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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틀 Dec 08. 2024

7장 항암은 반드시 필요한가

 조직검사 후 외래진료가 잡힌 전날, 병원에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추가 검사 비용이 발생했으니 진료 전, 수납하라는 내용이었다. 일반적으로 추가 검사가 진행된다는 것은 떼어낸 조직 세포가 암일 확률이 높음을 의미했다. 당시의 심경을 서술하라 한다면, “담담합니다.”      


 처음엔 혼자 조직검사 결과를 듣겠노라 했다. 당시 남편과 대치 중이기 때문이었다. 암임을 직감한 내가 책과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은 후 내린 결론은 표준치료(여기선 항암치료) 대신 자연치유를 선택하겠다는 것. 그런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 남편에겐 무책임하고 이기적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암이라는 결과를 듣기 전의 일이니 사람이 얼마나 미래의 일을 끌어와 현재 고통받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 대목이다.) 살고 싶은 욕구가 가장 강한 사람은 나 자신인데, 내가 지금 살고 싶다가 아니라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 헷갈리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둬.”라는 남편의 카톡을 마지막으로 더는 말을 섞지 않았다. 부부 앞에 놓인 ‘암’이라는, 얼핏 불행해 보이는 씨앗이 뿌리내리기 전부터 강한 전파력을 뽐냈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둬.


 잘못된 표현입니다. 지금 당장 수정해서 제출하세요.      


 저 말을, 지금 나에게 해도 되는 말인가.

 <나를 그냥 내버려 둬.>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헤집고 또 헤집으며 상처를 냈다. 그 상처는 남편이 애초에 얼마나 못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던가를 입증할 자료를 찾기 위해 과거로 또 과거로 거슬러 갔고 그 때문에 아픈 건 나 자신이었다. 우리는 서로 일주일이 넘도록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채 디데이를 맞았다.      


 주치의와 면담하기 1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대기실 서로 다른 줄의 의자에 앉아 폭력과 같은 침묵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곧 주치의의 “암입니다.”라는 강력한 문장 하나로 침묵시위는 끝이 났다. 누군가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눈물을 삼키고, 누군가는 ‘왜 하필 나인가!’라는 감정이 든다던데 또 한 번 서술하자면, 나는 담담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반응에 주치의는 나를 한 번 쳐다본 후 “예상하셨겠지만”이라는 말로 나머지 상황설명을 이어갔다. 당시 담담할 수 있던 이유를 말하자면 암이 당장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암 환자로 등록된다는 것만으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별할 필요는 없지 않나. 애초에 그곳에 있었으나 존재를 몰랐던 ‘암 조직’을 나는 최대한 소극적으로 인지하고 싶었다. 나에게 닥칠 시련의 이유를 모조리 ‘암’에 돌릴까 봐 두렵기도 했다.


 암을 받아들이고 난 후 스스로에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래서, 뭐. 어쩔 건데.”였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받아들일 것. 노력해서 변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되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갖거나 탓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어쨌든 내게 ‘암’은 찾아왔고 받아들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순종하는 시간이었다.     

주치의가 유방암은 예후가 좋은 암에 속하고 5년 생존율, 10년 생존율에 대해서도 90%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남편이 의사 선생님께 질문이 있다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5년 생존율, 10년 생존율이 암의 생존율을 말씀하시나요?”

이건 또 무슨 우스갯소리인가?

“암 수술받은 환자분 생존율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10년 이내에 죽을 확률도 10%나 된다는 말씀이세요?”

고백하자면 그 순간 남편이 결혼 이후 가장 사랑스러웠다.

나는 큭큭 웃으며 남편을 위로하듯(누가 누구를?) 쳐다보았다.

“사람은 암이 아니어도 10년 이내에 죽을 수 있어, 여보.”


 남편은 10년 이내에 내가 자신의 곁에 없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오로지 남편 혼자만의 충격은 곧 나에 대한 연민으로 변모하였다. 그는 대기실 뒷자리가 아닌 한 칸을 비워둔 내 옆으로 와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나 대신 내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였다. 내 쪽은 차마 쳐다보지 못하는 남편의 옆모습에서 ‘나의 부재’를 상상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유방에 멍울이 만져져 유방 외과 검진을 받은 날은 수능 다음날이었고, 암 선고를 받은 날은 수험생의 정시 결과 발표 첫날이었다. 남편과 일터로 돌아가는 길에 학부모님과 학생의 합격 통지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모든 통화를 마쳤는데 행복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곁에서 밝게 인사하고 통화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나랑 사는 여자가 새삼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를 실천하는 꽤 멋진 여성이지?”

 “응, 나라면 너처럼 이렇게 담담할 수 없을 것 같아.”

 “갑자기 죽을 사람처럼 구는 게 더 이상해. 암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이 순간부터 내가 곧 죽을 사람처럼 굴 필요가 있겠어? 난 지금도 학생들 기말고사 준비하러 가고 있잖아. 하하.”

 “수업 취소하는 게 어때? 괜찮겠어?”

 “왜 취소하지? 내가 지금 갑자기 아픈 것도 아니잖아. 쉰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거 하는 게 머리 비우기에 더 좋아. 대신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이혼하잔 말만 아니면 다 들어줄게.”

 “하하. 역시 그래도 가족밖에 없네. 기꺼이 병시중을 자처하다니. 우리가 지난번에 결국 다툼으로 번져서 마무리 못 했던 거 있잖아. 병원에서 결과 보고 항암치료받으라 해도 나는 받고 싶지 않아. 나 정말 열심히 찾아봤어. 항암치료는 사실 고형암에선 그다지 효과가 없대. 혈액암 종류나 효과가 있는데 가능성 있는 1%를 위해 99%가 희생하는 격이란 말이야. 그리고 돌아보니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충분히 알겠어. 하필 왜 이 시점인지도 알겠고. 이 모든 결과가 나에겐 축복이자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일상을 살면 돼. 혹여라도 와이프가 아픈데 친구들 만나 술 마셔도 되나, 내가 지금 이 시점에 게임해도 되나 생각하지 말란 뜻이야.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자중한다고 해서 내 병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아. 그러니 당신이 더 후회 없이 당신의 월화수목금을 즐기고 주말엔 나를 위해 약간 희생 · 봉사를 해주면 좋겠어. 여기서 희생 · 봉사는 혹시 올지 모르는 우울증과 예민함에 대문자 T처럼 굴지 말고 넘겨달란 소리야.”

 “어떻게 알았지? 나 오늘 일본 유학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걸 취소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

 “허튼소리 하지 말고 가서 놀아. 당신의 하루가 내 병 치료와 관련이 없다는 전제 아래 당신의 하루는 당신을 위해 써. ”


 그렇게 우리는 극적 타결을 보았고 나는 허리까지 치렁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항암제로부터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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