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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와 트램프 Jul 30. 2024

소소한 이야기를 : 나의 덕질을 찾아서 (2)

메카물이 마법소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후의 미팅은 언제나 맑음

지난 이야기 : 처음 맛보게 되었던 빨강머리와 양갈래 머리를 가진 소녀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만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나를 만화에 빠지게 해주었고, 그런 충격 아닌 충격은 실로 놀라웠었다.


고3이라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시간,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개와 늑대의 공존 같은 혼란스러운 시점이었고, 이를 타파하는데 정말 좋았던 것들이 바로 위의 두 만화였었다. 아픔과 트라우마, 아니면 겪지 못한 일들을 잠시나마 대리만족 하기에 좋았던 그런 작품들, 아무렴 내가 좋아하면 어떨까


이번 2편에서는 20살이라는 첫 사회의 시작점에서 내가 좋아하게 되었던 만화들의 이야기,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참가하게 된 단체의 자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서툴고 무지했던 나의 어린 첫 20대 이야기, 부끄러우면서도 가끔은 생각하는 것 마저 주저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것이 나로서도 많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흑역사같은 이야기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음은 분명하기에, 여러모로 부끄럽지만 도움은 될, 한번 열어보는 나의 다이어리를 같이 봐주었음 좋겠다.



- 빨강 친구들은 왜 이렇게 아기자기할까 


이 만화를 가장 빠르게 정리하자면 이 캐릭터들이 있겠지

졸업 직후,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남은 시간을 집에서만 보냈었다. 사는 곳은 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다름없는 '군' 이었고, 본인 역시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성질을 가진 방콕러였다.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날씨도 겨울이고 집에만 있기에 정말 좋은 날씨여서 주구장창 했었던 피파18과 오버워치,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다.


그렇게 오버워치에 열중하던 어느 날, 게임만 하기에는 허전해서 배경음악을 항상 정하기로 했었다. 취향이 조금은 남들에 비해 늙었던, 좋게 말하자면 올드했던 나였기에 항상 틀어놓았던 여러 오페라나 노래들, 서서히 질려가던 시점에 어느 알고리즘은 나를 '추억의 애니 오프닝 역사' 라는 영상으로 이끌어 주었다.


지금은 아쉽게도 사라져버린 채널의 그 동영상, 기억으로는 1939년부터 2017년의 만화 역사를 정리하여 주제곡이나 음악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즈니 노래나 한국의 애니노래도 많이 들어있던지라 시간이 상당히 길었고, 이를 배경음악 삼아 틀며 게임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느 가사, '범디기 범디기 범범 디기디기디기 챠챠' 라는 가사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뭔가 발랄하면서도 아련한듯한 그런 노래가 나에게 딱 다가오는 순간...


"아 이거다! 이거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의문이 아니었다. 


찾아본 그 만화의 정체는 바로 '빨간망토 챠챠' 였다. 진짜 딱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라는 말이 어울리던 만화였기에 흥미가 절로 생겼다. 줄거리도 찾아보니까 어쩜 내 스타일인지... 챠챠와 뚜뚜, 빙빙 이라는 세 친구가 힘을 모아 변신을 하면 나타나는 아리따운 투희 '메지컬 프린세스'가 적을 물리친다는 매우 1차원 적인 이야기, 그리고 독특한 개그와 개성은 새로운 만화의 페러다임을 제시한 듯한 기분을 주었고, 앤과 아즈망가대왕과는 전혀 다른 그런 매력을 가졌다고 믿고 싶었다, 아니 믿었다. 어쩌면 '빨강' 머리 앤과 '빨강' 망토 챠챠가 가진 빨간색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되었다. 둘다 작고 귀여운 그런 캐릭터들이니까.


이런 귀여운 챠챠에게 빠져든 것은 우연이 아닐것이라 믿고있다. 아직까지도


누가 봐도 내 나이 20살, 이런 것을 본다고 뭐라 할 사람이 많이 없었어도 딱 내 옆의 사람은 그랬다. 부모님은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게 보곤 했었다. 아는 만화라고는 더 과거의 캔디밖에 몰랐던 엄마는 나에게 "이젠 캔디에 빠지는구나." 라며 지나가듯 말을 붙였다. 조용하고 가벼운 읾침이었음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좋으면 장땡이랍시고 카톡의 다양한 배경이나 프로필 사진에 챠챠를 도배했다. 챠챠가 그려진 메모지를 사고 스티커도 사고, 더 사고, 더 사고... 그렇게 덕질에 처음 빠지게 되었던 시기였다. 누가 뭐라 해도, 놀려도 그냥 내 자신이 당당하면 되었다고 싶던 그 시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기억한다. 이런 에고가 몸에 녹아내리면서 더 크게 무언가 잘못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만화에 대한 러쉬, 그리고 한 작품은 나의 인생을 조금씩 뒤바꾸고 있었다. 



