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섭외 담당자님. 복 많이 받으세요.
Tempo 1. 얼마 전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2차 라인업이 올라왔다.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라인업이 큰 의미가 없어서, 라인업이 공개되기도 전에 얼리버드 티켓으로 3일권을 다 사기도 한다. 나 역시, 작년의 즐거웠던 기억 때문에 올해도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3일을 다 갈 자신은 없었다. 한 여름 뙤약볕에 반나절을 버텨야 하는 환경이 너무 고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작년과 비슷하게 ‘8월 4일(금)부터 6일(일)까지 3일간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만큼, 적당히 ‘토-일’ 이틀 정도만 즐기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라인업을 보고 그 결심이 무너졌다.
Tempo 2. 키린지. Kirinji. 그 키린지? 내가 아는 그 키린지요? 네?
Tempo 3. 8월 4일 금요일 라인업에 자그마하게 적혀있는 그 이름. 키린지. 그렇다. 일본의 인디 락 밴드. 아는 사람만 알고 좋아해서 그 좋아하는 마음을 공감받기 어려웠던. 2000년에 발매한 앨범 ‘3’이 멜론에 명반으로 선정되어있는. 우리나라와의 접점이라고는 도무지 없어 보였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보였던. 바로 그 밴드가, 올해 여름에 인천 송도에 온다고요?
Tempo 4. 금요일에 일을 쉬면서까지 페스티벌에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키린지의 이름을 보는 순간 ‘이건 무조건 가야해’라고 생각을 굳혔다. 살면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과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오히려 김동률, 요즘 내가 빠진 팔칠댄스 같은 국내 아티스트들은 간헐적이더라도 콘서트만 열면 만날 수 있다. 브루노 마스, 샘 스미스 같은 아티스트들도 오히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으니 우리나라에서 언제든 내한 요청을 해주지 않을까, 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그런데 키린지? 키린지는 좀 다르다. 락페스티벌의 섭외 담당자가 키린지의 음악을 좋아할 확률, 그리고 이 밴드가 어느 정도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데 소용이 있을 거라고 관계자를 설득할 확률. 물론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는 슈퍼루키를 공개 모집하여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밴드도 출연하긴 한다. 그래도 수많은 밴드 중 약 이십년 간 한국과의 접점이 없었던 밴드 키린지를 섭외했다는 사실이. 정말 ‘이건 귀하다’ 싶다.
Tempo 5. 키린지는 무려 2004년에 가수 이상은과 공연하기 위해 내한한 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니 아예 기대감이 없을 수밖에. 마치 프리템포(FreeTEMPO)나 하바드(Harvard)가 올해 내한한다는 느낌이다.
Tempo 6. 물론 비슷한 맥락으로 ‘엘르가든’이 15년 만에 내한하고, ‘스트록스’가 17년 만에 내한하며 락 음악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살면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다니. 이건 가야해.’ 심리를 십분 활용한 이번 펜타포트의 라인업에 박수를 보낸다. 엘르가든도 스트록스도 좋지만, 역시 나는 키린지에 마음이 확 끌리는 게 어쩔 수 없는 마이너 취향인가보다.
Tempo 7. 키린지의 음악을 접해보지 않으셨다면 이 곡을 추천한다. ‘에일리언 (Aliens)’.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인생의 힘든 고비를 넘기고 있는 때였다. 할 수 있는 게 걷는 것밖에 없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습한 한강변을 따라 걷는데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에일리언’의 곡 분위기 또한 처연하고 또 씁쓸하다. 어떤 슬픔에 대해 관조적인 시선으로 노래하는 느낌이다. 시작 부분에 기타 멜로디는 ‘쓸쓸함의 음악화’ 그 자체이다. 드럼의 하이햇 소리와 함께 기타 멜로디 하나로 리스너를 설득시키는데 성공했다. 곡 전반에 깔리는 베이스라인과 낭만을 더하는 브라스 소리는 납작한 마음을 부풀려 바라보게 해준다. 그럴 때면 한숨 한번 푹 내쉬고 앞을 향해 걸어가기 충분해진다.
Tempo 8. 키린지를 사랑하는 팬들은 가사에 주목한다. 일본어 가사라 알아듣기 어렵지만, 이들의 가사 해석을 찾아보면 한 마디로 ‘시적이다.’
아득한 하늘의 여객기 / 소리도 없이 / 공단의 지붕 위 / 어디로 가나 / 누군가의 언짢음도 / 고요해지는 밤이야 / 바이패스(우회도로)의 맑은 공기와 / 나의 거리 / 울지 말아줘 / 봐, 달빛이 / 기나긴 밤에 / 잠들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져 / 마치 우리들은 에일리언 같아 / 금단의 열매를 가득 머금고선 / 달의 이면을 꿈꿔 / 네가 좋아 에일리언
Tempo 9. 여객기, 공단의 지붕 위, 밤, 달빛, 이마, 열매. 그리고 무엇보다 곡의 제목이기도 한 ‘에일리언’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다. 우리는 스팅의 ‘잉글리쉬 맨 인 뉴욕 (Englishman in NewYork)’을 통해 이미 에일리언이 노래에서 주는 이미지를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어쩐지 세상으로부터 낯설어지게 되는 때 느끼는 외로운 감정을 이 노래가 충분히 노래해준다.
Tempo 10. 벌써부터 기대된다. 펜타포트. 그 습한 여름날에 키린지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게 될 순간이. 에일리언을 부른다면? 아마 잠 못들거다.
음악평론가 진지
진지의 업템포는?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심장 박동수가 올라갑니다. 네. 전형적인 덕후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순간들을 모아 글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하라는 클래식은 안하고 여러 방송국에서 일했습니다. 뉴미디어 콘텐츠 회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다, 프리선언 후 음악을 가르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여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셋롤러코스터의 My Jinji를 좋아합니다. projectjinj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