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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나눔 Jun 10. 2023

끝이 없는 길

숲 속 길을 내려오는데, 나도 모르게 한 곡의 노래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정확한 가사도 희미한데, 음정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냥 흥얼흥얼 나만의 뮤직 이벤트를 열고 있었다.

근처 의자에 앉아서 그 곡이 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림자 벗을 삼아 걷는 길은~

네이버에 입력을 하고 죽 밑으로 내려가니 노래 하나가 눈에 뜨인다. '방랑자'.

가수 박인희의 노래였다.


박인희! 내가 어릴 때 뜨문뜨문 들어본 이름이고 희미하지만, 익숙했었던 이름이다.

뭔가 아름다운 서정이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렇게만 그 이름을 기억했고, 가수라는 것만 희미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부른 노래가 잘 알려지고 내게도 친근한 그런 노래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노래와 가수가 내 속에서 드디어 매칭이 된 것이다.

'모닥불'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대학교 때 친구들과 모여 앉아서 너무도 많이 불렀던 노래가 아닌가?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길가에 가로수 ~ 로 시작하는 '끝이 없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다. 시작 반주의 그 아름다운 멜로디는 잔잔 하면서도 가슴을 여는 운율을 담고 있다. 

그리운 사람끼리 마주 앉아서 ~  이 노래의 제목이 '그리운 사람끼리'였구나!

맑고 청아하지만, 지적인 음색이 어우러진 목소리는 이미 많은 히트곡을 불렀었었다.

그녀가 시를 즐겨 쓰고 자작곡도 여러 곡 있다는 것을 물론 지금 알았다.

가수보다는 방랑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볼륨을 작게 하고 귀에 가까이 대서 그간 내게는 이름 없는 노래였던 주옥같은 서정시들을 들으며 숲을 내려왔고, 차에서도 계속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박인희를 아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그러면서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청소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다시 만난 아내에게 스마트 폰으로 '끝이 없는 길'을 들려주었다. 

"아, 들어봤어! 그런데 누가 불렀는지 몰라." 

몸소 '모닥불'을 불러주며 잊어버렸을 아내의 추억의 이름을 매칭시키려 노력했다.

아내는 아~아! 하는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계단을 올라간다. 

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거실에서 나만의 음악 이벤트를 열었다. 


그녀는 방랑을 마치고 3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아니, 이제 또 방랑하는 시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불후의 명곡'에도 출현했다. 

윤형주, 김세환 등과 함께 방송에 출현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과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겠지만, 내게는 인생무상을 생각나게 한다.

이제 75세가 되어서 나타난 그녀는 내게는 신인 가수다. 

어린 시절 그냥 들려오던 노래는 이제 나의 노래 리스트에 3곡이나 올라가게 되었다.

방송에서 '끝이 없는 길'을 부르는 그녀의 나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비록 주름은 졌지만, 지적이고 단아한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그녀의 컴백을 환영하고 기대를 한다. 

서정시와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모습도 계속 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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