- 메카물을 보려다가 마법소녀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어쩌면 내가 처음 길게 볼 수도 있었던 메카물 '전설의 용자 다간'


챠챠로 시작되어버린 만화에 대한 엄청난 관심은 결국 여러 장르를 찾는데 일념이 되어버렸다. 유튜브가 생각만큼 그 당시에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던 때였기도 했고 뒤져보면 다양한 만화들이 있던 때라 좋다고 뒤져보던 그 시기, 한 애니를 찾아냈었다.


그것은 바로 '전설의 용자 다간' 이라는 메카물이자 로봇물이었다. 사실 어릴적에 또래 아이들이 즐겨보던 만화를 나는 전혀 보질 않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책만 엄청 봤었다는데 그것도 사실 기억에는 없다. 그저 유치원에서 틀어주는 만화는 멍때리며 보고 그랬던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만화에 환장하게 되어버렸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참으로 빨리 알아버렸다고 생각하면서.


다간을 처음 보던 시각은 로봇물 치고는 좀 박진감이 컸었다는 것이였다. 말하는 로봇이 애 한명 붙잡고 세계평화와 지구를 지켜야한다며 말하고, 그걸 또 주인공도 좋다며 싸우는 그런 모습이 참으로 어떻게 보면 가관이었고, 신선했었다. 한 2화까진 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름 재밌게 봤었다. 근데 이게 다였다.


다간을 2화쯤 볼 무렵에 옆 동영상으로 '세일러문' 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이름 세일러문, 호기심에 한번 딱 눌러봤던 그 동영상에서 나오는 세일러문은..


솔직히 첫 인상이 너무 안좋았다. 


사실 지금은 세일러문을 좋아하는 만화, 아니면 마법소녀의 팬으로서 리스펙하지만 첫 모습은 상당히 좋지 못하였다. 작화나 분위기는 좋은데 주인공이 너무 울보였다. 시도때도 없이 울고 싸워도 울고, 말해도 울고...


저런 주인공을 데리고 뭘 하겠나 싶던 첫 인상과 모습. 하지만 두고 보려니 이상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주인공이자 저렇게 울면서 먹고 자는 저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들이 많았다는 것은 참고 볼 용기를 주었다. 이상하게 좋아지는 그런 마성의 만화의 첫 시작은 세일러문이었다.


마법소녀로서 처음 좋아하게 된 첫 작품이었던 것은 지금으로서는 인정하게 된다. 챠챠는 마법소녀라는 구별 없이 그저 하나의 작품으로만 좋아한거였지 마법소녀라고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세일러문을 보게 되면서 이런 구성과 요소가 마법소녀의 작품이구나. 하는 그런 첫 인식을 가지게 되었음에는 분명했다. 이건 캐릭터의 좋고 싫음을 떠나서 '마법소녀' 를 좋아하게 되었던 첫 시작점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로봇을 보려다 마법소녀를 보게 되어버린 그런 어긋난 시작점, 지금으로서는 조금은 황당스럽고 이상하겠지만 어쩌면 나의 방향성, 그리고 인생을 어찌 보면 바꾸게 해줬던 하나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물론 로봇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법소녀를 더 좋아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이 선택이 단기적으로 보면 놀림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니까.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싫기도 한 그런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할 뿐이다.



- 내가 좋아하는데 뭐가 더 필요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좋은 영향을 주기 위했던 나는 과연 그랬을까?

대학교, 꿈에 그리던 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설레고 가슴이 뛰던 그 당시를 나는 기억한다. 비록 사람들에게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없는 자존심도 다 긁어모아 다녔던 그 장소를 잊지 못한다.


