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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Nov 08. 2024

신의 손길을 채집하고 싶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엔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이었다.  도대체 이 두 가지가  어김없이 방학숙제에 등장했던 이유가 뭘까.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일기도 쓰기 싫었지만 그래도 일기는 마지막 날에 후딱 몰아서 써도 되긴 됐었다. 그러나 곤충, 식물 채집 같은 건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질 않는가.

특히나 곤충채집은 보기에도 징그러운 곤충을 커다란 와이셔츠통 같은데 핀으로 고정을 시키고 상하지 않게 나프탈렌을 넣어주기도 해야 하는 등 번거롭고  끔찍이 하기 싫은 숙제였었다. 그러니 그런 숙제는 어른들이나 하여튼 누군가가 대신 잡아주고 대신 만들어 줘야만 했다.


중학교 때도 곤충채집 숙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친구와 같이 곤충채집을 하러 간답시고 대구  근교 동화사까지  출동을 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근데 문제는 생각만큼 주변에 곤충이 많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파리 잠자리 빼고 무슨 곤충이 그리 다양하게 있었겠으며 있었다 해도 내 손에 잡힐 확률은  지극히 낮았을 것이다.

동화사도 마찬가지였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곤충을 찾았지만 거의 허탕을 치고 겨우 커다란 거미를 한 마리 잡아서 학교에 제출했더니 생물 선생님이, 거미는 곤충이 아니다. 곤충의 조건은, 머리. 가슴. 배 로 되어있고 다리가 6개 라야 한다. 거미는 다리가 8개라 곤충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징그러움을 무릅쓰고  애써 잡은 거미가 곤충이 아니라는 사실만 머리에 깊이 박히게 된 게 그때 곤충채집의 최대 성과였다고나 할까.


식물채집도 성가시긴 도진개진이었다. 무슨 식물을 채집하란 말인가. 마당에 돋아 난 풀을 뽑아 흙을 잘 털고 씻고 말려서 스케치북에 테이프로 붙인 다음 차곡차곡 모아서 제출하곤 했는데 그 역시도 초등학생이 하기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어른들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풀이름을 제대로 알 수도 없었고 그런 쓸데없는 풀떼기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긴긴 여름방학 동안 탱자탱자 노는 꼴이 보기 싫어 선생님들은 뭐라도 숙제를 내주셔야 속이 시원하셨나 보다.


그렇게 관심도 없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식물들이 이 산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심풀이로 운동삼아 산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풀들이 조금의 빈틈도 없이, 한 톨의 흙이라도 그냥은 못 놔두겠다는 듯 빼곡히 잎을 피워 올리고 있다. 심지어는 포장된 도로가 갈라져 조금만 틈새가 있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풀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참 끈질긴 생명력이다.

그냥 무심코 길을 걷다가 언제부턴가 그 풀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한 걸 발견했다. 수를 셀 수조차 없는 그 많은 풀잎들이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는 것이었다. 풀들마다 이름이 다르듯 풀들마다 잎 모양이 다 달랐다. 눈꼽만큼씩이라도 다르고야 말았다.

작게는 엄지손톱만 한 잎사귀부터 크게는 손바닥만 한 크기 안에서 어떻게 토록이나 다양한 모양을 디자인해 낼 수가 있을까. 사람이라면 과연 이렇게까지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을까. 이만큼  무한하게 달리 만드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확신했다. 참으로 감탄스러웠다. 자연의 조화인가. 신의 손길인가. 혼자 산속을 걸으며 자못 경건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때부터 이파리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이런 모양도 있네. 이건 좌우가 비대칭이잖아. 하며 관찰하게 되었다.

당연히 다르겠지. 종류가 다르니까.  하지만 그 작은 면적 안에서 그렇게 다르게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노릇인가  싶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식물채집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 다른 잎들을 골고루 채집해 열거해 보고 싶다는 생각, 이렇게 다양한 풀들이 있고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물론 실천하긴 힘들겠지. 아무도 숙제를 내주지 않았으니까.


오늘도 산길을 걸으며 느껴본다. 신의 손길을.

이런 오묘한 조화는 신이 아니면 창조할 수 없음을 강하게 느낀다.

한갓 풀잎도 이러한데 사람이면 오죽할까.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인 만큼 생김새가 다 다르다는 건 어쩜 당연하지 않을까.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크기의 얼굴을 이토록 다르게 설정하는 건 역시 신의 영역일까 아니면 인간의 능력일까. 문득, 풀 수 없는  수수께끼에 휩싸인 느낌이다.


서서히 가을이 깊어간다. 수수께끼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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