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
노각이란 말 참 그윽하지요
한해살이 오이한테도
노년이 서리고
그 노년한테
달셋방 같은 전각 한 채 지어준 것 같은 말,
선선하고 넉넉한 이 말이
기러기 떼 당겨오는 초가을날 저녁에
늙은 오이의 살결을 벗기면
수박 향 같기도 하고
은어(銀魚) 향 같기도 한
아니 수박 먹은 은어 향 같기도 한
고즈넉이 늙어와서 향내마저 슴슴해진
내 인생에 그대 내력이 서리고
그대 전생에 내 향내가 배인 듯
아무려나
서로 검불 같은 생의 가난이 울릴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붓한 집 한 채 지어 건네는 맘
사랑이 그만치는
늙어가야 한다는 말 같지요
노각이란 말 늡늡하지⁎ 않나요
반그늘처럼 늙어 떠나며
외투 벗어주듯 집도 한 채
누군가에게 벗어줄 수 있다는 거
은어 향에 밴 수박 향서껀
늦여름 거쳐 가을 허공이든
그대 혀끝이나 귓볼에 스친 우박이든
저물지 않는 말간 상념의 맛집
내 욕심을 늙히어 그대에게
집 한 채 물려주고 가는 맛 같은
노각이라는 말 낙락하지요
*늡늡하다: 너그럽고 활달하다는 뜻
--유종인, 『그대를 바라는 일이 언덕이 되었다』, 문학동네, 2024 중에서
유종인(1968~ ) 시인은 시로 1996년 등단하였고, 그 후 시조와 미술평론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시집으로 『아껴먹는 슬픔』,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교우록』 등이 있고, 시조집으로 『얼굴을 더듬다』, 미술 에세이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 등이 있습니다. 지리산문학상, 송순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시선을 거치면 일상의 시간이 고즈넉하고 넉넉한 운치를 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소외된 존재들을 느긋하게 바라볼 뿐만 아니라, 소소한 대상들마저 그의 눈과 가슴에서는 각자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는 시인은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언어의 가치를 통해 재발견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시의 쓸모를 묻는 이들에게 답하는 대신 모든 것들에 가치를 측정하며 평가하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되돌려 묻습니다. “깨끗한 화선지에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듯, 시인은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여백 위에 시어들을 흘려놓는다. 그는 결코 시어들로 여백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고 빈 공간을 남겨둠으로써 시어의 그윽한 향을 더욱 배가시킨다.”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시, 시조, 미술평론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시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시를 집필하실 때 특별히 신경 쓰는 게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라는 질문에, 시인은 ”시는 제게 원천이자 가난이고 동경이자 소우주이며 생활의 낙락하고 웅숭깊은 동무입니다. 미술평론은 동서양을 가리지는 않지만 동양화가 가지는 여백과 깊이, 마음의 여유와 자유를 찾아가는 애호에서 너나들이하는 또 하나의 고전과도 같습니다. 시가 그림과 멀지 않듯이 그림이 주는 영감 또한 새뜻하고 그윽합니다. 모든 영향과 영감과 생각을 주고받는 마음 그릇으로서의 시는, ‘쓸모없음의 쓸모’처럼 우리를 위로의 심연으로 이끄는 데가 있습니다. 구원의 소박한 일상이 위로가 아닐까 싶은데 시는 여기에 손을 내어줍니다. 이런 시가 내게도 손을, 아니 손그늘이라도 내어줄 때의 느낌과 서슬을 귀히 여깁니다. 시를 쓸 때는 이런 시의 손길과 기척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스스로 명징하고 고요해지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시인의 시제(詩題)인 늙은 조선오이 열매인 노각은 빛이 누렇게 된 오이라는 뜻의 황과(黃瓜)로도 불립니다. 껍질이 거북이 등 같을수록 쓴 맛이 덜하고 잘 익었다는 노각을 껍질을 벗겨 무침을 해 놓으면 아삭아삭한 맛이 훌륭한 밥반찬이 됩니다. 노각의 효능을 보면 비타민C 함유량도 높아 피로 해소와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군요. 여름이 깊어갈수록 노각은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여름의 청춘이 다하고, 빛이 조금씩 빠져나간 자리에서 오이는 고요히 노란 갈색빛으로 숙성됩니다. 표면은 거칠고 주름졌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여름의 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여름은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아쉽게도 노각 무침 한 번 해 먹지 못하고 지나왔습니다.
