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Aloha)!
하와이!!
하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국적인 야자수와 그 곁을 스치는 바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섬의 끝에서 부는 그 바람.
하와이에는 태초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으나, 고단하고 험난한 항해를 거쳐 하와이에 폴리네시안이
정착했습니다.
폴리네시아 민족의 땅으로 여왕이 다스린 왕국이었으나, 사탕수수 상인과 군대를 앞세운 미국에 의해 50번째 마지막 주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일제 초기 하와이로 떠난 이민 1세대 여성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이금이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으며 하와이의 풍광과 역사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사진으로 배우자를 선택해 머나먼 타국으로 떠난 그들의 험난한 운명이 마치 조선의 운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들이 꿈꾸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억척스럽게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하며 살아나가는 이야기 전개에 숙연해졌습니다.
"이금이 작가는 한인 미주 이민 100년 사를 다룬 책을 보던 중 앳돼 보이는 얼굴에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세 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을 마주한다. 그 속에는 “이미 와 있는 오래된 미래”처럼 낯설면서도 익숙한,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여성의 숨죽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승리자 중심으로, 남성의 시각으로 쓰인 주류 역사에서 비켜나 있던 하와이 이민 1세대 여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뜻깊은 발견이었다. 교과서에도 공들여 소개되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출판사 리뷰 중에서)
사진신부들(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여성들은, 그들이 꿈꾸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억척스럽게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하며 살아나갑니다. 책 속의 여성들은 그저 시대의 희생자가 아니라, 바람에 꺾이면서도 뿌리를 내린 들꽃 같았습니다. 낯선 언어, 낯선 풍경, 낯선 남편. 모든 것이 낯설어도, 그 안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삶을 일구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바다를 건너간 것은 절망 때문이 아니라, 희망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희망이란 건 늘 그렇게, 절망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부의 의병 활동으로 쇠락한 양반 집안의 딸 열여덟 살 버들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지만, 재산을 모아 신분을 세탁한 집안의 딸 홍주, 무당의 딸 송화 세 여성이 같이 등장합니다.
'거 가면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는다 캅니다. 그뿐 아이라 옷이고 신발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 가 맘에 드는 기를 따서 입고 신으면 된다 캅니더. ‘라고 방물장수 아주머니는 포와(지금의 하와이)를 말합니다.
’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고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고,
여자들도 맘껏 공부한다는 포와에서는 결혼 생활도 조선과 많이 다를 것이다.
버들과 홍주는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상상했다.'....... p. 31
더 배울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고,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하와이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지만 당시 하와이는 사탕수수 농장 노동이민자들의 노동 인력 유지 위해 자국민과의 결혼을 허가하였지만 저임금과 인종차별, 언어 소통의 문제 등 상황은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책 속 인상 깊은 문장은,
p.214, “핼쑥해졌네. 서 영감님이 며느리 복이 많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대도 그렇게 애통하게 울지 못할 거야. 보는 사람이 다 슬프더구먼” 두순 엄마가 말했다.
“덕분에 내도 친정아부지 생각하면서 철철 울었다 아입니꺼. 영감님 장례식에서 내는 우리 아부지 초상 치렀어예.”
친정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줄리 엄마가 말했다.
“그래서 남의 초상집 가서 눈물 한 방울 흘리려 해도 내 설움이 앞서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나도 친정엄마 생각하면서 울었어.”
p.340
"로즈 이모 이야기가 무조건 지루하고 짜증 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덕분에 이모 인생에서 떼어 낼 수 없는 엄마의 지난 삶도 좀 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과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어쩌다 물으면 오늘 살기 바빠 어제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동안 이모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억력이 부족한 건 엄마의 큰 장점이었다.
이모 이야기에 나오는 엄마의 삶은 고생스럽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보아 온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대지>를 읽다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여주인공 올란의 모습에 엄마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날마다 되풀이한다면 생각만 해도 우울한 일이다. "
==> 지상낙원이라는 그곳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친정도 도와줄 수 있다고 기대하며 낯선 곳으로 향했던 엄마/버들.
엄마의 지난 고통을 알게 된 연민과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따뜻한 마음, 더불어 ‘기억력이 부족한 건 엄마의 큰 장점’이라고 표현하지만...
슬픔과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회피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는 문장입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복합적인 깊은 감정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p.365,
나는 조선 춤이든 훌라춤이든 다 좋았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훌라 선생님은 우리에게 춤뿐 아니라 알로하 정신과 레이의 의미도 가르쳐 주었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 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p.396
엄마는 가난해서 팔려 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로즈 이모가 내 곁에 있어 줘서 행복했다. 그리고 송화가 날 낳아 줘서 고마웠다. 레이의 끝과 끝처럼 세 명의 엄마와 나는 이어져 있다.
