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 채널에서 ‘이혼은 왜 비싼가.’라는 물음에 ‘이혼’의 과정엔 신념의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 가치를 흘려버리느냐, 받아들이고 자신이 발전하는 데 쓰느냐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이다. 받아들이는 대상이 ‘이혼’을 고통이며 지우고 싶은 오답 시험지라 여길 수도 있고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스스로 문을 여는 행위라 여길 수도 있다. 그 순간 나는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통의 순간이 신념의 가치와 동의어라면 비싼 값을 내는 것이 억울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 때마침 원자력 병원에서 알림 문자가 왔다. 4주마다 돌아오는, 난소 기능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으라는 안내였다. 암 수술비가 얼마였더라 따져보았다. 암 수술비, 입원비, 유방 재건 수술비 외에도 일을 잠시나마 중단해야 했으므로 경제적 손실 규모를 따지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암이 왜 비싼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암으로 얻은 것이 무얼까를 따져보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멀쩡하게 운영 중이던 공부방을 중단했으니 나의 ‘쉼’에는 쉼표 이상의 것이 담겨 있어야 했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카톡 하나가 왔는데 SNS 공간에 떠도는 위트 넘치는 글을 캡처해서 보낸 것 같았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대.
그러니까 이거는 제가 좀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계속 어필해야 할 것 같아.
의사 표현이 서툴러서 오해가 생긴 것 같네.
힘든 순간이 오면 신을 탓하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 분(?)은 시련을 주는 신을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협의가 가능한 대화 상대로 놓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원망하며 불러대던 나에 비해 “오해가 생긴 것 같으니 우리 대화 좀 해볼까요?”라는 주파수를 보내면 신도 귀여워서 시련의 크기를 줄여주지 않을까? 다행인 건 나도 언젠가부터 신을 원망하기 위해 불러대기보단 알고 싶어서 불러댔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이젠 알아요. 다만, 아직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찾아볼게요. 시련의 다른 모습이 무언지.”
2023년 수능이 끝난 직후 암 판정을 받았고 올해 1월 유방암 수술을 했다는 건 글 초반에 서술한 바 있다. 공부방은 결국 2023년 12월 31일부터 잠정적인 휴업에 들어갔다. 다행히 학기말고사를 모두 마무리한 후였지만 가장 중요한 겨울방학이 코앞이었다. 한 명의 중학생으로 시작하여 점점 규모가 늘어나면서 중등부가 아닌, 고등부 중심으로 공부방의 수요층이 변화했다. 예전처럼 선생을 기다려줄 수 있는 학생이 이제 없다는 의미다.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하느라 많은 에너지가 쓰였다. 두 달 동안 하루빨리 몸을 회복시켜 늦어도 3월에는 오픈하겠노라 약속했지만 사실 자신 없었다. 3월에 오픈하는 것이 자신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만두었던 학생들이 나를 다시 찾아줄지 의문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안식년’이 강제로라도 이루어진 순간이었는데 행복하긴커녕 불안함만 밀려왔다.
북극한파가 몰아친 평일 오후. 유방암 수술 후 첫 외래진료가 잡힌 날이었다.
두툼한 패딩을 껴입을까 고민한 끝에, 내가 가진 겨울옷 중에서 가장 얇고 부드러운 캐시미어 코트를 꺼내 입었다. 굽이 높고 선이 날렵한 구두도 꺼냈다. 살이 빠지면 발 두께도 줄어드는가 보다. 부쩍 헐거워진 구두에 앞발을 들이밀며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피곤했다. 그냥 평소대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을 걸 그랬나. 퇴원을 앞두고 병원에서 건네준 보험청구 자료 중 진단서의 맨 마지막 글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향후 항암치료 예정임.]
수술 후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술로 떼어낸 조직의 분석결과를 듣고 치료 방향을 잡는 데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저는 항암치료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한 어조이되 신경질적이지 않아야 해. 말투는 부드러우나 끝말을 흐려서 망설이는 느낌을 주지는 말자. 그러면서도 “왜 그런 결정을 하셨죠?”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까. 아직도 밖은 진료예정인 환자들로 가득하고 내가 할애받은 시간은 고작 몇 분에 불과할 텐데.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담당의가 입을 열었다.
“항암이 환자분에게 효과 있을지 없을지 알아볼 수 있는 검사가 있어요.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결정하고 오신 거지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는 하지 않을게요. 대신 항호르몬 치료는 반드시 받으셔야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시니 항호르몬제와 주사는 오늘부터 처방받고 가세요. 항호르몬제와 주사는 쉽게 말씀드리면 폐경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5년 뒤 주사와 약물 복용이 끝나도 나이가 49세가 되는 거니 자연스레 그 이후엔 폐경이 될 겁니다.”
폐경 유도라니. 어떻게 하면 폐경을 늦추고 여성성을 오래 유지할 수 있나 고민하던 40대 중반의 나에게 배달온 처방전은 “여성 호르몬, 아디오스!”였다.
향후 치료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차례였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의료진은 최대한 지루한 내색을 안 하려 노력하였으나 점점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일반적인 갱년기 증상은 모두 겪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발열, 안면홍조, 근육통, 불면증, 우울증 등등.”
이쯤에선 도대체 남아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암세포의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 이 모든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으나 그저 “네네”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으나 A4용지 두 바닥을 모두 채울 부작용 사례를 마주하니 없던 증상이 올라오는 착각마저 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아마 그러면 이 구역의 1급 발암물질은 내가 될 것만 같았다.
거짓말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일하지 않고 열흘 넘게 쉬어본 적이 없어 입원 기간 내내 행복해했다.
레몬수와 아이패드, 소설책은 입원 기간 나의 삼총사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