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정필 May 26. 2023

AI가 빼앗을 내 밥그릇?

프라에코(Praeco) : 광고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7.  AI 음악

THE JET WALK


음악작업에 있어 창조적 영감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기술의 발전이다.


스토리지와 CPU의 발전으로 대용량 가상악기를 통한 사실적인 연주 구현이 가능해졌고,

플러그인 이펙터는 이미 외장 아웃보드가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발전해, 리콜에 대한 걱정 없이 빠른 수정작업이 가능해졌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실물 장비를 사용할 경우 수정사항 발생 시 작업 중이던 프로젝트에 사용된 설정값을 똑같이 구현해야 한다 품과 시간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음악감독으로서 그 어떤 종류의 음악이라도 만들 수 있을 제반여건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이었으면 연주자, 제작자, 후반작업이 나뉘었을 일을 음악감독 한 사람이 도맡아 해결하는 형태가 되면서 사람이 갈려 들어가는 환경으로 변화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제 AI 발전의 특이점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를 이 시점에,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저 한때의 추억정도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싹트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




삼성 THE JET WALK의 한 장면



얼마 전 작업한 삼성 비스포크 제트 THE JET WALK 편의 음악제작을 위해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1,2,4파트의 음악을 제작해야 했다. 파트 3 즉 STAGE 3는 AI가 만든 곡이 사용되었다. 


광고의 1분 8초부터 1분 30초에 사용된 AI가 만든 음악은 딱히 흠잡을 만한 곳이 없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시비를 걸려면 그 어떤 사소함도 빌미를 잡을 수 있겠으나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구글 MusicLM 등을 통해 테스트해 본 AI음악에 비해 견고하게 짜인 리듬과 편곡을 듣고 그 상업적 가능성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업과 이번 작업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소처럼 레퍼런스와 영상의 톤 앤 매너 편집을 이해, 분석하고 그에 맞는 편곡과 곡 전개, 귀에 착 감기는 대비되는 요소를 어떻게 믹스 앤 매치를 할지 궁리했다.


삼성 THE JET WALK의 한 장면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인트로의 편집점에 맞춰 Funk Break 리듬으로 영상의 박자감을 살린다. 그리고 어둡고 차가울 수 있는 공간에 따뜻함과 아늑함을 부여하는 샹들리에의 로우앵글컷의 임팩트에 걸맞은 악기와 편곡을 사용한다. 이윽고 패션쇼의 시작과 함께 런웨이를 꾸며주는 EDM이 등장한다.


즉, 인트로의 10초 남짓한 시간 동안에 전혀 다른 스타일과 시대성의 세 가지 요소, 60,70년대의 20세기 흑인음악, 19세기 낭만주의, 21세기 EDM의 요소가 어우러지도록 설계했다. 




AI가 만든 음악에는 청소기 소리가 리듬감 있게 레이어 되어있었다. 장면을 보니 아무래도 청소기의 폴리 사운드가 입혀질 것이기에 청소기 소리가 마스킹되어 잘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한 효과적 사운드가 아니라 악기의 구성요소로서 청소기 소리를 표현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신디사이징에 있어서 바람소리, 빗소리와 같은 음정 없는 랜덤 한 음색은 신시사이저의 오실레이터가 만드는 노이즈파형을 통해 표현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실레이터에서 발진되는 노이즈에는 음정이 없다. 따라서 미디 노트에 따라 피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피치트래킹 기능을 노이즈모듈에 내장한 Serum을 메인 신시사이저로 선택했다. 


Xfer Records의 웨이브테이블 신디사이저 Serum


STAGE 2에서 AI제트봇이 등장한다. 왠지 앙증맞게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힘 있게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Groove Armada의 Paper Romance처럼 무겁게 짓눌리듯 내리깔리는 신스음을 메인 테마로 설정해서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부분에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STAGE 3을 지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STAGE 4에서는 앞에 등장한 모든 요소를 어울렀다. 작업 시 전달받은 STAGE 3 AI곡의 멀티트랙이 있었다. 그 트랙에서 리듬을 가져오고 앞부분의 내가 제작한 곡의 베이스와 신스등을 접목시켜 STAGE 1,2,3의 요소를 모두 사용하여 STAGE 4를 마무리했다.




제트워크 작업 이후 AI에 대한 관심이 생겨  ChatGPT를 이용해 봤다. 처음엔 그저 구글링의 결과일 뿐이라 생각이 들어 실망스러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잘못이었다. 명확한 DB를 제시하고 정확한 방향성의 Structure Theory를 제시하면 완성도 높은 합리적 답을 도출해 주었다. 


