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세계 재즈의 날에 부쳐. 재즈 마니아, 말문 터졌습니다.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만화가 주호민을 통해 유명해진 인터넷 밈(meme)이다. 시작은 무려 그래미 어워드였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싱어, ‘엘라 피츠제럴드’를 주호민이 성대모사하며 유명해졌다. 1976년 엘라 피츠제럴드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사람들에게 재즈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즉흥 가창(스캣)으로 대답했다. 대략 ‘쌉밥 두비두바 두비두비두바바바’ 정도 되겠다.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오직 지금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교감하는 재즈의 정수를 보여준 답변이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50년 전 쏘아올린 공을 대한민국에서 주호민이 이어받다니. 흥미로운 세계관이다.
4월 30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재즈의 날’이다. 201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재즈의 가치를 알리고 세계 화합을 소망하며 제정했다. 오랜 재즈 팬이기도 한 나는 사실 이 날의 존재를 몰랐었다. 그러다 올해, 서울 노들섬에서 열린 ‘2023 서울 재즈 페스타’의 취지를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현재 진행중인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개최되는 서울 재즈 페스타는 4월 30일 오후 7시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 된다고 하니 찾아 들어도 좋겠다.
다시 돌아와서,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즉흥성이다. 세상에는 만 가지의 오버 더 레인보우와 만 가지의 미스티가 존재한다. 만 가지의 플라이 미 투더 문과 만 가지의 라 비앙 로즈도 존재할 것이다. 음악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알게 된 지인은 나를 이태원의 ‘올 댓 재즈’로 데려갔다. 그 곳에서 접한 ‘정중화 JHG 밴드’ 공연은 인생을 바꿨다. 한 마디로 이토록 자유로운 음악이라니. 빛나는 트롬본의 화려하면서도 확실한 멜로디가 끝나면 묵직한 콘트라베이스가 이에 응답한다. 그리고 한참 동안 본인의 느낌대로 주제를 표현한 뒤, 뒤이어 피아노가, 드럼이, 자신만의 느낌대로 주제를 해석한다. 놀랍게도 정해지지 않은 대답들이다. 클래식이 악보의 정해진 음표 안에서의 해석을 한다면, 재즈는 코드와 주제만 던져줄 뿐 대답은 자기 마음이다. 그저 정해진 마디 수(시간)를 맞출 뿐이다. 한 연주자가 포커싱 되어 주제를 해석할 때 다른 연주자들이 묵묵히 앙상블을 해주고, 또 폭발적인 솔로에서 함께 리듬을 타며 집중해 준 뒤, 박수를 보내는 장면 또한 감동이었다. 그야말로 공연장을 찾아 들어야 하는 음악은 재즈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이후로 재즈클럽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취미를 가진지 십년이 훌쩍 넘었다. 이태원의 올 댓 재즈, 홍대의 클럽에반스, 그리고 종로의 천년동안도까지. 마치 깜깜하지만 양수로 채워진 어머니의 뱃속 같은 공간이다.
써놓고보니 재즈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반대가 끌린다는 말처럼 본인은 클래식 작곡 전공자이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면서도 조지 거슈윈이나 카푸스틴, 끌로드 볼링 같은 재즈를 접목한 아티스트들을 좋아했으니 참 모순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취미를 사람들에게 공감받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손의 이끌려 한번씩 ‘올 댓 재즈’를 찾았지만 대다수가 재미없어했다. 내 귀에는 재즈 음악이 ‘솔-라-시b-미b (어텀 리브스 테마)’의 정확한 언어로 들리는데, 그들의 귀에는 그렇지 않아서 그런듯하다. 힙합이 부상하고, EDM이, 트로트가, 음지에서 양지로 떠오르는 동안 재즈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재즈가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날이 올거라는 상상을 하며 이진아와 같은 아티스트들을 응원해왔지만 아직 때가 오지 않은 듯하다. ‘서울재즈페스티벌 (SJF)’이 대중성을 잡아야 한다는 미명 하에 재즈와 상관없는 뮤지션을 섭외하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올까. 자신의 감정을 언어가 아닌 ‘즉흥 작곡’으로 쏟아내는 천재들의 공연을 다함께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1920년 미국의 금주법으로 인해 몰래 음지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꽃피운 저항의 문화이자, 미국의 인종차별 속에서도 본인들의 슬픔(블루스)를 예술적으로 승화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뿌리를 담은 음악. 재즈의 열풍을 기원한다.
