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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와 트램프 Feb 13. 2024

소소한 이야기를 : 사라진 그녀, 그리고 이야기

그녀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도망쳐야만 했을까.

2023년,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지나 2024년이 찾아왔다. 본인에게는 브런치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했음에도 여러 사정과 다양한 일들이 생기며 아쉽게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 아쉬웠다. 더 나아가고 싶었고, 더 만들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기에 그것을 보답하지 못한 것이 야속하다고만 표현하고 싶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2024년이 벌써, 그것도 구정을 지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끔 잡은 키보드와 여러 자료들을 풀어보며, 다른 곳에서도 써내려가는 몇몇 이야기들과 다시 찾아가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때에, 어떻게 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어떻게 보면 조금은 설레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찾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나를 눈물짓게 했다.



이번 소소한 이야기를 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만화의 이야기가 아닌, 어느 아이돌 가수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그렇기에 본인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와 같이 다른 이야기들도 한번 풀어나가고 싶어했는데 이를 여기서 처음 선보이게 되어서 많이 기쁘다. 이번에 선보일 이야기는 촉망받던 아이돌에서 배우로 나아갔던 오자와 나츠키 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많은 분들에게는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고, 일본 내에서도 단기간에 활동한 아이돌이자 배우였지만, 그녀의 이야기 하나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의미로 회자가 된다. 좋거나, 혹은 나쁘게..


또한 글의 내용이 몇몇 분들에게는 조금 불쾌할 수도 있고, 살짝은 선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은 양해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들만이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그 점을 더 많이 봐주었음 좋겠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그래야 레이디와 트램프 답지 않을까 :)



1. 새로운 드라마, 그리고 어느 아이돌의 도전


1989년, 특수 촬영과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담당했던 토에이는 어느 드라마 하나를 제작하게 된다.


시리즈의 모든 작품들을 모아서 그려진 그림 - 출처 : PIXIV


제작될 드라마가 속해있던 시리즈, 그 시리즈의 이름을 '토에이 불가사의 코미디 시리즈' 라고 일컫는다. 어딘가 마법소녀같으면서도 로봇들도 있고, 좀 특이한 스타일의 이 작품들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본래 이 시리즈물 자체가 상당한 독자적 느낌을 가져왔었다. 8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가면라이더와 울트라 시리즈는 더이상의 후속작을 내지 않았었는데, 그러한 분위기를 타면서 또다른 특수촬영의 시리즈가 제작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었다. 물론 중간중간 다른 곳에서 작품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하나의 작품으로만 마무리가 되었기에 이러한 시리즈물의 새로운 시작은 많은 팬들이 바래왔었고, 이 시기에 한 자리를 가져가던 전대물과 견줄만한 것들을 원했었기에 가능했다. 원안을 그 유명한 만화가 '이시노모리 쇼타로' 가 맡았고, 시리즈 전체의 각본은 우라사와 요시오가 담당했었는데, 훗날 여러 작품에서 우라사와 요시오는 자신의 코미디 성향을 여러 작품에 집어 넣으며 유명한 각본가가 되었다.  


어찌되었든 이 시리즈 물의 첫 탄생은 놀랍게도 '로봇물' 이었다. 우리가 아는 그런 메카물까진 아니고 아기자기하고 특이하게 생긴 로봇들이 자신들의 매력을 보여주모 슬랩스틱마냥 개그를 펼치는 로봇 메카물에서 셜록 홈즈에 나오는 '어린이 탐정단' 의 모티브를 가져왔던 소년 탐정단 시리즈를 지나 '실사 마법소녀' 의 작품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정확히는 1989년에 마법소녀, 그것도 실사로 만들어지는 이런 작품들은 당시 마법소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안 한다면 굉장히 놀라운 시도였다. 사리와 아코쨩의 리메이크 작품들이 명맥을 유지하는데에 그치던 시기에 굳이 미소녀 시리즈라 치면 다양한 작품들이 파생되었던 시점이라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었다. 아예 실사로 제작한다는 개념 자체가 드물었을 뿐더러 시리즈의 방향성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감안할때, 이를 각오할만한 내용이나 요소가 필요했으니까. 결국은 세일러문에게 영향을 끼친 한 작품을 내고나서 엄청난 임팩트를 내버리게 되었다.


어찌되었든간에 야심차게 시작한 실사 마법소녀, 아니면 미소녀 시리즈의 첫 시작은 바로 아래의 작품에서 시작하게 된다.


마법소녀 중화 파이파이이의 이미지

그렇게 시작되는 첫 마법소녀 시리즈의 작품은 바로 '마법소녀 중화 파이파이!' 가 되시겠다. 이름만 봐도 중국식 이름이 물씬 나는데, 실제로 소잿거리가 중화 마법이라는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당시 아이돌로서 서서히 인기를 올려가던 '오자와 나츠키' 가 맡았다. 여러 드라마에서 조연을 맡으며 연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와중에 처음으로 맡게 된 주인공 배역이 바로 이 드라마에서 배역이었고, 아이돌로서도 처음으로 맡겨진 단독 주인공이었다.



