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작업실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정확히는 냉동실이다. 여름에 토마토가 한창일 때 미처 다 소비하지 못하는 토마토를 따서 그쪽 냉동실에 넣어 둔 걸 꺼내기 위해서다.
스파게티 하려면 토마토를 좀 넣어줘야지. 오랜만에 오늘 점심 메뉴를 스파게티로 낙점을 했으니까.
냉동실 문을 열자 생뚱맞게 소시지 한 봉지가 맨 위에 떡하니 올라앉아 있다. 손가락 굵기의 둥글고 긴 소시지. 내가 산 일이 없으니 필시 남편이 사놓은 것일 테지. 사서 쟁여놓고 일하다 출출하면 한씩 꺼내 먹나 보다. 맨날 과자와 빵을 몰래 사 먹다가 이젠 소시지로까지 발전을 했다는 얘기로군. 벌써 많이 먹어 반 정도만 남아 있다.
출출해서 요기하느라 먹는 거니 탓할 수는 없겠지만 주로 살찌는, 배 나오는 종류만 선호한다는 게 문제다.
어쩜 나는, 간식이 별로 당기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는 사람이라 그런 군것질이 더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나도 꽤나 군것질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주전부리에는 손이 가질 않게 입맛이 변했다. 반면에 남편은, 젊었을 땐 입에도 대지 않던 과자며 빵에 맛을 들여 이제 마누라 잔소리를 피해 몰래 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사람의 식성이란 세월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망설이지 않고 소시지와 토마토를 챙겨 집으로 건너왔다. 오늘 점심은 스파게티. 저녁은 부대찌개여!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사실 집에서 부대찌개를 만들어 본 적은... 기억에 없다. 조리야 뻔하겠지 뭐. 그래도 레시피를 찾아본다. 역시 뻔하다.
슬쩍 집어 온 소시지는 어슷 썰기를 하고 냉동실에 잠자던 햄도 곁들이고 레시피에는 없는 어묵도 한 장. 콩나물도 한 움큼. 버섯도 썰어 넣고. 이 정도면 부대찌개가 아닌 섞어찌개 수준인데... 마지막으로 두부도 숭숭 썰어 넣어준다.
"이거, 부대찌개야? 맛있네"
자기 소시지 도둑맞은 줄 까맣게 모르는 남편의 천진스러운 반응이다.
나중에 소시지 먹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어 보곤, 내가 그새 다 먹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겠지.
그러니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 하는겨. 부대찌개 해 놓으니 얼마나 푸짐해. 이걸로 내일 저녁에 한끼 더 충분히 먹겠는 걸.
소시지는 아직 몇 개가 남았다. 도로 슬쩍 갖다 놔?
아니면 그냥 뒀다가 다음에 또 부대찌개 해?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