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도전

by 지음

포기할까? 도전할까?


포기할까?라는 말은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갈 때 많이 했던 생각이고 말이었다. 거창하게 “도전을 해서 뭘 어떻게 했는데 내가 힘들어서 포기했어~” 이런 레퍼토리가 아니다. 그냥 일상에서 조차 작은 선택을 포기하는 것부터였던 것 같다. 뭔가 도전을 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아예 잘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힘들면 포기하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더 해봐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벌써 결정을 하고 온 나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 말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내 기억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나의 도전이나 포기에 뭐라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수많은 포기를 하면서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나는 끝까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혔었다.


내가 얼마나 더 걸어야 성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다음 모퉁이를 돌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주1)

황금이 있는 곳까지 1미터(주2) 그걸 못 참고 포기하고 돌아선다.

이런 말들도 나에게는 너무 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 미래의 결과였다.


인간은 시각화 동물이다. 천 개의 명언보다 가족사진 한 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을 유지하려면 이처럼 힘과 용기를 넣어주는 ‘징표’를 만들어보라. 생각보다 위력적이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주3)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나도 다른 것보다 시각적인 부분이 강한 사람이다. 비밀번호를 기억할 때도 숫자를 기억하기보다 패턴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색을 하나 꼽지는 못하지만 강렬한 비비드한 색을 좋아한다. 글을 쓰면서 브런치에 몇 개의 글을 올렸는지 확인이 된다. 나에게는 또 이것이 ‘징표’로 나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됨을 알았다.


몇 개월동안 계속 써 내려간 브런치북이 하나씩 마감이 되고 또다시 새로 만드는 과정이 글의 내용도 잘 써야 했지만 나의 근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까지 하려면 나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시키고 스스로를 중독을 시켜야 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뭔가 가려는 길 앞에 나는 눈을 가리고 판단을 내려놓아야 한다. 살아오면서 포기를 했다면 그것 또한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바닥을 자각하지 못해도, 지금 무엇을 위해 애쓰는지 몰라도 그 애쓰는 기간이 짧으면 좋겠지만 만약 길다면 그 또한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포기가 빠른 나를 위해 밑다짐을 위한 것일 수도, 아님 정말 이때까지 수없이 포기한 것에 대한 시험일수도 있다.


아예 시도도 해보지 않은 것보다 도전하고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 말도 이제는 나에게 아니 것 같다. 도전을 했으면 이제는 될 때까지 하는 것만 남았다.


아마 정말 바보인 나는 도전도 포기도 모두 같은 레벨이었을 수도 있다.

깨끗이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될 수 있게 정성을 쏟았냐는 것이다. 끝까지 퍼내지 않은 힘으로 포기를 했기 때문에 항상 후회가 남았다.


만약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이 온다면

이제는 물어볼 것이다. 정말 내 밑바닥까지 끌어내서 있는 힘껏 힘을 쏟았냐고.


행동할 때는 머리로 하는 긴 생각은 필요가 없다.

정말 자동반사적으로 할 수 있는 손과 발만 있으면 된다.


제발 생각을 내려놓고 손발을 움직이자.



주1>아카바의 선물, 오그만디노

주2>결국 당신은 이길 것이다, 나폴레온 힐

주1>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팀 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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