만약 지금 당장 AI작곡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캐주얼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내 입장에서 시장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AI작곡의 가장 큰 장점이 누구나 손쉽게 곡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이미 아트리스트와 같은 스톡음원 서비스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스톡음원 혹은 라이브러리 음반사에 지불할 비용을 AI관련 권리를 가진 사업체에 비용을 이전할 뿐이 될 것이다. 

애초에 이 시장은 나와 연관성이 크지 않다. 


아트리스트의 요금체계


AI가 곡을 만들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이미 엄청난 양의 상업적 음원의 데이터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클릭 몇 번으로 상업적으로 이용가능한 다양한 레이블의 인덱싱 된 수백 수천 곡을 검색할 수 있다. 


앞으로 시장상황이 어떻게 변화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많은 음악인들이 기계처럼 곡을 만들어내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오히려 당장은 AI에게 경쟁력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술발전이 특이점을 지나간다면 단순히 음악을 만들어내는 능력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앞으로도 AI의 제작능력은 발전해  나갈 것이므로 특별한 개성이 담겨있지 않거나 유명인의 후광이 없는 단순한 콘텐츠는 시장성을 빠른 속도로 잃어갈 것이다.


당분간은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가 AI의 학습 데이터를 위한 레퍼런스의 seed를 제공하고 뮤지션은 거기서 발생되는 수익을 배분받는 시장이 형성될지 모른다. 


생성 AI는 각 스타일별 장르별 캐릭터 모듈을 구축해 AI플랫폼을 통해 구독제가 되었든 판매형이 되었든 수익창출 구조를 만들지도 모른다. 


이 시대가 되면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음원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단,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음악자체에서 찾아야만 할 이유는 없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과나'의 예에서 보듯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기획과 연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근미래의 나는 현재의 생계수단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음악감독으로서 '어떤 음악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기본소양이다. 음악제작 능력보다 더욱 중요한 소양은 결정된 방향성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만큼의 신뢰성과 창의성을 상업적 한계(듣기 좋은) 안에서 들려주느냐이다. 


정해진 틀 안에서 일종의 A&R(Artist & Repertoire의 약자로 아티스트 발굴, 그에 맞는 곡 수집, 작사/작곡가와의 협의, 아티스트 콘셉트를 정하는 등 음악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직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해진 틀 안에서 해법을 제시하고, 얼터 안을 통해 틀을 벗어난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한 위대한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계상황 속에서 평소의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창의성이 발현된다. 이것이 영화음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라 하셨던 것 같다.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으나 대략 이런 내용인 것으로 기억난다.


故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


광고제작에 있어서 감독과 CD의 판단은 광고주의 판단에 앞서서 제작 제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음악감독으로서 최선의 답과 대안을 제시해야 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빠르게 스타일을 리서치하고 곡을 빌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I기술이 발전한다면 대외적으로 인식된 음악감독의 역할 즉, 음악을 생산해 내는 일의 중요성은 줄어들 것이고, 대내적으로 생각하는 음악감독의 역할 즉, 작품 안에서의 일종의 A&R의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AI와 관련된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창의적인 인사이트와 정확한 구조적 이론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생산도구보다 효율적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최근 화제가 된 브루노마스가 노래한 뉴진스처럼 기존 기술로는 불가능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가 만들어낼 미친듯한 생산성의 시대에 적응을 해서 살아남는다면 현재보다 노가다성 작업은 사라질 것이고 더욱 높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바, 이는 대중과 순수를 아우르는 예술과 인문학적 소양, 영상과 이미지와 연출이 담길 차세대 매체장르에 대한 이해, 각종 유행과 밈에 대한 빠른 습득력 등과 관련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 이런 진단과 예측을 한다 한들 그게 맞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설령 맞더라도 변화할 상황에 적응해 나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음악 생산 작업의 중요성이 줄어들 것이므로 좌석의 개수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저 나 자신이 신세계에서 살아남는데 적합한 형질을 타고난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당장은, 그리고 근미래 까지는 내 밥그릇이 쉽사리 뺏기지는 않을 것 같다. 

광고를 비롯한 영상음악에 필요한 미덕에 대해 AI에게 없는 나만의 인사이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만간 파이썬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다.




https://youtu.be/J7zo-3FnQ0E

매거진의 이전글 침착맨님, 감사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