음악평론가 진지가 추천하는 재즈 콘텐츠 TOP 10
1. 스탠다드 재즈의 정석, 에디 히긴스 트리오(Eddie Higgins Trio)의 ‘비 위치드(Bewitched) 앨범 (2011).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곡은 Estate ('여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https://youtu.be/EXv72dL9qfI?feature=shared
2. 보사노바를 앨범 한 장으로 요약한다면 이 앨범.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웨이브(Wave)’ 앨범 (1967). 많이 소개돼 진부하고 식상해도 추천 리스트에 넣을 수밖에 없다. 무인도에 간다면 가져가고 싶은 앨범.
3. 영화 <치코와 리타> (2010). 1948년 쿠바를 배경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치타와 보컬리스트 리타의 이야기를 다뤘다. 재즈와 사랑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에 있다.
4. 수많은 플라이 미 투더 문 중에 개인적으로 최고는 이 곡. 줄리 런던 (Julie London)의 Fly Me To the Moon (1963). 현악기에서 현을 손가락으로 당기는 주법인 ‘피치카토’로 시작해, 처음부터 끝까지 은은하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스트링 소리가 줄리 런던의 담백한 보컬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5. 사카모토 류이치와 모렐렌바움이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 ‘A Day in New York’ (2003)의 2CD 중 CD Only 버전으로만 들어있던 ‘Tango (Version Castellano)’. 크로스오버의 정석을 보여줬다. 여기서 중요한 건 ‘Version Castellano’다. ‘Tango’는 여러 버전이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버전이 가장 사카모토 류이치스러운 세련됨이 묻어나는 명곡이다. 감성을 자극하는데 있어 슬픔만한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이 곡은 세련된 슬픔의 정석이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후계자인 모렐렌바움 부부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Casa> 앨범 이후 2년 만에 합작하여 만들어낸 작품.
6. 재즈힙합의 정수, 쿠마파크의 ‘Kumapark’ (2012) 앨범.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꼭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이태원의 ‘올 댓 재즈’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 팀이 공연하는 걸 보게 되었는데 충격이었다. 힙합 리듬에 보이스 이펙터를 걸어 포문을 열고, 뒤이어 색소폰과 스탠다드 피아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쿠마파크라는 팀의 컬러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레이지 쿠마로 알려진 리더 한승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팀. 스트리밍 음원이 이 팀의 라이브를 반도 담지 못할 정도로, 라이브가 압권이다.
7. 편안하게 휴식하며 듣기 좋은 팻 메스니의 ‘My Song’. 명반인 ‘One Quiet Night’ (2003)에 수록되어 있다. ‘My Song’은 원래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곡이다. 이 곡을 팻 메스니가 어쿠스틱 바리톤 기타로 연주하였는데, 그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8.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본 투비 블루> (2014). ‘마이 퍼니 발렌타인 (My Funny Valentine)’으로 알려진 재즈 싱어이자 트럼페터 챗 베이커. 그의 극으로 치닫는 인생을 에단 호크가 호연하였다. 어째서 그의 음악이 그렇게 슬플 수밖에 없었는지, 이 영화를 보고나면 이해가 된다. 느슨하고 낭만적인 재즈 정서를 잘 보여주는 영화.
9. 안테나뮤직 소속 아티스트 이진아의 <RANDOM> 앨범에 소속된 ‘계단 (2017)’. 재즈가 대중음악 차트에 오를 날을 기대하고 있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있다면 이진아라고 생각한다. 재즈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녀는 SBS ‘K팝스타’에 출연하면서 충격적인 피아노 실력과 작곡 능력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진아가 상업음악의 판에 뛰어들어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기대가 되었는데, 놀라운 음악으로 화답했다. 놀라운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그녀의 음악을 4분 33초간 즐길 수 있다.
10. 만화 <재즈 잇 업 (Jazz it Up)> (2018). 남무성 지음. 재즈입문자부터 마니아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재즈 음악 비하인드와 명반 50장의 이야기가 담긴 책. 이태원의 만화서점 ‘그래픽’에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 한권으로 주섬주섬 주워들었던 얕은 지식을 한 줄로 꿰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즈 지식에 흥미가 있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이 외에도 추천할 것이 많지만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