나는 또 어느 곳에 있든 하와이, 그리고 조선과도 이어져 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친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과 나의 엄마들이 있으니까.
==> 소설의 끝부분을 자신의 삶을 향해 결심을 다지는 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부분으로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밀려가겠다는 강한 의지와 능동적 주체적 존재로 성장하려는 마음도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알로하(Aloha)라는 말의 뜻을 되새겨보았습니다.
떠나고, 만나고, 다시 떠나는 일. 그러나 그 사이를 이어주는 건 언제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버들, 홍주, 송화.
고달픈 현실의 돌파구로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들의 이야기.
그 사랑이 있었기에, 송화의 딸 진주에게는 자신을 키워준 버들과 로즈 이모가 된 홍주도 모두 그녀의 엄마가 된 것이 아닐까요.
하와이의 햇빛은 늘 이방인의 그림자를 길게 늘입니다.
소설 속, 그 태양 아래 서 있는 조선의 소녀들—사진 한 장만 들고 먼바다를 건너온 ‘사진 신부’들은, 그늘마저 낯선 땅에서 다시 어머니가 되고, 또 다른 어머니를 찾아가며 서로의 삶을 이어 붙입니다. 그 연약한 연결의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영국의 소아과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컷(Donald W. Winnicott, 1896~ 1971)의 말, “아이는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살아남으며, 그 관계를 처음 열어젖히는 존재가 바로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어머니들은 단단한 하나의 그림자가 아니지요. 그들은 찢기고, 흩어지고, 바다처럼 흔들립니다. 조선에서 떠나며 버려지고, 하와이에 와서 다시 버티며, 기댈 곳도, 기댈 말도 없이 하루를 살아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구보다 ‘좋아지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위니컷이 말하듯, 완벽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살아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충분히 좋음’이었다.
소설 속 어머니들은 그 ‘환경’을 서로의 손을 기워 만들어 냈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서로를 ‘언니’, ‘동무’라 부르며, 함께 김치를 담그고, 병든 이의 아이를 돌보고, 남편의 폭력 속에서 서로의 등을 감싸며 버팁니다. 이 공동체적 돌봄은 위니컷이 말한 “holding environment”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아이를 껴안는 팔, 가슴, 방 안의 온기가 아닌, 이민자 여성들이 서로에게 만들어준 ‘살아낼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또 다른 ‘품’, 또 다른 ‘자궁’이었습니다.
결함 덕분에, 아이는 현실로 발을 내딛습니다.
불완전 덕분에, 사랑은 오히려 깊어집니다.
하와이 이민사 속 여성들의 삶은 늘 상처를 동반했지만, 그 상처는 헛된 것이 아니었지요.
위니컷이 말한 ‘failures that help the child grow(성장을 돕는 실패)’처럼, 소설 속 어머니들의 실패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힘이 되었고, 다음 세대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 바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실패, 결핍, 부재는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세계의 질감을 알게 하는 첫 감각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 그 책임과 사랑이, 그들의 부서진 세계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뼈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와이의 바람을 생각합니다.
그 바람 속엔 어머니들의 한숨과 체념, 또 애틋한 웃음이 함께 섞여 있군요.
그리고 그 바람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또, 누구에게서 충분히 좋은 사랑을 받았는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이 질문을 조용히 되돌려주며 끝납니다.
어머니가 되는 일, 혹은 누군가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는 일은 결국 생의 무수한 결함 속에서 서로를 지켜내는 작은 연습의 반복— 바로 그 ‘충분히 좋음’을 향한 나지막한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바람 많은 날이면 나는 종종 버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양반의 딸로 태어났으나, 부친의 의병 활동으로 집안은 몰락했고, 삶은 하루아침에 뒤집혔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버들은 결코 비극만의 얼굴로 남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몰락한 세계의 잔해 위에서 스스로의 품을 다시 길어 올리고,
그 품을 타향의 이들—여자들, 아이들, 심지어 굳게 닫힌 자신의 마음에게까지—조심스럽게 내어주었지요.
이금이 작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결혼 이주민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자기 가족과 집과
나라를 떠나는 일이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온 그들이 낯선 언어나 환경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다 알기 어렵다. 결혼 이주민 여성들과 연관된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100여 년 전 사진 신부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한 은유 작가의 말 "금기를 깨는 여성, 경계를 넘는 이주민, 새로운 가족으로 서로에게 곁이 되어 준 이들은 바로 우리 시대 스승이자 친구이다. 이미 와 있는 오래된 미래의 이야기이다."로 소설을 읽고 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