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고 Aug 23. 2023

나는 이제 정말로 슬퍼졌다.


한바탕 꿈을 꾸었다.

뭔가 어려운 미션을 해결하고 해방된 듯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는데

눈 앞에 펼쳐진 건 깊은 숲.



원목으로 된 발코니 곳곳에서 수류탄들이

이제 곧 터지기라도 할 듯 가스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잠시 생각하다가

수류탄 하나를 집어 얼른 아래로 던졌다.


저게 떨어져 폭발하면 난 죽는 건가. 이 남은 것들은 다 어떡하지. 난 얼마나 멀리 도망갈수 있을까.하는 순간.

더 많은 수류탄들이 아래에서부터 던져져 올라왔다.



주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두려움.

그대로 잠에서 깼는데, 다시 잠들면 그 수류탄 속에서 질식해 죽을 것 같아 잠이 들 수 없었다.




불안의 파동은 계속 감지되고 있었다.

아이가 다쳤고, 가벼운 차사고도 있었다.

알수 없는 무기력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시간도 계속 되었다.



이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두려움? 불안함? 외로움?





슬픔.

슬픔이었다.




그동안 나는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슬픔을 느끼지 못할만큼 지쳤고,

슬픈 날도 있었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하는, 챙겨야 할 딸이 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평온한 감정의 상태를 유지하고 주어진 일상을 감사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다, 전 남편이 의식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이틀째 의식이 없다고.

심장이 멎었다가 20분간 응급처치를 해서 돌아왔는데 밤사이 또 의식이 없어서 동맥을 뚫어 응급처치를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할머니의 연락을,

아이를 통해 들었다.



이혼이란 이런거다.



그의 일에 개입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있고, 한 때 사랑했으므로,

완전히 남의 일이 될 수는 없는 것.



그 사람을 다시는 안 보고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는 못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제 정말로 슬퍼졌다.



작가의 이전글 이혼기념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