촬영 당시의 오자와 나츠키.


작품의 인기는 당시 특촬물이 서서히 암흑기로 빠져들어가던 시기였다고는 하지만 (전대물은 이 시기를 암흑기로 보고있다.)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작품 자체가 지금 들어와서는 조금은 마이너가 짙다고는 하지만,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시리즈물과 미소녀의 조화, 그리고 색다른 이야기는 주 시청자들이었던 어린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녀의 팬들에게 각인시키기에는 상당히 좋으니 말이다. 전작에서의 단체 주인공이 아닌, 단독 여주인공의 등장은 여자 아이들에게도 눈길을 사로잡기에도 좋았다. 또한 컨셉의 미묘한 차이점이나 엇갈림도 잘 엮어냈기에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싸우는 미소녀라는 점에서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동시대의 '스케반 형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색다른 시도의 작품이자, 당시 일본 아이돌들의 배우 커리어의 시작점을 열었던 다양한 작품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바로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



2. 사라져버린 여배우, 그리고


인기도 서서히 얻어가던 시기, 그리고 작품 방영의 계약 기간을 1년으로 예상하던때에 사건이 터지게 된다. 오자와 나츠키가 촬영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매우 뜬금없이 터진데다가 내용 자체에서도, 아니 드라마가 별 이상없이 굴러갔던 때에 이러한 일이 터져버린 것은 결국 조기 종영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26화에 뜬금없이 작품이 종영하게 되버린다.


드라마의 배우, 그것도 주연이 촬영거부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손실이자 치명적인데, 거기다 '단독 주연' 이라는 점에서 리스크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5년 전의 바이오맨에서 옐로 포의 배우가 잠적하며 없어져 버린 것도 제작진에게 엄청난 충격과 여러 뒷처리를 남기며 겨우 넘어갔었는데 아예 작품의 '단독' 주인공 이라는 점에서 얻은 피해가 더 컸을 것이다. 남겨진 배우들의 스케줄에서도 갑작스럽게 드라마의 종영이 터져버리고, 줄거리에서 마저 이야기를 어떻게 메꾸어야 할지 하는 판에 그녀의 자진 하차는 아무런 이유도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하차 직후에 뭐라도 말을 했음 모를까, 아예 잠적을 해버리며 그녀가 왜 촬영을 거부하고 도망치듯 사라졌는지에 대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간에 제작진은 어떻게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내야만 했고, 이에 따라 비슷한 컨셉과 같은 세계관을 가진 작품 하나를 후속작으로 방영하게 된다.


마법소녀 중화 이파네마! 의 시리얼


그 작품은 바로 '마법소녀 중화 이파네마!' 가 되시겠다.


사실 파이파이와 세계관이나 이야기가 많이 비슷한데다가 전작의 결말에서 흔히 끝나는 작품들에 붙는 '안녕히' 라는 자막도 아닌 '계속' 이라는 자막이 붙은 것부터 복선이 시작되었다. 이런 땜빵 방영에 당시 시청자들의 반응은 매우 엇갈린데다가 뜬금없는 새로운 작품의 모습이었기에 작품의 인기 자체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배우 '시마자키 와카코' 는 다행히도 활동을 하고 있다. T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올스타 감사제의 여자 진행자로서도 유명하고, 그녀가 아이돌 가수시기에 불렀던 '남남서' 역시 인지도가 있는 편. 작품의 인기가 덜 할 뿐이지 다행히도 그녀는 중견 연예인으로서 잘 지내고 있다.


다시 되돌아 와서 오자와 나츠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가 사라진 이후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예로는


"그녀가 아이를 낳아야만 했기에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임신을 했다."
"매니저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


와 같은 흉흉하고 무서운 소문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어느 하나 정확한 이야기는 없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그녀가 2003년 어느 예능에서 직접 밝힌 바로는, "연예계 생활이 바쁘고 지쳐서 매니저와 사랑의 도피를 하려고 했으나, 그가 약속한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라고 어느정도 루머를 인정하며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역시 출처가 불분명하다. 심야 프로그램에서 했다는 말이 있다지만 실제로 그녀가 이러한 말을 했는지부터 정확하지가 않으니 말이다.


일부에서는 그녀가 반년 계약만 체결했기에 이에 맞춰서 하차 요구를 했을 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며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당장 촬영 거부를 했다지만 마지막화는 촬영한게 맞고, 끝나자마자 바로 잠적을 한 것. 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녀뿐만이 아니라 제작진 측에서 어떠한 공식적으로 내놓은 이야기가 없었기에 정확한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애초에 후속작의 주인공이 마지막화에 갑작스레 나왔다는 것은 그녀가 정말로 촬영 거부를 했기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되니까..


어찌되었든 간에 오자와 나츠키는 잠적을 해버렸고, 약 4여년간의 활동 중단 이후 복귀하게 되는데...



