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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젤 Apr 25. 2022

당신의 밤을 지키는

부디 단 꿈을 꾸고 있기를 바라며,


 세상 모든 것이 어둠에 가라앉은 밤이면 내 업무는 시작된다. 그날 하루 이벤트들이 있었던 환자들의 상태를 인계받고, 자기 전 환자들의 상태를 살핀다. 이미 내가 찾아가기 전 잠에 든 사람도 있고, 가족과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통화를 하는 사람도, 혹은 자기 전의 여유를 만끽하며 휴식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OO님은 내일 퇴원이시죠? 우리 아침만 먹고 10~11시 정도에 집에 갈 거예요."

 "□□님은 전해질 수치가 계속 낮으셔서 약 새로 추가되었잖아요? 그거 수치 확인하러 내일 아침에 피검사할 거예요. 병실로 제가 피 뽑으러 올 거니까 내일 뵈어요."


 잘 자라는 짧은 안부 인사와 간단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환자에게 꽂힌 처치들을 본다. 비위관(콧줄), 바늘이 있는 자리는 퉁퉁 부어오르거나 빨갛게 일어나지 않았는지. 수액은 일정한 속도로 들어가고 있는지 등. 수술을 하고 온 사람은 얼음주머니를 잘하고 있는지. 특이 사항이 발견되면 그 즉시 처리한다. 다 녹아버린 얼음주머니를 바꿔주고, 수액이 들어가지 않는 주삿바늘은 새로 잡는다.


 환자들을 마주한 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시작한다. 기록을 하고, 내일 혈당을 재야 할 환자를 파악하고, 채혈을 준비하는 등. 업무 중간에 콜벨이 울리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러 간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병실을 방문해 환자 상태를 파악한다. 산소는 처방에 따라 정확한 유량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침대 난간은 잘 올려져 있어 환자가 떨어질 위험이 없는지 등.



 새벽 두 시가 되면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은 잠에 빠져 있다. 아침에 인슐린을 맞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던 치매 할아버지도, 당장 수술이 예정되어 있는데 담배 한 대만 피면 안 되냐,라고 묻는 흡연자도 이때만큼은 세상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간혹 잠버릇인지 이불을 저 멀리까지 차 버린 사람도 있다. 아직은 밤이 추울 때라 이불을 끌어올려 다시 덮어준다. 잘 때만 해도 이런 천사 같은 모습이 따로 없다.


 칠흑 같은 시간에는 로맨틱한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따스한 목소리의 몽글몽글한 가사들은 괜히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무언가가 있다. 교대로 야식을 먹는 잠깐의 그 틈새에 한쪽 귀만 이어폰을 꽂은 채로 노래들을 들어본다. 당신을 사랑하는 건 내 운명이라 고백하는 목소리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문득 집에 있는 내 가족들을, 아마 달콤한 꿈을 꾸고 있거나 혹은 내일의 고민에 괴로워하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 부모님은 잘 주무시고 계실까. 코로나에 걸려 힘들어하던 동기는 증상이 호전돼서 별 탈 없이 자고 있으려나.


 야간근무 전담 간호사를 나이트 킵(Night-keep)이라고 일컫는다. 나는 4월부터 병동 사정으로 나이트 킵 근무를 시작하게 됐고, 아마 5월까지 나이트 킵으로 근무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이트 근무를 정말 싫어한다. 싫어한다를 넘어 혐오하는 수준이다. 내가 나이트 근무와 정말 안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야간 근무를 하면 수면 패턴의 균형이 깨져 3~4번 이상 자고 깨는 건 물론이고, 머리가 멍청해지는 기분과 더불어 체력적으로 약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이트 근무는 피할 수 있다면 내가 피하고 싶은 근무 중 하나다. 이렇게 나이트 근무에 대한 불호가 강해서 그런가, 나는 나이트 킵이라는 단어도 영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야간근무를 할 때 곤히 자고 있는 환자들의 얼굴을 볼 때면, 아파서 괴로워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나이트 근무가 뿌듯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나이트 킵이라는 단어도 기분 좋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밤(Night)을, 내가 별일 없도록 무사하게 지켜준다(Keep)는 것 같아서.


 환자들의 밤을 지켜주는 내가 존재하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밤을 지켜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야간 근무를 할 때 하나님께 내 사람들의 평안한 밤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한다. 고요하고 어두운 이 밤의 시간들 속, 나의 소중한 가족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부디 단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오롯이 지금의 휴식에 빠져들 수 있기를. 여러 감정들을 뒤로하고, 온전히 지금만큼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길.


 그렇게 감히 바라건대,

 오늘 밤이 내 환자들과 당신에게 달콤한 휴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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