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차게 식은 양념치킨을 먹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푹푹 찌는 그날에 차갑고 딱딱한 양념치킨을 먹으면 반드시 행복해지겠지. 당연한 행복을 느끼고 싶었던 나를 반기는 건 이미 비어버린 치킨 상자였다. 범인은 현장을 벗어났고 나는 울다가 화를 냈으며 엄마는 치킨을 새로 사주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나는 지금 저 치킨을 먹었어야 했단 말이에요. 엄마가 가족 수에 맞춰 사 온 아이스크림을 다른 형제가 먹어버리고, 내가 나중에 먹으려고 서랍 속에 넣어둔 초콜릿이 사라져 있고. 화를 내면 고작 먹는 것 같지고 유난 떠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별 것도 아닌 걸로 화내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별 것도 아닌 걸로 화나게 만들었으면서.
화가 나면 동네 피자 가게에 가서 가장 싼 6000원짜리 피자와 콜라를 주문했다. 첫 조각은 맛있었고 마지막 조각은 억지로 삼켰다. 더부룩함이 딸린 작은 일탈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배불러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버리지도, 다른 사람의 입으로도 들어가지 않고, 내가 다 먹어치워야 속이 시원했다. 일종의 데모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잘 먹어요. 먹기 싫은 게 아니라, 정말 먹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훔쳐먹지 마세요. 그러나 내가 피자 한 판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피자 가게 사장님만 알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겨울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먹으려던 것이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다른 형제가 이미 먹었다고 했다. 미리 알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 가면서 기대를 키우다, 그 기대가 추락할 일은 없을 거니까. 그런 내 예상과 달리, 나는 집에 가는 내내 분노를 쌓아갔다. 이번에도 집에는 범인이 없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엄마. 나는 거실 상에 있는 찐빵을 먹었다. 한 판이 가득한 찐빵. 시장에서 엄마가 사 온 찐빵을 먹었다. 평소 같으면 아껴 먹다 제 몫을 먹지 못했을 찐빵을 내가 전부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었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꺼내 먹었다. 바보같이 찐빵을 먹는 나와, 내 음식을 먹고 사라진 형제, 나를 말릴 수 없어 물을 가져다주는 엄마. 전부 화가 날 뿐이었다. 세상은 고작 먹는 것 가지고 왜 그러냐는 것만 같고, 나도 내가 쪼잔한 사람인 것 같고,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짜증 나고, 그 와중에 누가 내 음식을 몰래 먹고, 나는 또 화를 내고 있고, 잘못한 사람이 아닌 화내는 내게 잘못을 따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화내는 사람이 되어 있고, 그래서 더 화가 나고.
누군가에게 안 좋은 기억이 머릿속에 오래 남아서 힘들다고 털어놨다. 친척이 내 바지를 벗겨서 어린 내가 울고 있는데 어른들은 도와주지도 않고 웃고만 있었어. 에이, 어른들은 귀여워서 그런 거지. 모든 행동이 용서될 것 같은 귀여워서 그래, 가 싫었다. 그런 걸 누가 기억하고 사느냐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잖아. 기억하는 내가 잘못은 아니잖아. 여전히 기억하고 여전히 화가 많은 사람이다. 이제는 화내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자신뿐이라, 스스로가 예민한 사람이라 낙인을 찍고 교화시키려 한다. 상대가 내게 입힌 것이 상처가 아니라 손톱자국 정도라고 치부한다. 화를 내지 않으려, 보편의 사회인을 닮으려 노력 중이다. 언제나 계속 여전히 노력 중이다. 이래서 화가 사라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