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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순 Nov 04. 2022

경영컨설팅을 왜 망설이는가?

잠든 시간을 빼면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좋든 싫든 생리적 본능에 따르지 않는 인간의 행위가 모두 그렇고, 기업 경영 역시 선택의 연속이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가 언제 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이유 없는 망설임은 없겠지만, 행동하지 않는 망설임을 반복하여 시간이 지나면 임직원들은 회사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좇는 꼼수를 부린다. 고객은 시선을 거두고 떠나버린다.


첫째컨설팅 비용이 상당이 비싸다는 이유다.


전문가가 받는 한 번, 한 시간, 하루, 한 달의 대가(Fee)가 어떻게 계산이 되는지, 본인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영컨설팅도 마찬가지다. 이 비용을 고객에게 설명하기 위해 강사료를 기준으로 삼았었다. 어느 기관에서 건네받은 고용노동부의 강사 등급 기준에 따르면 시간당 A 등급 20만 원부터 E등급 5만 원으로 강사료를 정하여 하루 8시간을 강의하면 160만 원이 된다. 또한, 행정안전부의 2022년 학술용역 인건비 기준 단가를 보면 등급이 제일 높은 책임연구원이 월 3,327,026원인데 1개월을 22일로 하고 용역참여율 50%로 산정한 것이다. 만약 참여율 100% 진행하고 8시간으로 추산하면 하루에 약 30만 원 정도가 된다. 민간부문에서 MD(Man-Day) 컨설팅 금액은 프로젝트에 따라 30만 원에서 200만 원, 특별한 경우에는 그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강사료나 컨설팅 MD 금액은 기준이 따로따로고 차이가 크다.


이 정도 되면 강사와 컨설턴트는 돈을 엄청 많이 벌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강의나 컨설팅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없다. 이게 앞뒤가 안 맞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컨설팅 그만두려고 컨설팅한다는 말이 있을까?


거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된 것인가? 전문가의 능력과 대가에 관한 설익은 기준이 있었지만, 그것조차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상당히 많은 전문강사는 새로운 축적이 정체된 낡은 지식의 전달자가 되어버렸다. 또한, 겨우 쌓아 올린 컨설팅이란 전문영역의 연약한 기반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지식산업을 퇴행시키며 그들의 미래를 박탈하는 사건도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 교육 컨설팅 대규모 기관에서 시작된 탐욕스러운 회색 나비의 날갯짓이 교육과 컨설팅 업계에 어이없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기관장 본인의 재임 중 성과를 위한 이익을 내겠다고 교육과 컨설팅의 낮은 가격을 묶어두고, 강사와 컨설턴트에게 지급하는 강사료와 용역수행 대가를 확 줄여버린 것이다. 단 한 곳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내부적인 비용 절감은 시늉뿐이고 계약에 관한 폭력을 일방적으로 행사하였다. 그렇게 이익은 만들어졌고 그 기관장은 자리를 보전하였다. 탁월한 능력자들은 그곳을 떠났고, 몸이 떠나지 못한 전문가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비우고 달래야 했다. 굴종이지만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기관들은 단기 이익에 급급하여 교육과 컨설팅의 가치를 압살하였다.


그때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교육과 컨설팅의 지식 서비스는 그 가치를 존중받지 못하고, 이곳도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가격이 결정되는 일반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성장 발전에 등대지기가 되어야 할 전문가들은 연구와 개발과 실행의 의지를 접어버렸다. 불행히도 이 심각한 악순환은 아직도 멈춰지지 않았다. 경영컨설팅이 가격 경쟁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가?


물론, 컨설팅의 가치와 대가인 가격은 그 대가를 지급하는 고객이 결정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고객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그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컨설턴트도 본인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 컨설턴트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의 가치는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본인의 계약서에 적히는 가치가 전부가 아니며, 본인의 판단에 일시적으로 따라 유보하는 것이지, 온전히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객에게 내세울 수 있는 자존감이 바로 설 때까지 받아야 할 대가를 유보하는 것이다.


