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싱어게인3' 보셨나요?
'싱어게인'은 "다시 나를 부르다"라는 슬로건 아래,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가수들이 첫 무대를 앞두고
"나는 OO 가수다"라는 포맷에 맞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데요.
'싱어게인3'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소수빈'님은
"나는 쉬운 가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실 굉장히 어렵잖아요.
쉽지 않은 세상에서 제 음악이라도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소수빈 님을 잘 아는 지인은 그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쉽고, 친절하게 다가가기 위해 뒤에서 더 지독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일화를 보면서 저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토스'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토스라면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하지 않을까요?
"나는 쉬운 금융이다"
혹시 토스의 초창기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처음 토스를 사용했을 때, "이거 사기 아니야?"라는 의심이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송금을 할 때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가 필요 없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토스가 익숙해질 무렵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었는데, 왜 아무도 하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안전했고, 무엇보다 사용하기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토스가 이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든 과정을 알게 되었을 때는 "왜 그동안 아무도 안 했는지 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소수빈 님의 사례처럼, 쉬운 금융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 5명으로 이루어진 비금융 스타트업이 금융서비스를 출시하는 것 자체만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토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히 쉬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들에게 "새로운 금융 습관"을 형성시켰습니다. 이 밀도 높은 고객층은 토스의 단단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드디어 11년 만에 첫 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핀테크 스타트업을 넘어 모든 금융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성장한 토스의 결정적 순간 세 가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2015년 2월, 간편 송금 서비스를 출시한 토스는 단 3개월 만에 일일 활성 사용자수(DAU) 3만 명에 달하는 서비스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는데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카카오페이를 비롯해 은행권에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잇달아 출시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자체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 차별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작은 스타트업인 토스가 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토스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유사한 서비스라도 디테일의 차이에서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먼저, '간편' 송금이라는 말에 걸맞게 송금 과정에서 불편한 점들을 하나씩 제거했습니다. 초기 간편 송금은 절차를 간소화해 시간은 단축했지만, 여전히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알아야 한다는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요. 10~14자리의 규칙성 없는 번호들로 이루어진 계좌번호는 외우기 어려워 송금 과정에서 불편함을 초래하곤 했습니다. 토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고, 대부분 외우고 있는 휴대폰 번호만으로도 송금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토스는 송금이 가장 필요한 상황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바로 더치페이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당 등에서 결제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명이 대표로 계산하고 나중에 송금받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때에도 계좌번호를 주고받아야 하는 불편함과 이체 내역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이점을 고려한 토스는 간편하게 더치페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고, 금액을 정확히 1/N로 나누어 1원 단위까지 송금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능들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토스가 선도적으로 시도한 기능들이며 이러한 디테일의 차이를 만들어 내며 "송금하면 토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대기업과의 간편 송금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간편 송금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토스에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송금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인데요.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하려는 토스에게는 송금 기능 외에도 사람들을 꾸준히 유입시킬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토스는 빠르게 실험해 보고 빠르게 폐기하는 이른바 '애자일(Agile)'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화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토스에서는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었다가 며칠 만에 사라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승건 토스 대표는 '서울 핀테크위크 2023'에서 "매년 20여 개의 서비스를 런칭하고, 그중에서 자주 쓰는 서비스만 살려두고 아닌 서비스들은 과감하게 폐기한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떤 서비스가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우리끼리 고민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서비스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실전에서 테스트해 보자는 개념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려운 방식인데요. 토스라는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이미 8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이승건 대표에게는 어쩌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금융 플랫폼을 꿈꾸는 토스답게 경제 활동과 관련된 리워드형 서비스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앱테크로 모은 포인트를 현금화하거나, 통장을 개설하면 현금을 지급하고, 주식 계좌를 개설하면 주식을 제공하는 등 자연스럽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했는데요. 포인트를 아낌없이 제공하면서까지 서비스에 유입시킨 이유는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바탕에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서비스를 한번 사용해 보면 또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토스는 포인트 보상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체험시키는 데 집중했고, 실제로 이 전략이 통하며 체험한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또다시 방문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토스의 MAU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최근에는 무려 2,000만 명에 가까운 MAU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서비스가 확장되며 사용자 역시 증가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앱에 통합하다 보니, 토스의 모토였던 '쉽고 간편한 사용'이 점차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앱이 무거워지고 복잡해지는 이슈도 동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토스는 슈퍼앱 전략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높은 MAU를 기반으로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앱을 분리해 사용자를 분산시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죠. 이때부터 토스는 앱 사용 최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출발점은 역시 UI/UX 개선이었습니다.
토스는 먼저 금융, 혜택, 페이(커머스), 증권 등 대표적인 기능을 하단 카테고리에 고정해, 사용자들이 필요한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어 전체 탭을 만들고 나머지 서비스를 한 곳에 모아두었는데요. 이곳에서는 사용자들이 최근에 사용한 서비스나 개인의 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먼저 추천함으로써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필요한 서비스를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IT 기업 태생으로 기존 금융권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기술을 도입한 점도 '무겁지 않은 슈퍼앱'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권에서 주로 사용된 '모놀리식(Monolithic)' 구조 대신 '마이크로서비스(MicroService)'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모바일 중심의 대량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하이브리드앱 방식을 적용해 지속적인 서비스 업데이트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노력들이 모여 사용자들은 다양한 서비스가 통합된 앱에서도 원하는 기능을 어려움 없이 빠르게 활용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토스는 한국의 대표적인 슈퍼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세 번째 결정적 순간으로 토스뱅크의 설립을 지목할까도 고민했지만, 앞으로 금융서비스가 계속해서 출시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슈퍼앱으로 자리 잡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밖에도 토스의 성공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모든 전략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쉽고, 간편한 금융"입니다. 이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었고, 이번 흑자 전환으로 그 전략이 옳았음을 입증했습니다. '간편 송금' 하나로 시작해 어느새 기업 가치 10조 원을 넘긴 토스.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