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전업주부에 대해 가지는 편견 중의 하나는 '자유롭다'이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면 몸이 자유롭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편의 말대로 아이들이 있을 때와 달리 온전한 내 시간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온전한 시간이란 것이 정말 온전한 걸까? 아이들 보내고 설거지하고청소하고 이른 점심을 먹고 정리하다 보면그 시간은 찰나가 되어버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자녀를 둔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6교시를 제외하고 5교시를 하고 하교하면 오후 1시 30분이다. (둘째 아이는 5교시가 수업의 끝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하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집이니 늦으면 1시 40분 정도가 된다. 학원가는 시간 중간에 1시간이 비어 바로 집으로 온다. 아이가 학교에 가있는 동안 집안 청소를 하고 TV를 보며 점심을 먹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하교시간이 되었다.하루 중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지만 마음 한편엔 그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날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인 듯하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도 잘 돌보고 나의 시간도 잘 보내고 싶은 두 마음이 있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소득이 없다고 생각하니 허탈했다. 하루가 가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셋째 임신 전, 첫째와 둘째가 유치원에 다녔을 때는 오전에 운동을 다녔다. 크로스 핏, 복싱, 필라테스, 걷기 등 다양하게 운동을 했다. 동네에 있는 산을 오르기도 했다. 운동에 한참 몰입해 있을 때는 새벽부터 일어나 홈트를 했다. 아이들과 함께 밤 9시쯤 잠이 들어 새벽 세네시에 일어나 운동 동영상을 보며 홈트를 하고 샤워를 한 후 아침을 맞았다. 홈트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자 아이들을 보내고 운동센터를 다녔다. 그러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자 센터를 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에 가족들이 걱정을 하여 일도 하지 못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게 되니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던 중 남편과 함께 셋째 임신을 계획했다. 셋째를 바라기도 했고, 외출이 어려운 시기이다 보니 임신을 하기에 적기라 생각했다. 임신을 하고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무료해 사람도 만나보았지만 즐겁지 않았다.
임신 중기가 되자 이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었다. 뭘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아이 학교 알림 앱을 통해 부모교육코칭 전문가라는 자격증 수업을 알게 되었다. 줌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의 공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아이를 출산하고 계속해서 심리학 수업을 들었고, 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글과 말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다. 나의 글쓰기의 시작인 셈이다.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이들이 3명이 있다. (당시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 둘째는 7살, 셋째는 4개월이었다.) 아이들의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쉬움이 들곤 했다.
낮밤 구분 없이 아기를 돌봐야 할 때와 달리, 아기가 밤에 통잠을 자기 시작해 몸에 여유가 생기기는 했지만,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없다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내가 아이의 생활리듬에 맞춰야 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와 함께 외출하게 되면 유모차 바구니에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다. 아이가 잠이 들면 근처 카페로 가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켜 글을 썼다. 아이는 한 시간가량 유모차에서 잠을 잤다. 작가란 꿈을 열망하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남편과의 갈등, 친정가족에 대한 서운함 등등 나를 짓누르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아기를 돌보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워 아이가 잠든 시간을 활용해 글을 썼다. 새벽이든 밤이든 낮이든 아이가 잠을 자면 무조건 내 시간이 되었다. 글쓰기는 나만의 약속이자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결심을 한 것이 아니었다. 목표를 두지도 않았다. 글쓰기 자체가 생활의 일부이자 숨구멍이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처럼 여유가 생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를 재우면 바로 물을 뜨겁게 끓여 커피 한 잔을 탄 후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하얀 화면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을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내게는 쉼이었다. 만약 시험이 목표였다면 아이를 돌보며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 것이다. 습관화하려고 노력했던 것보다 규칙적인 생활리듬이 잡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임신 전 운동을 했을 때도 운동을 하려고 결심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길 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람도 듣지 않고 일어나게 됐다. 내가 정해둔 루틴 그 자체가 나를 살아가게 했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았다. 루틴대로 해야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습관이 몸에 베자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때쯤이면 아이가 낮잠을 자겠다 예상했다. 아기가 100일이 되어가면서부터였는지 낮에도 잠을 길게 자기 시작했다. 길게는 두세 시간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학교에 간 후 9시에서 10시 사이 아이는 분유를 먹고 잠에 들었다. 그리곤 12시 전 후로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점차 낮잠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내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쓰는 나만의 방법이 하나 둘 생겨났다. 시간을 내 글을 쓰는 내가 참 좋았다.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에게만 몰두했을 시간에 틈틈이 나만의 시간을 만든 내가 대견스러웠다.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믿는 효능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였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나 자신을 믿고 신뢰하게 되었다. 산후 우울증은 어느새 비껴갔다.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글을 써 내려갈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생각과 느낌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공부와 같다. 공부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처럼 글쓰기도 시간을 내야 한다. 글쓰기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첫 번째 방법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 오전시간을 활용했다. 주로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글을 썼다.
두 번째 글 쓰는 방법은 나만의 글 쓰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에는 집에서만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아이를 보내고 여유가 생기니 장소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로망이 있다면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커피 한잔 속 카페인은 나를 각성시키기에 충분했다. 맑은 정신으로 써 내려간 글은 내 몸도 가뿐하게 했다.
세 번째 글 쓰는 방법은 나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감을 얻는 방법으로 내면의 나와 만나게 된다. 아티스트웨이에서 이를 아티스트 데이트라 말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란 내 안의 아티스트를 깨우는 일이다. 아티스트 웨이에 위하면 소풍 같은 것, 즉 미리 계획을 세워 모든 침입자들을 막는 놀이 데이트의 형태를 말한다. 자신과 내면의 아티스트, 나의 창조성이라는 어린아이 외에는 아무도 데려가서는 안된다고 한다. 오로지 나 자신과의 데이트를 해야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막히거나 집중이 되지 않는 날에는 억지로 글을 쓰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동네의 작은 산을 오르기도 한다. 간단히 김밥과 병에 든 커피를 사 산에 올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내려온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잠시 멈춰 핸드폰에 메모를 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은 글쓰기 소재가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내향형이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한다. 힘이 되어 일상생활을 잘 해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네 번째, 글을 쓰려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한다. 글쓰기 또한 공부나 운동처럼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려면 우선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 마음이 힘든 날이면 객관적인 시선에서 글을 쓰기 어려웠다. 내 마음을 터놓는 글이 될 뿐이었다. 밥도 잘 챙겨 먹고 수면도 충분히 취하면 글은 자연스레 독자를 향하게 되었다.
내가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우공이 산을 옮기는 것과 같다. 어리석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을 가진 '우공이산'처럼 우직하고 꿋꿋하게 하는 일이다. 엄마이자 아내 이기 전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매일의 작은 노력이 성공의 열쇠가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꾸준한 글쓰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