강사와 컨설턴트는 뭘 하고 있었나? 미래의 청사진을 명분으로 내세운 리더가 없었고, 조직화 된 기반이 없었던 이 ‘집단’은 압살을 피할 일시적인 퇴로조차 없었고, 그 후에도 재건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렇다. 어찌하겠는가? 전문가들을 사용하는 힘 있는 사용자들은 똘똘 뭉쳤고, 결속과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한 전문가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지적 능력과 자존심밖에 없는 전문가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유약한 한 사람 한 사람은 별 볼 일 없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게 되었다. 30여 년의 컨설팅 태동과 축적 기반을 딛고 지식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의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 집단의 안정된 성장과 발전, 국가 지식 자산의 축적과 기여라는 컨설팅 지식산업의 선순환 생태계는 요원하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왜 이래야 하는가?


강사와 컨설턴트의 애달픈 시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경영컨설팅의 실행에 관한 판단을 돕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고객사들도 잊으면 안 되는 교훈이다. 기업 고객들도, 컨설턴트들도 이미 경험한 여러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돌아보자.


올바르게 평가하여 실행한 고액의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다. 왜 그런가? 아주 간단하다. 누구나 큰돈을 써서 얻은 물건이나 기회는 그 사용과 실행에 관심이 아주 많다. 기업에서 관심은 관리다. 관심이 많으니 기업의 최고 경영자부터 실무자, 컨설턴트까지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에 관해 책임감을 느끼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본인의 조직 내 안전을 위해서다. 실패할 경우 이 프로젝트의 책임과 관련된 사람들의 처지는 불안해진다. 조직의 평가와 인사 속성이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싼 컨설팅이 실패할 확률이 확실히 낮다. 경험의 교훈이다. 기업이든 한 사람에게든 벌써 잊어버린 교훈은 이미 교훈이 아니다. 뻔한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이다.


둘째우리 회사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는 이유다.


도대체 무엇을 가장 잘 안다는 것인가? 고객, 제품, 서비스, 설비, 공정, 자재, 근무규정, 임직원들의 면면, 의사결정 과정, 재정상태 등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데 좀 더 들어가 살펴보면 본인이 하는 일만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알 뿐이다. 임원이나 리더들도 정확한 사실과 사건의 자초지종을 모르거나 편견을 가진 경우도 상당히 많다.


경영자와 컨설턴트는 기업 조직의 전체 최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조직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려는 태도가 유별나다. 기업의 시간이 흐르면 임직원들이 안다는 것들은 매사를 결정하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굳어버린다. 경영과 관리의 유연성이 사라져서 새로운 도전을 서서히 거부하는 타성의 늪에 빠진다. 의식이 있는 경영자는 이러한 조직 경화를 부수기 위해 묠니르라는 토르(Thor)의 망치를 집어 들게 된다. 묠니르와 그것을 쥐기 위한 쇠 장갑 중 하나가 경영컨설팅이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엔 왜 가는가? 아픈 이유가 궁금해서 가고, 검진을 받아 예방하기 위해 가고,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병원에 간다. 병원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만큼 몸과 마음이 상할 뿐이다. 우리 회사는 우리가 잘 알지만 그런데도 경영컨설팅을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셋째경영컨설팅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다.


컨설팅 회사의 규모가 크든, 심지어 1인 기업이든 컨설팅은 그 회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파견되거나 참여한 컨설턴트가 컨설팅을 하는 것이다. 컨설턴트가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그가 속한 컨설팅 회사의 도움과 지원을 받는 경우는 한국의 컨설팅 회사에서 거의 없다. 컨설팅 회사의 이름을 거두고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할 컨설턴트에 집중해서 판단해야 한다.


기계, 전기, 화학, IT 전문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임직원들의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인지, 변경된 법률에 따라 제도나 규정을 꼼꼼히 다루는 것인지, 우리 회사가 원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컨설턴트의 어떤 역량이 더 중요한지를 경영진이 먼저 확정해야 한다.


