지체없이 경찰에 신고할거야. 그리고 반대로 우리 가족구성원중에 너에게 손끝만큼이라도 해를 입힌다면 역으로 누나는 그 가족구성원을 경찰에 신고할거야. 누나에게는 우리가족 구성원의 안전이 중요하거든."
내 말에 얼마만큼의 두려움이 묻어났는지는 모르겠다. 무릇 이야기는 짧고 간결해야 전달력이 있다는데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말에 점점 사족이 붙어갔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동생이 알겠다. 아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 이야기 하고는 전화를 마무리 하려고 했다. 나는 한 번 더 그런 구체적인 생각이 든다면 꼭 얘기해달라는 말도안되는 당부를 얻어내려고 전화를 끊지 못하게 막아섰다. 결국 동생이 그만하라고 짜증을 내고나서야 전화 통화는 끝이 났다.
한참 공황장애를 앓았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공황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내게 처음 공황이 왔을때에는 공황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황장애란 전적으로 의지가 약하거나 정신상태가 나약하기에 걸리는 정신질환인줄로 여겼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삶과 내가 분리되어 외따로이 있는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감각에 압도가 되어버리면 멍해져서 정말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운전중에 공황이 오면 급히 갓길을 찾아서 멈춰야 할 정도로 내 자신이 컨트롤 되지 않았다. 공황이 올 때에는 나의 의식이 신체를 떠나가는 것만 같은 감각이 들기 때문에 운전을 하는 중에 공황이 오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나의 신체를 내가 느낄 수 있도록 주변의 날카로운 것을 찾아 허벅지를 급히 찔러댔다.
어느 날엔가는 너무 힘이 들어 찾아 갔던 상담소에서 들었던 공황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공황은 약없이 완치할 수 있는 유일한 질환이라서 공황이 찾아 올때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불안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면 공황은 정점을 찍다가 자연스럽게 소거가 된다고 하였다. 그 이후로 공황이 올때마다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겪어내려고 했다. 어느순간엔가 운전을 하면서 '어?'하는 것이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공황이 찾아오면 그것을 겪어내고 놓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한번 두려움의 단추가 눌러지니 좀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 우겨 넣어 예측 가능한쪽으로 통제를 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갑자기 세상 모든것이 위협으로 느껴졌다. 동생과 겪은 두번의 마찰을 통해 시야가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쳐진듯 했다. 다시 영혼이 몸을 떠나 둥둥 떠다니는 것같은 감각에 초조함 마저 들었다.
동생과 전화를 마무리 했음에도 머리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럼에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안전하지 않아. 적색 경보음이 어디에선가 계속 울렸다. 영사기가 쉴새 없이 돌아가는것처럼 속수무책으로 한쪽에서는 예리한 도구를 들고 서있는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불안은 내가 놓고 놓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불안을 놓는다면? 불안을 놓는다는것은 이 상황 전체를 관망하거나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우야무야회피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회피하거나 관망만하다 더 큰 상황이 찾아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불안이 나를 붙들었고 나 또한 불안을 붙들었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 갔던 큰 아이가 하교를 하여 집으로 왔다. 배가 고플 아이를 위해 열심히 간식거리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마, 엄마'를 불렀다. 맥이 빠진 뒤라 아이 얼굴을 힘없이 내려다보는데 아이가 그런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배웠는데 존중은 높이면서 무겁게 대하는 것이라고 했어!"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이의 말이 내내 귓전을 울렸다. 갑자기 내가 나를 느끼는 시선이 제 3자의 것처럼 되었다. 멀찍이서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떻게든 벗어나야하는 바다의 이안류를 맞은 서퍼처럼 앞뒤 가릴 것 없이 미친듯이 팔을 허우적 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높임도 없고 무거운것도 없었다.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 질식되지 않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는 존재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곳에 있었다.
문득 문제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밖으로 나와야만 문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움 속에 있어서는 도저히 내가 나를 존중할 수 없을 뿐더러 나의 존중이 없다면 나아가 그 누구도 존중하는 마음을 낼 수 없다는 깨침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