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번뜩 기가 막힌 생각이 지나가 집에 가자마자 반드시 실행하리라 해 놓고는 이틀 뒤 흐릿한 환영을 잡으려 애써본다. 머릿속에는 참 많은 생각들이 제각각 빛을 내며 다글다글 들어차 있는데, 뒤죽박죽 좁은 병목을 지나는 퇴근길 차들의 행렬처럼 가까스로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좀처럼 정리되지 못하고 부산스럽다.
적어 둔 메모를 뒤적거리면서도 아, 분명 메모할 때만 해도 감탄하면서 적었는데 이게 뭐지 싶고..
한숨만 나온다...
반짝반짝 와글거리는 머릿속에 대비되는 고요한 몸뚱이.
시끄럽게 바쁜 생각들과 한없이 한가한 손.
우주를 품고는 있지만 겉으로는 그저 기댈 곳만 찾고 있는 머리..
하. 상상 속의 나는 정말 멋진 사람인데..
30대를 넘어서고 또 중반을 지났다.
누구는 개인적인 성공을 거머쥐어 유명해지고 누구는 전시회를 열었대. 또 누구는 돈을 엄청 벌었단다.
어김없이 날아오는 질문. 넌 요즘 뭐 하고 지내?
늘 그렇듯 나는 그림을 그리고, 생계를 위해 출근도 하고,
가끔 달리기도 하고, 다람쥐와 식물을 키우면서 지낸다.
겉으로는 마냥 여유롭고 한량 같은 모습이지만 머릿속에는 생각이 참 많다.
아이디어가 샘솟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거대한 사업을 일구고 대박이 팡팡 터진다.
.. 머릿속에서만 일해서 문제지만.
아직도 무슨 일 하냐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 어버버 거린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기에도, 글을 쓴다기에도, 그렇다고 회사원이라고 하기도 그냥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