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발렌타인데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편이다.
문득 지나온 삶의 어느 순간에 오늘의 이 상황을 간절하게 바랬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봤다.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내 마음의 어떤 신호가 오늘을 만든걸까.
작년 여름, 조정신청서를 내고 7개월만에 법원에 갔다.12월에 조정기일이 잡혔지만 상대방의 입원으로 한차례 연기를 했고, 다시 받은 날짜가 오늘이었다.
혹시라도 나타나지 않거나, 서로 감정 싸움으로 조정에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했고,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다행이도 걱정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정실이 있는 4층은 조용했다. 협의나 소송은 많지만 처음부터 조정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조정이혼은 당사자들간의 협의를 전제하에 진행하는데 협의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 하긴 그 협의가 쉬울만큼 말이 잘 통한다면 이혼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10분 전. 조정실 앞에서 아이 아빠를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떠한 자극도 하지 않고 조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조정실에는 두 명의 조정위원이 있었다. 아버지뻘 되는 남자분과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
나와 변호사,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 후 조정신청한 내용에 대해 합의가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재산분할과 양육비에 대한 이견이 생기자 조정위원들이 각각 면담을 진행했다.
조건이 협의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가야할 수도 있다고, 7개월 동안 몇번 통화도 하지 않은 나의 변호사가 말했다. 처음부터 소송으로 얻을 것도 없었기에 시작한 조정이혼이었다.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던 아이 아빠는 조정 위원들의 설득에 한걸음 물러났고, 서로 양보하고 합의를 해야 오늘 이자리에서 마무리될 것을 알기에 나도 더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와 서로 할 얘기는 얼마 남지도 않은 재산 몇푼 뿐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 몇푼 때문에 한때는 부부였던 남녀가 법원에 선다.
최종 조정내용에 협의를 하면, 판사가 협의 내용에 대한 최종 확인을 한다. 여자 판사님이라 더욱 그랬을까. 양육비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한 후, 양측 모두 최종 서명을 했다. 조정 자체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이 사건 (이혼)에 대한 추가적인 청구는 없어야 하며, 이대로 이행해야하는 강제력을 갖게된다.
서명을 하는 그 사람의 손을 오랜만에 봤다. 뼈가 튀어나올 것 같이 말랐고 상처도 많은 손. 그래도 떨지는 않아 다행이네, 순간 안도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더 이상 곁에서 보기 어려워 나는 도망친 것일수도 있다. 더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조금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견딜 힘이 더이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틀린 걸 수도 있다. 지옥같았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셋이 함께 고통끝의 열매를 맛보는 날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이미 알았던 것 같다. 그 시간이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인 지금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 때문에 얼굴은 보고 살겠지만 부부로서는 아마 마지막이 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잘가‘ 뿐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는 끝까지 챙기겠다고도 했다.
그 말대로 살아주길.
마지막 남은 희망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앞으로 발렌타인데이는,
나의 이혼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