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다. 바람이 멎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두번째 이야기를 보고왔다. 신랑이 큰마음먹고 야간 자원근무를 빼고 데려간 영화관이었다. 오늘 저녁에 드라이브갈까? 하며 묻는데 당차게 영화보러 가고싶다며 소리높여 외쳤다. 인사이드아웃은 육아의 길을 잃었을 때 나를 일으켜 준 고마운 영화다. 코로나 팬데믹시절 집에서 아이들과 오갈 데 없이 집에 콕 틀어박혀 있어야 할 때 주야장천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었다.
조금이나마 비용을 적게 들어 다녀오고 싶어 신랑과 나는 GS편의점에서 천원짜리 팝콘과 1+1 하는 음료를 사고 아이들은 직접 영화관에서 콤보세트를 사서 들고 들어갔다. 에어컨도 고장난 집에서 이리저리 널부러져있다가 오래간만에 나선 영화관 나들이가 반가웠는지 우리 네사람 얼굴에는 저마다 미소가 한가득이다.
행여 쏟아질새라 손에 든 팝콘과 콜라를 조심조심들고 자리로 향하는데 아뿔싸 막내가 기어코 팝콘을 바닥에 쏟고 말았다. 신랑의 얼굴이 일그러져 아이를 채근하려는걸 막아서고 가방에 챙겨온 물티슈를 꺼내 한곳으로 모아 비닐봉지안에 담았다. 막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함께 도우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의 불안이 그대로 느껴져서 괜찮아 하며 아이를 다독이고 자리에 앉아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함께 기다렸다.
영화는 하필 영어자막이었다. 더빙 영화로 알고 왔는데 캐릭터의 입에서 영어가 나오는 순간 막내의 몸이 베베꼬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는내내 자리를 일어섰다 앉았다하며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다.
"OO야.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자리에 앉아야 해. 다른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말야. 힘들면 그만보고 나가도 좋아. 엄마랑 같이 나가서 시간 보낼까?"
묻는데 내심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아이가 정말 나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영화는 어느덧 갈등부분에 접어 들고 있었다. 아이는 내 이야기를 가만 듣더니 고개를 곧 가로저었다. 나는 아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이에게 자리에서 이탈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에서는 불안의 감정이 라일리의 머리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불안은 라일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가설로 세우고 그것들을 대비하는데에 혈안이 되었다. 불안이 상황을 대처하는 것들은 표면상으로 옳아보였다. 불안의 시선은 항상 미래로 향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를 해야함으로 시선을 현재로부터 거두어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러니까 일어날지 일어나지않을지도 모르는 것에 온 에너지를 썼다.
영화에서 불안은 마치 나의 머릿속에 방금까지 존재하다 스크린안으로 뛰쳐 들어간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내 머릿속을 샅샅이 조사하고는 저곳에 나의 것을 빼다 꽂은것만 같았다.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불안이 없으면 바람빠진 풍선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밑으로 꺼져있는채로 보냈다. 그럴때면 지금 내가 이럴때가 아니잖아 하며 다시금 불안을 찾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나면 무력감에서 벗어나와 다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움직일수록 생산적인 사람이 되는것만 같았고 정체되어 보이는것과 비교하여 우월감마저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 나는 이런사람이야,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지. 나는 모든것을 대비하고 한 발 앞서 준비해.
그리하여 그 끝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진 상황, 더 나아진 내가 기다리고 있을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다.
"난 부족해."
불안이 잠식한채 몸을 갈아넣을 정도로 열심히 대비한 결과의 목소리가 고작 저것이었다니. 놀라움을 금치못해 한동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스치듯 읽었던 육아서의 글귀가 떠올랐다. 우리는 어른아이 할 것없이 부족함이라는 목적지로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다고했다. 나는 말도 안된다며 책을 덮었던걸로 기억한다. 대비를 하는것이, 준비를 하는것이 어째서 왜소한것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렸을적부터 지금, 여기, 현재를 살라고 그 누구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대비하고 준비해야해, 지금 가진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큰 꿈을 꾸렴. 여기서 멈추면 넌 끝까지 여기밖에 되지 않아.
그래서 동생에게 매달리고 엄마에게 매달리고 아이들에게 매달렸던것 같다. 동생이 지금보다 더 괜찮아지도록 '내'가 돕는다면, 엄마가 지금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도록 '내'가 돕는다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것을 배우고 습득하도록 '내'가 돕는다면 그 '내'가 조금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 다음으로 자연스레 행복은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는 흐르고 흘러 라일리 머릿속을 붙잡던 불안이 라일리를 놓아준 순간 현존의 기쁨을 느끼며 마무리를 했다. 라일리 머릿속에서 피어나던 불안의 자아는 뽑혀지고 라일리가 겪었던 모든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자아가 생겨났을 때 여러감정들이 둘러싸여 자라난 자아를 포근히 감싸주던 장면을 끝으로 눈을 지긋이 감았다.
미안해 라일리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불안의 위로 어떻게든 상황을 내가 옳다고 하는 방향으로 이끌던 내가 겹쳐졌다. 최근에 정부에서 우울증을 앓는 국민을 대상으로 전국민마음투자사업을 시행했다. 동생이 같은 구간에서 자꾸만 넘어지는 것이 애처로워서 상담을 받자고 권했다. 이미 상담을 받아보았으나 딱히 자기에게 도움되는것 없었다며 선을 긋는 동생에게 분노가 일었다. 한번만 하고 체념하는게 어딨어 될때까지 해야지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목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그때까지도 나의 행동이 철저하게 동생을 위한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관계에서 타인을 돕는 방법은 그 사람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영적인 스승인 다디장키는 믿음으로서 다른사람을 돕는 방법으로 이 것을 설했다. 내가 동생을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관계인지 아닌지를 논하기전에 내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은 동생을 온전히 믿었는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어야만 할것이다.
엄마의 병세가 더 나아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온 촉각을 곤두세우기 전에 엄마가 스스로 자신의 병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을 전혀 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며 그것을 결국 영적으로 다루어 낼 것이라고 가슴깊이 믿는 것이어야만 할것이다.
아이들이 항상 일로서 자리를 비우는 엄마의 빈자리로 결핍을 갖고 커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기 이전에 아이들은 이미 잘 자라나고 있으며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척해나갈 것임을 온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시간 다음날의 일과를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 막내녀석으로 새벽녘에 잠이깼다.
밖에서는 돌풍이 불어대는데 닫아놓은 창문이 흔들릴정도로 제법 강도가 셌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친정아버지의 비닐하우스가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바람이 흔들리는 소리가 작아질 수롤 잦아들었고 바람에 창문이 크게 흔들릴수록 격해졌다. 몇십분동안 울어대던 바람이 멎어버리고 나서야 까무룩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모양새가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움을 느꼈다. 내 주변에 바람이 분다고 해서 친정아버지의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까지 바람이 치는것이 아니며 내 주변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해서 그곳에 바람이 멎은것이 아닐텐데 나는 지금 당장 내게 닥친 감각적 현상에만 의존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불안해 하고 대비책을 세우려는 꼴이 마치 타조가 맹수를 피해 땅에 머리를 쳐박는 꼴과 다를게 뭐가 있나 싶었다.
애당초 잡히지 않는것을 잡을 수 있다며 설친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