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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Aug 22. 2023

오펜하이머에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 왜 쓰였을까?

오펜하이머와 스트라빈스키가 아는 사이였다고요?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신작. 영화 스틸컷. (c) Oppenheimer, 2023

<오펜하이머>는 관계에 관한 영화였다.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타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나와 조국과의 관계. 놀란 감독 영화 최초로,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전기적 영화라는 점에서 이 점은 더욱 부각된다.

[오펜하이머] 메인 예고편 (HD) (c) Youtube

이 영화에 쓰인 곡 중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곡이 한 곡 있었는데, 바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이 곡은 1부 ‘대지에 대한 경배 (The Adoration of the Earth)’와 2부 희생제 (The Sacrifice)’로 나뉘어 있고, 1부는 총 8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1부의 2악장에 해당하는 ‘봄의 태동 : 젊은 처녀들의 춤 (The Augurs of Spring : Dances of the Young Girls)’이 쓰였다.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트라 버전의 '봄의 제전' 음악 듣기 . 4분 4초경. (c) Youtube

왜 이 곡이 쓰였을까? 영화를 보며, 이 곡이 <오펜하이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불협화음’이었다. 우라늄의 원자핵에 가속된 중성자를 충돌시켜 나타나는 연쇄반응이 ‘핵폭탄’이라는 살상 무기로 이어지듯, 오펜하이머가 살아가며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만들어 내는 관계들이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키며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원자핵과 가속된 중성자의 충돌,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충돌 등을 비롯해 여러 관계적 ‘충돌’을 음악화한다면, 불협화음만큼 적확한 요소는 없을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불협화음으로 대표되는 현대음악의 포문을 연 사람이다. 불협화음의 징조는 바그너 때부터 있었는데 (대표곡 : 트리스탄과 이졸데),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가 스트라빈스키다. 듣기만 해도 난해한 현대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조성’인데, 예쁘고 아름다운 ‘조성’의 멜로디와 화성을 파괴하며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기존 사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일종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드뷔시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 인상주의의 포문을 열 때,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으로 원시주의라는 화두를 던졌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 니진스키 안무가에 의해 발레로 초연된 것이 191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봄의 제전>이 1913년에 같은 안무가에 의해 발레로 초연되었을 때 관객이 소란을 일으키며 외면한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혁신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음악이 상징하는 바와 오펜하이머가 상징하는 바가 닮아있다.


<봄의 제전>(1913)은 급기야 제1차 세계대전 발발(1914)의 미학적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야만과 본능이 살아 숨 쉬는 곡으로 꼽힌다. 성질이 서로 다른 두 코드를 의도적으로 하나의 박자에 배치해 불협화음을 형성하고, 현악기가 강렬한 긴장을 가지고 악센트 위치를 바꿔가며 비트를 연주한다. 이는 기존의 조성 규칙에 벗어났기에 비합리적이고, 불규칙적이기에 비이성적이다. 이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가진 비합리성과 비이성적이라는 모순을 잘 설명해 준다. 천재적으로 우월함 뒤에 가려진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의 지도교수를 독살하려 한다든가, 핵무기를 만들어 성공에 도취하다가도 나중에는 핵무기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 그리고 진실함과 솔직함으로 일관하다가도 불륜을 저지른 것이 그렇다.



봄의 태동 : 젊은 처녀들의 춤 (The Augurs of Spring : Dances of the Young Girls) 악보. 강렬한 비트와 피치카토로 흩어지는 패시지를 오간다

또한, <봄의 제전>의 2부 ‘희생제’는, 신에게 한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종국엔 시체를 들고 나가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역시 <오펜하이머> 영화의 2부(핵실험 성공 이후)와 다를 바가 없다. 국가로부터 토사구팽당하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알게 된 것은 오펜하이머가 스트라빈스키와 실제로 아는 사이였을뿐더러, 그가 지도교수에게 독 사과를 건넬 정도로 정신적인 부침을 겪던 케임브리지 대학원 시절에 <봄의 제전>을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오펜하이머가 스트라빈스키와 가까웠고,  자신의 훗날 추도식을 부탁했다는 내용 (c) 워싱턴포스트
오펜하이머의 장례식장에서 스트라빈스키가  '레퀴엠 칸티클스'를 연주해 줄 것을 부탁했고, 실제로 네 달 뒤 이뤄졌다는 내용. (c) robertgreenbergmusic


오펜하이머는 1966년 10월 8일에 뉴저지에 위치한 맥카터 극장에서 열린 스트라빈스키의 <레퀴엠 칸티클스 (Requiem Canticles)>를 듣고, 스트라빈스키에게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그 곡을 연주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1965년 후두암 진단을 받고 1967년 2월 18일 사망했으니, 죽음을 앞둔 4개월 전의 일인 셈이다. 스트라빈스키는 그로부터 4년 뒤, 1971년에 사망하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 또한, 그의 장례식장에서 <레퀴엠 칸티클스>가 연주되었으니, 역사적인 두 인물의 장례식장에는 같은 곡이 흘러나온 셈이다. 영화 초반부에 놀란 감독이 <봄의 제전>을 듣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장면으로 삽입한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향적 장치는 ‘발굽 소리’이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강렬함으로도 부족했는지, 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를 오펜하이머의 심리적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에 삽입하면서 그의 심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만큼 영화 전체적으로 <봄의 제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OST는 아니지만, 그래도 루드비히 고란손 음악감독이 창작된 사운드가 아닌 유일한 기발표 곡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분석해 보았다. 오펜하이머와 스트라빈스키, 두 역사적 분기점의 관계성, 흥미롭다.


음악평론가 진지


Stravinsky - Requiem Canticles (1966) with score (c)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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