유종인 시인은 그 오래된 향기를 한 단어로 담아냈군요.
그는 늙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깊이로, 쇠락이 아니라 숙성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수박 냄새가 난다고, 그 속살에는 젊은 날의 달콤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1951, 1956)을 떠올리게 합니다.
조르조 모란디, <정물>, 1956, 볼로냐 모란디 미술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는 세잔의 영향을 받았으나 어떠한 미술 양식에도 기울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그림을 탐구해 왔습니다. 살아 생전 이탈리아의 국민 화가로 칭송되며 사랑받았던 모란디는 그가 거주하던 볼로냐 이외의 지역으로 여행을 즐겨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경험과 자극이 자신의 그림 작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는데 그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많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당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그의 그림에서도 일관성은 보입니다. 성실하고 끈질기게 대상을 관찰하고 평온하게 모노톤의 색상으로 단순화해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라고 했다지요. 그래서일까요, 그의 그림은 “사물의 본질과 사물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고요하고 단순한 정물화를 통해 관람객을 명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화가”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모란디의 화폭 위에는 오래된 병과 항아리, 주전자가 놓여 있습니다. 아무런 장식도, 화려한 빛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한 화면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합니다. 병들은 새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색이 바래고, 표면엔 세월의 먼지가 얹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오래됨 속에 오히려 ‘사물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림 속 병들은 마치 세월을 견딘 사람의 얼굴 같습니다.
빛바랜 톤과 절제된 형태, 서로 기대어 선 병들의 모습은 노년의 관용을 닮았다고나 할까요.
조르조 모란디, <정물>, 1951, 볼로냐 모란디 미술관
모란디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사물만 그렸습니다. 매일같이 병을 닦고, 빛의 각도를 달리하며, 조금씩 다른 호흡으로 그렸지요. 그는 “사물에는 무한이 숨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래 본다는 것, 익어간다는 것은 결국 같은 사물 속에서도 새 빛을, 그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유종인 시인의 노각도 그렇습니다.
늙어가는 오이의 표면에서, 그는 ‘여름의 향’을 찾아냈습니다.
모란디가 낡은 병의 표면에서 ‘시간의 빛’을 포착했듯이.
두 세계는 서로를 비추며 말하는 듯합니다.
늙음이란 사라짐이 아니라, 세월이 비로소 드러내는 결이라고.
노각의 냄새와 병의 빛이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익어가는 삶의 미학’이 되겠지요.
“내 욕심을 늙히어 그대에게 집 한 채 물려주고 가는 맛”
시 속의 이 구절은 모란디의 정물 속 병들이 조용한 ‘집’을 이루는 것과 닿아 있습니다.
그림 속 병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서, 서로의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향한 방 하나를 짓게 됩니다.
모란디의 시간을 압축해 놓은 정물 화면 속에서 빛은 요란하지 않고 부드럽게 스며듭니다.
불필요한 장식이 걷히고, 삶의 본질만이 남는 순간.
빛이 오래 머물며 사물의 표면에 스며든 자리, 그것이 바로 ‘익음’의 흔적이겠지요.
유종인 시인의 노각처럼.
세월의 껍질을 벗겨내면, 그 안에는 여름의 달큼한 향과 함께 ‘삶의 깊이’가 배어 있을 것입니다.
검불 같은 생의 가난이 울릴 때라도
자기 안의 여름을 다 쓰고도 남아 그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견디는 것.
그게 노각이고, 어쩌면 우리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