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으로부터

by 윤재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점,

후식으로 먹었던 무화과의 속살이 떠오르게 하는 진은영 시인의 <점> 속의 시어(詩語)들은, 평소 사용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을 언어들로 저한테 말을 걸어왔습니다. 폐곡선, 흰 올빼미의 발톱, 별의 후추씨, 기하학의 하얀 무화과........... 등

이 시어들에 익숙해진다면, 제 사유의 틀도 넓어지고 강건해지려나요.



<점>

- 진은영


데카르트의 점

폐곡선 안의 점

아무리 모아도 넓이를 가진 이면지가 되지 않는 점

유일무이한 점

너의 콧등 위의 점

박하 잎 가득 담은 양가죽주머니를 쥐고 하얀 하늘로 달아난 흰 올빼미의 발톱 같은 점

내가 사랑하는 권태로운 점

우주의 콧속에 떠도는 별의 후추씨

가벼운 재채기같이

네 얼굴 신비한 기하학의 하얀 무화과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 지성사, 2008



최승자(1955~ ) 시인은 진은영(1970~ ) 시인을 두고 “드디어 나를 정말로 잇는 시인이 나왔다”라고 했다지요. 진은영은 철학자이며 시인입니다. 2000년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는데, 건망증이 심하다고 하는군요.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사물을 응시할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고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것들을 금세 잊는다고 합니다....(출처: 교보문고 인물소개 중)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 재직 중입니다. 그의 시는 낡고 익숙한 단어와 감각의 재배치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상들과 인식들을 담고 있다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은영 시인의 시 〈점〉은 바로 그 추상적인 기호를 일상의 감각과 우주의 심장에 겹쳐놓고 있습니다. 코끝 위의 작은 점, 숨이 드나드는 그 자리에서 세계는 열리게 되지요. 호흡은 단순한 생리적 작용이 아니라, 나와 세계가 서로 연결되는 가장 원초적인 경험입니다. 시인은 그 지극히 사소한 곳에서 우주의 별빛과 기하학적 질서를 끌어옵니다. 존재는 이렇게, 사소함에서 무한으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흰 올빼미의 발톱이 하늘을 향해 달려가고, 양피지 주머니에는 박하잎이 가득 담깁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 이미지는, 우리가 언어로 붙잡을 수 없는 세계의 ‘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논리와 질서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 점은 단순한 좌표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낯설게 빛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지루함조차 사랑할 수 있는 풍경으로 변하게 만듭니다.



점’은 무無와 같으면서도 모든 가능성의 근원입니다. 크기도 부피도 없는 비존재이지만, 그 위에 선을 그리고 면을 만들며, 결국 공간 전체를 펼쳐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어떤 의미 없는 순간, 권태롭고 단조로운 일상 속의 작은 점들이 모여, 나라는 좌표를 이루고, 세계와의 관계망을 형성합니다. 시인은 그것을 “우주의 코끝에 떠다니는 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내쉰 숨, 가볍게 터져 나오는 재채기 속에도 사실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얼굴 위의 흰 무화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수수께끼의 기하학으로 변주됩니다. 삶은 계산되지 않는 우연과 수수께끼 위에 서 있으며,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시적 구조입니다.



진은영 시인의 〈점〉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이 밟고 있는 일상의 바닥도, 그 작은 점에서 시작된 무한의 한 조각이다.” 결국 점은 단순한 수학적 단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를 열어젖히는 문, 지루함조차 빛으로 바꾸는 언어, 그리고 우리를 우주와 잇는 가장 작은 다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점으로부터 태어나, 다시 하나의 점으로 돌아갑니다. 그 사이의 생은 무수히 흩날리는 점들의 궤적이며, 그 궤적이 바로 삶의 시학이지요.



요즘 이우환 화백의 그림 한 점이 정치 시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뇌물일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위작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우환(1936~ ) 화백의 그림 〈점으로부터, From Point〉도 점에서 출발합니다. 작가가 붓을 들어 캔버스 위에 남긴 최초의 흔적, 그것이 곧 점입니다. 그러나 그의 점은 단순한 시작의 흔적만은 아닙니다. 점은 화면 위에서 사라지듯 번지고, 다른 점과의 관계 속에서 선이 되고, 면이 되며, 결국 공간을 울립니다. 화가는 점을 “무와 유 사이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진동”으로, “우주만물은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끝난다”라고 말합니다. 김환기(1913~1974) 화백의 그림도 수많은 점에서부터 완성됩니다. 점으로부터 여백을 채우는 고요한 에너지가 시간의 흐름을 메꿉니다.




점으로부터 1973.png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3 (사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점은 단일한 고정물이 아니라, 세계와 존재가 서로 관계 맺는 자리입니다. 시인은 그 점을 권태 속의 별빛으로, 화가는 그것을 여백 속의 울림으로 드러냅니다. 점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을 여는 문으로, 그 점이 모여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며, 우주를 그려내는 것이 인간의 삶과 비슷합니다. 한숨, 한 번의 눈빛, 지루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나라는 존재와 세계의 궤적을 만들어내니까요. 진은영의 시에서 점은 재채기처럼 가볍지만, 그 속에 우주적 기하학이 숨어 있듯, 이우환의 점은 먹물의 흔적처럼 단순하지만, 그 속에 존재와 존재의 긴장이 살아 있습니다.


하나의 점으로부터, 다시 점으로 돌아가는 삶은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지만, 그 작은 점 속에 이미 무한이 깃들어 있음을 엿보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