3. 내 아이돌이 이렇게 바뀌었을리가 없어.


시간이 흘러 1993년, 매우 뜬금없이 어느 배우의 헤어누드집이 발매가 되었다. 사진집의 이름은 '조숙' 이었고, 그 모델은 바로 오자와 나츠키였다.


그녀의 사진집 '조숙' 의 표지와 사진


이 헤어누드집은 상당한 인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2주만에 15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그 인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인기에 더해 수위가 더 높은 누드집도 발매가 되었고, 예능이나 여러 단막극, V시네마와 같은 곳에 서서히 출연해나가며 다시끔 아이돌이 아닌, 이제는 어엿한 배우나 모델로서 활동도 지속했으나 1995년 즈음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기록에 따라서는 1997년까지는 활동을 한 것으로는 보고있다.)


1995년에 발매된 달력 모델로서의 모습


그 남은 기간동안 카바쿠라와 같은 풍속점에서 일을 했었다는, 즉 업계 용어로는 '물장사' 에 종사했었다는 근황 이후 다시끔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그녀는 끝내 AV 배우로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첫 출연작의 제목은 바로 '결심' 이었는데, 내용 자체가 물론 그녀가 출연하게 된 결심과는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느낌의 제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2014년에 올라온 어느 팬의 회상, 매우 정확해서 보는 순간 말을 잃었었다.

사실 특촬물에 나왔던 여배우들 중 AV의 나왔던 배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로망 포르노' 라는 성인향 비디오에서도 나왔던 배우들이 있었지만, AV에 출연하였다는 점 하나만으로는 굉장한 충격을 가져다 줄 만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촬영 거부와 잠적, AV배우가 되어버린 태그는 매우 충격적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러한 암흑기를 벗어나거나 조용히 잘 살고있는 배우들도 많지만, 그녀의 경우 이러한 이야기가 보통 배우들의 커리어로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웠기에 의아함만이 남을 뿐이다.


그녀가 AV배우 시기 발매되었던 한 작품의 제목이 '시어머니는 전직 아이돌' 이라는 작품이 있다. 어지간해서  이상하고 괴상한 작품이나 장르를 찾아보는 본인에게도 이 제목은 상당히 기분이 묘해지고 꺼림칙 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직종이고, 업이라면 업이지만서도 한때 아기자기하고 밝은 이미지였던 그녀에게 이러한 제목이 과연 어울리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고,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아쉽지만서도...



4. 잠깐의 돌아옴, 그리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2014년, 그녀의 블로그가 갑자기 알려지기 시작했다. 블로그의 내용은 자신의 성형, 피부 관리에 대한 경과를 다루는 내용이었는데, 첫 글에서 자신을 '아라포' 라며 소개하는 것을 보면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아라포는 일본에서 40대 전후의 세대층을 의미한다.)


그녀가 다니던 미용 외과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그녀의 모습

이렇게 본인이 다니는 성형 외과의 영상에서도 보이듯, 나름대로 자신의 관리를 하던 것으로 보였다. 약 1여년의 기간을 두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렸었는데, 2015년 9월 이후로 블로그마저 뚝 끊기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그녀가 과연 무엇을 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일본의 사이트들을 뒤져봐도 기록하나 없고, 몇몇 팬들은 그저 조용히, 잘 살고있길 바랄 뿐이다.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인생사가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갔는가? 라는 질문에는 답을 미처 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그녀가 아닐 뿐더러, 누가 봐도 그렇진 않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도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배우가 있다, 바로 '헬렌 우드' 라는 배우인데, 댄서로서 촉망받던, 그리고 실제로도 발레리나로서 유명햤던 배우였다. 그러던 그녀가 갑작스레 소식이 끊기다 70년대, 뜬금없이 '돌리 샤프'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등장하게 된 영화가 그 유명한 '딥 스트로트'  포르노 계의 바이블로 불리우는 그 작품이 맞다. 같이 나왔던, 그리고 포르노 여배우로서 인기를 얻은 린다 러브레이스마저 사기당했다며 결국 반 포르노로 돌아서게 만들었던 그 유명한 작품... 결국 그녀는 포르노 배우로 전락하여 살아가다 9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수하다 못해 밝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아려온다.


무엇이 그녀들을 이런 곳까지 끌고왔을까, 물론 그녀의 촬영 거부가 시작점이라면 시작이겠지만, 발랄하던 아이돌 시기와는 너무나도 극명했기에, 그렇기에 나에게 다가오는 충격은 더 컸을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느끼게 된 점은 인생사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끔 깨닫게 해주었다.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결과가 매우 어둡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받았던, 이에 부응하던 그녀였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을, 그리고 어딘가 아픔을 받는 기분이다.


그녀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 본인만이 알고 있을 이야기가 어디선가 써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인생사가 소설과 같듯 어느순간 잘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과거의 아픈 이야기가 아닌 이제는 새로운 인생의 한 소절들만이 본인의 가장 좋은 시간으로만 적혀지길 기원하며, 그렇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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