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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Nov 07. 2024

낯선 동네 도서관

기차는 12시 1분에 정확하게 서울에 도착했다. 정오의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아침에 출발지 플랫폼에서 찬바람에 떨며 햇볕을 찾아 기차를 기다리던 시간과는 사뭇 차이가 났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 엄마! 하는 딸애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시간이 난다며 마중 나오겠다고 했던 터였다.

평소 생얼굴로 다니는 애가 웬일로 살짝 화장을 해서 유난히 뽀얗다. 아이고, 우리 딸 예쁘네. 차 있으니 좋구나. 이렇게 마중도 나오고...

하지만 막상 캐리어를 실으려 트렁크를 열자 각종 수업재료들이 뒷좌석, 트렁크 할 것 없이 가득 차 작은 캐리어 하나도 겨우 쑤셔 넣을 만큼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힘들게 자리를 고 나는 꼬막비빔밥을 딸은 뚝배기 해물탕을 시켰다. 내 입에 약간 질긴듯한 꼬막을 씹으며 우리 집 미나리 비빔밥을 떠올렸다. 뜨건 밥에 참기름 두르고 고추장에 된장찌개 끼얹고 무채와 미나리 수북이 얹어 쓱쓱 비벼 먹는 우리 집 미나리 비빔밥. 식당에 와서 집밥을 떠올리다니 궁상스럽게.

 

딸은 나를 집에 떨궈놓고 다시 수업을 하러 가버렸다. 피곤해서 눈을 좀 붙이려 했지만 잠이 들진 않았다.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문득, 깜빡 잊고 책을 빌려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 친구들과 만나면 종묘와 창덕궁 등 고궁과 남산을 둘러볼 예정이다. 줄곧 서울에 들락거리면서도 정작 서울다운 곳을 가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기껏 인사동이나 기웃거렸지.


종묘를 꼭 가보리라 마음먹은 건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서울 편>을 읽고 나서였다. 그토록 장엄한, 한국인이 감사해야 할 건축물이라는 종묘를 지척에 두고서도 여태 가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친구들과 만나는 이번이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누군가의 <남산 답사기>도 읽은지라 두 군데를 하루 코스로 묶기로 했다. 남산은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한답시고 올라가 본 게 전부니까. 그때 남편은, 선을 보고 만난 여자를 데리고 어디로 갈까 나름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남들이 남산에서 데이트 다 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남산에 올 줄이야. 하며 큭큭 웃던 기억이 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보다 알찬 관람을 위해 다시 한번 그 책을 정독해야지 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만있자. 이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 했는데... 바쁜 딸애에게 굳이 도서관 위치를 물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공원을 지나자 마침내 도서관이 나타났다. 우리 동네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규모가 크다. 1층은 로비 겸 열람실과  어린이 도서관이 연결 돼 거의 놀이터 분위기였다. 2층 성인 도서실도 그다지 적막이 흐르진 않았다. 우선 사서 3명이 잡담 중이어서 전화벨이 울려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분위기라 오히려 편했다.

책을 읽고 있는데 딸애가 찾아왔다. 강제로 회원카드를 만들게 해 읽던 책을 나 대신 빌리게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부지게 읽으리라 했지만 자꾸만 내려 덮이는 눈꺼풀에 도저히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괜히 빌렸나. 오늘 저녁 밖에 읽을 시간이 없는데...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저 무거운 책을 들고 돌아다닐 순 없잖아. 반납은 또 언제 하고.

내가 읽고 반납할게요. 그렇게 말해 주는 딸이 고맙다.


너무 고단하다. 그런데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일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남산은 많이 변했을까. 종묘는 얼마만큼의 깊이로 내게 다가올까.

내일은 순수한 관광객의 시선으로 종묘를, 남산을  둘러보리라. 마치 외국인이 된 기분으로.

내일을 위해 빨리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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