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나의 별들에게 바치며, Happy birthday to me
19xx년 4월 28일 오후 2시 30분 즈음. 집 주변에 있던 종합병원 분만실에서 우리 엄마는 배를 갈랐고 의사는 나를 끄집어냈다. 바야흐로 내가 세상에 머리를 들이민 날이었다. 4kg의 우량아로 태어난 나는 울음소리조차 우렁찼다. 그 덕에 분만장 밖의 사람들이 내가 사내아이일 거라 확신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예상을 깨부순 채 나는 조금 더 건강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고백하자면 나는 내 생일에 굉장히 회의적인 편이었다. 거기에는 생일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톡톡한 몫을 한다. 내 부모님은 매 순간 나와 동생들을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하셨지만 그렇다 해서 마음이 썩 잘 맞는 부부는 아니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내가 대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부부싸움은 일상이었다.
두 분이 다투는 원인은 참 다양했고 그중 하나가 생일이었다. 왜 당신은 애들 생일을 안 챙기냐, 못해도 케이크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등. 내 생일이나 동생들의 생일에 그런 말을 듣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깟 케이크야 사면 그만이고 음식이야 배달시켜서 지금이라도 축하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세상 밖에서 이리저리 치여 피곤한데 힘들게 돌아온 집에서까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매년 반복되는 그 레퍼토리에 질려 집에 아예 통보한 적도 있다. 내 생일 안 챙겨도 되니까, 그냥 챙기지 말자고. 하지만 그 말을 했을 때 부모님은 엄청나게 서운해하셨다. 대체 어쩌란 건지…… 지금이야 적응돼서 가족 카톡에 그냥 내가 먼저 얘기한다. 4월 28일 목요일에 내 생일이고 나는 이때 오후 7시 30분에 귀가 예정이니, 다 같이 저녁이나 먹자. 케이크는 당근케이크랑 초콜릿 케이크 두 개 중 하나 해주면 되고, 선물은 리스트 1~3번 중 겹치지 않게 주면 고맙겠다.
내 생일에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 같아 웃기긴 하지만 이렇게 정리하는 게 내가 찾은 우리 집의 평화 유지 방법이었다. 부모님이 또 의미 없이 싸우는 것보다 내가 조금 귀찮은 게 백만 배 나았다.
나 자신이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인가, 생일은 그닥 나에게 특별한 날로 느껴진 적이 없었다. 애초에 사람들은 다 태어나고 다 죽는데 굳이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생일이 특별한 이유는 그날 하루밖에 없는― 그러니까, 2n살의 단 하루뿐인 4월 28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지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매 년 생일을 그냥 흘러가듯 보냈다. 생일날 아르바이트가 있어도 빠진 적 없고, 누군갈 만나거나 굳이 다른 무언갈 하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해야 할 일들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가족들이랑 밥 먹는 날. 나에게 생일은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평소와 똑같이 흘러가던 날이라고 생각하던 오늘의 생일날을 특별하게 생각하도록 해 준 게 있었다면, 주변 사람들의 축하였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일본에서 엽서를 보내준 일본인 친구, 오늘 황소자리-4월 28일의 별자리는 황소자리다-의 행운의 아이템은 사탕이라며 누구보다 내 행운을 빌어주고 생일을 축하해준 친한 언니, 자정이 지나자마자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말한 10년 지기 친구, 데이 출근길에 내 생일을 혹여라도 잊어버릴까 핸드폰에 메모해놨다며 생일 축하한다고 카톡 해준 대학 동기, 내 오르내리는 모든 순간들이 마치 은하수 별가루처럼 항상 빛나면서 이어지고 있으며 항상 응원한다고 말해준 사랑스러운 언니 등.
정작 나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날을 타인이 기억해 축하해주고,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에서 오는 감사함이란. 그네들의 축하 속에 그려지는 나는 태어나줘서 고마운 사람이었고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과학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이라는 큰 대폭발로 만들어졌어요. 이 폭발이 일어나면서 뭐가 탄생했냐, 수소와 헬륨이라는 원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얘네가 합쳐지면서 수많은 초기 별들이 탄생하게 됐어요. 우리가 뭔가 처음 만들었을 때, 그게 멀쩡한 경우가 드물잖아요? 이 초기 별들이 딱 그랬지.
수소랑 헬륨의 질량비에 따라 약간씩 크기가 차이가 났던 초기 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정해지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얘네들이 펑하고 터지는데, 그때 별들이 터지면서 나온 입자들이 우주 이곳저곳으로 떨어졌어요. 이 흩어진 조각들이 우연한 계기로 적합한 환경에서 결합하게 돼서 나온 게 뭐냐, 바로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별의 후손이라는 썰이 돌았던 적이 있죠.'
인간은 별의 후손이다. 처음 들었을 때 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인간이 끊임없이 우주 탐사를 나가려고 노력하고, 더 많은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 하는 것이 정말 별의 후손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가 크고 조금 더 다양한 책들을 읽게 되면서, 나는 인간이 생각보다 우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몇몇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가령 은하 네트워크와 인간의 신경세포 네트워크가 각각 은하, 뉴런을 한 단위로 치면 상당히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던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인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 중에 인이 초신성의 잔해에서 왔다던가 하는.
어쩌면 우리는 이 외에도 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별은 성간 물질에서 태어나 원시별로 우주에 제 탄생을 알린다. 그리고 성숙기를 거쳐 종래엔 죽는다. 마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고 관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별 또한 은하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닐 것이다. 그냥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별로써 살아가고 있었겠지.
다만 우리가 별과 다른 점은, 별은 정해진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별은 공전하며 일정한 궤도를 돈다. 심지어 자유로워 보이는 혜성조차 정해진 궤도를 돈다. 떠돌이 행성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별은 한정되어 있는 선로를 따라 걷는다.
그러나 인간은 정해진 자리가 없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연고지를 떠난다. 익숙한 자리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환경에 도전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네트워크를 결성한다. 비유하자면 자기가 태어난 은하의 궤도를 벗어난 별들이 만나 새로운 은하를 형성하는 셈이다. 새롭게 태어난 그 은하에는 여러 별들이 함께한다. 직장 동기라는 이름으로, 대학 친구라는 이름 등으로 우리는 수많은 은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은하 속에서 우리는 '나'에 대해 알게 된다. 다른 별과 부딪치지 않고 자신의 궤도를 공전하는 법을 배우고, '나'의 궤도를 찾아 그것을 걸어가게 된다. 다른 별들과 소통하며 '나'와 '너'라는 별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타인의 입에서 반복되는 언어들을 통해 '나'라는 별이 가진 고유한 속성을 깨닫는다.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은하가 있다. 그 은하 안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다. 다 하나같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별들이다. 학교, 직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만난 그 별들은 오늘 하나같이 내 생일을 축하해 줬다. 그리고 나에게 '생일 축하해,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별다른 날이 아니었던 내 하루는 특별해졌고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여기게 되었다.
물론 오늘 한 번의 경험으로 생일에 대한 나의 비관적인 태도가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내 안에 생일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년 생일 즈음에 나는 또다시 뭐 하러 생일을 챙길까, 의미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또 나의 별들의 따스한 메시지를 보고 생일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반복된다면, 언젠가 나 역시 내 생일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평범한 2022년의 4월 28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나의 모든 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Happy Birthday to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