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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Aug 30. 2024

닉값하는 도시, 진주

출처 : 본인


각 도시들은 자신을 대표하는 문구를 이곳저곳에 걸어두곤 한다. 아쉽게도 이런 문구들은 금방 잊히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 의미를 피부로 느끼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번에 한달살기를 했던 진주만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언행일치'하는 도시였기에.


2024년 8월 3일은 우리가 경남 진주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한 날이다. 그렇다. 우리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여름의 절정을 진주와 함께 보냈다. 정말 더웠다. 정말정말 더웠다. 태어나 대부분을 서울에서 지내온 나로서는 경남이라 더 더운 건지, 그냥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더웠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더웠다. 만약 진주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2024년 여름은 그저 덥기만 했던 해로 기억됐을지 모른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우리는 밤이면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강변의 산책로는 야간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대나무숲으로 이루어진 산책로는 은은한 별빛 레이저 조명이 비춰주고 있어 참 이쁘다. 바람이 불어 대나무잎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과장 조금 보태서)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진주시민들은 한강보다 남강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한강을 수없이 봐온 서울러 출신으로 일정 부분 수긍하는 바이다.


산책길만 이쁜 게 아니다. 남강 주변은 어딜 보더라도 야경이 참 이쁘다. 특히 진주성과 촉석루는 세계 3대 야경이라 불리는 부다페스트와 붙어도 밀리지 않는다. (이건 과장 아니다. 부다페스트 야경을 직접 보고 온 사람으로서 붙어볼 만하다 생각한다.)


단순히 야경만 이뻤다면 감히 '문화예술' 도시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주는 야경을 단순한 '배경'으로만 활용하지 않고, '무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M2 페스티벌이다. 우리는 P형 재질의 사람들로 이러한 행사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한 남강별빛길 산책을 하려다가 우연히 알게 된 행사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행사치고는 그 규모와 재미가 상상 이상이었다.


출처 : 본인


우선 남강 위로 수상 무대가 설치되었는데, 촉석루가 뒤에 드리워져 있어서 뭐랄까.. 현대적인 모습과 전통적인 모습이 대비되면서 이색적인 무대가 완성되었다. (수상 무대라서 출연진들이 배를 타고 입장하는데 출연진들도 하나같이 처음 해보는 특별한 경험이라좋아했다.)


또, 요즘 유행하는 워터밤마냥 무대 중간중간 물대포를 쏘면서 여름밤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유명한 가수들이 공연을 펼치는데 참여진들도 면면이 화려하다. 행사 첫날부터 빅마마, 마이티마우스 등이 출연해 무대를 꾸몄고, 이튿날에는 코요태, 효린, 넉살, 원밀리언, 오유진 등이 출연해 관객들의 흥을 돋웠다. (나이가 조금 들었는지, 아는 노래가 많은 코요태의 무대가 가장 즐거웠다. 큼큼.)


물론 M2 페스티벌은 단발성이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진주에게는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남강별빛피크닉'이 있기 때문. 이건 또 뭐냐고? 쉽게 이야기해 진주판 비긴어게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경남에 거점을 두고 있는 가수들을 초청해 남강을 배경으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출처 : 본인


남강별빛피크닉의 슬로건은 "몸만 와, 필요한 건 내가 다 준비해 줄게"이다. 말 그대로 몸만 가면, 행사 장소에 돗자리와 의자, 선풍기 등이 미리 세팅되어 있다. 여기에 진주에서 유명한 가게들의 음식과 맥주를 피크닉 바구니에 담아준다. 참가자는 미리 이쁘게 세팅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가수들의 공연을 보기만 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을 즐기는데 드는 비용은 단 만원. 남강별빛피크닉은 매주 60명을 모집하는데, 조금만 늦어도 예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진주에는 즐길거리가 정말 많다. 진주성에서 진행된 야행(夜行) 행사도 준비를 정말 많이 한 듯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국내 최초의 남강유등전시관 역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씩 다 짚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출처 : 본인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 닉값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라 쓰면서도 어색하다. 그러나 진주에서 한달살기가 끝나갈 즈음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지 못했다. '문화예술도시'라고 홍보하고 있는 진주는, 말 그대로 문화예술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였다.


오늘로 진주에서 두 번째 국내 한달살기를 마쳤다. 서산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지방에서 도시를 살리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고 계신다. 진심이 서울까지 충분히 전해지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는 분명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도시들이 참 많이 있다. 이런 보물 같은 도시들이 더 널리 알려져 다 같이 활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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