회사가 문제에 처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할 컨설턴트의 경력을 살피고, 제안서로 설명하는 컨설팅 프로세스가 우리 회사의 현재 상황에 적합한지를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필요하면 프로세스의 수정을 요구하고 협의해야 한다. 그래도 컨설턴트에 관해 아직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가 최근에 수행한 프로젝트의 회사에 평판 조회까지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컨설턴트를 눈여겨본다면 큰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초일류 대기업들도 충분한 검토를 해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와 컨설팅을 진행한다. 거기도 성공과 실패가 있다. 때로는 컨설팅 회사에 엄청난 클레임을 제기하기도 한다. 서로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컨설팅 회사와 컨설턴트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반복되지만, 그 초일류 대기업들이 컨설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일까? 그렇지 않다.


외부 사람을 ‘완전히 믿고’ 막중한 일을 맡긴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잘할 것 같지만 엉망이 되고, 염려스러웠지만 큰 성공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형체가 뚜렷한 부속품을 맞추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러니, 걱정도 걱정이지만 컨설턴트는 믿음을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고, 기업도 빈틈없이 협력해야 한다. 믿는 것과 일하는 것은 다르다. 경영컨설팅은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 두 개를 합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동그라미 두 개가 만나는 교집합을 넓히는 것이다.


넷째컨설팅이 끝나면 성과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컨설턴트가 떠나도 컨설팅으로 이룬 것이 화수분이 되어 잘 유지되고 더 발전하면 가장 좋다. 그야말로 경영자가 원하는 최선의 성과다. 어떤 컨설팅이라도 경영자는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컨설턴트는 프로젝트의 성과를 무위로 돌려 나쁜 평판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리라는 것도 불안하고 여전히 의심이 간다. 그렇다면 진작에 시작하지 말아야 하는가?


물길을 틀어 한 철 농사에 물을 대면 잠시의 가뭄을 피할 수 있지만, 농사 걱정을 끝낼 수는 없다. 물길을 급히 잡더라도, 나중엔 저수지를 만들고 샘을 파고 논밭 정리도 해야 안심이 된다. 그러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중에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컨설팅도 있지만 올바른 경영컨설팅은 아무리 단순해도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 회사 스스로 유지 개선할 힘이 붙으면 그때 가서 종료해야 한다. 숙성과 축적의 시간을 위해 반걸음씩 내디디고 한 걸음 늦게 끝내야 한다.


컨설턴트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아주 곤란해진다. 특히, 프로젝트에 참여할 직원이 없으니 혼자 알아서 추진하라고 부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직원을 붙여 놓고 잘 가르쳐달라? 가당치 않다. 결국, 컨설팅의 과정과 결과는 오롯이 컨설턴트의 것이 되어 버린다. 컨설턴트에게 받아내야 하는데, 컨설턴트에게 전부 주는 꼴이다.


컨설팅의 성과가 유지되길 바란다면, 컨설팅과 관련하여 작은 조직을 미리 만들어야 하고, 역량 있는 인재가 참여해야 하고, 경영진이 이 작은 조직과 자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섯째불편한 진실의 노출이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이유다.


진실은 항상 불편하다고 한다. 누군가 숨겼던 진실이 드러난 이상,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가? 부는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붙잡아 덮어두었던 종기는 치료해야 한다. 다행히 진실의 불편함은 치유될 수 있다. 후회를 잘 다스리고 반성을 받아들이면 신뢰라는 열매를 맺는 놀라운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계속 생긴다. 인간사(人間事)란 것이 원래 그렇다. 그래서 치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컨설턴트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공명심에 잡혀 사실 그대로 공개할까? 홀로 재량껏 재단할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그냥 묻어버릴까? 그 진실을 알게 된 임직원과 논의하여 지혜롭게 재단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도 컨설턴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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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컨설팅을 ‘망설이는’ 태도란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결정하지 못한다는 단어의 뜻풀이가 아니다. 이러한 태도는 경영컨설팅에 국한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경영의 디테일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망설이는 경영자의 파트너인 컨설턴트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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