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by 윤재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이 휑뎅그렁한 그 집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24 다산책방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라던 작가 박경리(1926~2008).


그의 마지막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생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옛날의 그 집>은 외로움과 불안이 담겨 있던 과거와 지금 마지막 단계에서 ‘홀가분하다’라고 마무리하는

심경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라고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박경리 작가의 심정에 절절히 공감합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집입니다.



가을 햇살이 들쑥날쑥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날,
갈색과 황금빛 낙엽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빗방울처럼 쏟아지던 길을,

내 집 앞처럼 산책할 수 있는 지금 우리 집.

옆지기와 산책하면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 참 좋다란 말을 하곤 했습니다.



고(故) 박경리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시간이 오래 머문 집 앞에 서서, 마치 한 장의 빛바랜 사진 속으로 몸과 마음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합니다. 사람의 체온이 배어 있던 문고리, 손때 묻은 장독대, 계절마다 달라지던 마당의 그림자들이 서로 기대어 한 세월을 버텨온 자리.
내가 알던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공기 틈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고개를 내밉니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남아 있는 것”보다 “없어진 것”이 더 크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옛날의 그 집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살았던 7살까지의 집이 떠오릅니다.
긁힌 벽, 굽은 서까래, 뒷 언덕의 감나무와 대추나무, 도라지 꽃,

앞마당의 매화나무.


어린 시절의 옛집은 더 이상 현존하지 않지만,
내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빗소리와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소나무 가지 타면서 저녁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어른거리는,
어린 날의 마지막 불빛 같은 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힘겨웠던 시절들도 결국엔 다 스쳐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 들수록 마음이 헐거워지고 느슨해지는 것이, 때로는 스스로도 낯설 만큼 편안하기도 하고

동력이 사그라졌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지막 문단,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유독 마음에 깊게 꽂히는 것은

아마도 지금의 계절과 제 물리적 나이, 이 두 가지가 나란히 익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나로
조금씩, 천천히,
부드럽게 내려앉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