처음 보는 누군가를 돌아보는 사람, 벌써 친해져서 같이 다니는 사람들, 아니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섞여있는 곳은 매우 나에겐 흥미롭고 어떻게 보자면 무서웠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공학이 아닌 남고로 다녔던 나에겐 여초과라는 모습이 두렵기만 했다. 


누군가 말을 걸면 어떡하지, 다가오면 어떡하지? 하는 지금으로서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그런 생각들. 나름대로 나 자신을 어필하고 싶었는데 방도가 없었다. 들이대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방법을 찾기에는 어려웠기에 찾은 방법은 다름아닌 만화를 통한 소통이었다.


과 자체가 만화와 연관이 되어있는 곳이었기에 조금은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지금은 이렇게 해서도 안되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급한 마음도,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도 다 중요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봤던 그런 만화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작점은 좋았었다. 나름대로 잘 봐주기도 했고 이야기가 조금은 되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다들 알아서 사람을 찾아갔었고, 나는 그게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잠시동안의 '어그로' 였을 뿐이었지 장기적인 관계 유지에는 실패했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밖에 말하기 어렵다.


본인이 덕질 초창기에 많이 모았었던 일명 '인쇄소 스티커' 의 예시 (출처: 쿠팡)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엄청났었다. 그래서 내가 모았던 스티커나 여러 작은 선물들도 주었었다. 이러면 좀 어필이 될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마저도 한순간의 생각이었을 뿐 전혀 효과가 없었다. 


서서히 무언가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MT 라는 것을 갔었다. 처음 가보는 그런 설레임 반 두려움 반, 그런 것이 교차하여 도착한 장소.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다름아닌 '세일러문 주제가를 부르고 만 것!'


물론 객기에, 술김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술도 먹지 않았고, 그저 내 분위기가 이끄는 그런 것으로 이를 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칠 지경, 아니 그냥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년 전 3월의 나는 그러질 않았고 되려 자랑스러워 했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지, 아니 그냥 내가 왜 저렇게 했는지 지금 봐도 많이 이상할 뿐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나의 입지나 인식은 점점 더 바닥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정한 그런 자동차의 부품같이 걸리지 않는 그런... 서서히 누군가는 날 피했고 누군가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행동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덕질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었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그런 일념으로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고만 있었다. 말리는 사람 없이, 그런 부품 없이. 그리고 이렇게 시작되어버린 일들은 정말 아이러나하게도 나에게 첫 경험들을 하게 해주었다.  


3편에서 이어!



- 글을 마치며


2편도 드디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브런치에 써야겠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1년이 지나 지금와서 이렇게 몰아서 쓰는듯한, 과제같은 그런 느낌도 들곤 합니다.


챠챠라는 작품을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사실 이 챠챠라는 만화를 길게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귀엽고 좀 취향에 맞다싶었지 이렇게 까지 저의 명줄아닌 명줄을 잡아놨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던... 하지만 지금 와서는 어쩜 이런 만화에게 빠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말 처음이라 해볼 수가 있었던 그런 경험이라 생각하면 좋을 거고, 아니라면 아닌 그런 짜릿한 장난 같은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세일러문과 다간, 전혀 연관성이 없는 작품들이지만 저는 이런 어긋난 만남이 어찌보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것을 보며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빠져드는, 한치 앞도 모르는, 알면 재미없을 그런 인연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어떻게 마법소녀에 빠지게 되었나? 하고 물어보면 이렇게 다간과 연관되어 말하는데, 다들 어이없어 하거나 놀라는 눈치를 보았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도 좀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이기도 했고 너무나도 뜬금없다는 것도 잘 알기에 웃어 넘어가곤 하구요.


대학교를 처음 다니던 때의 저를 지금 생각해보자면 너무나도 어리석었고, 너무나도 순수했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더 때묻은 친구들과 인생 선배들이 많았었던 그 당시에 저는 그저 누군가가 이끌어준다고만 생각했었고 의지하기에만 바빴는데, 지나고 보면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음이 맞았습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관계와 만남을 저는 너무나도 늦게 알았고 그저 '인연' 으로만 감당하기에는 그런 사회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던 것도 있겠지만요. 눈에 띄기에만 연연하던 저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려옵니다. 왜 그랬을까? 라는 말 밖에는 생각이 잘 나지도 않네요.


다음 3편에서는 저의 첫 팬미팅 참가, 그리고 지금의 좋은 인연으로 남는 어느 성우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봐주셔서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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