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올랐다가 사라진다. 선명하게 맺히는 음악이 아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두 남녀의 목소리가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흩어진다. 포크와 엠비언트 사운드의 절묘한 조화다. 소리를 섬세하게 배치한 작업자의 노고가 돋보인다.
아홉 트랙이 하나의 결로 이어지는 수작이다. 볼륨을 줄이게 되는 트랙이 없다. 고루 좋은 앨범은 귀하다. 배경음악처럼 멀리서 듣는 것보다 녹차를 마시듯 음미하며 가까이 듣길 추천한다. 2번 트랙 ‘너른 들판’에서는 제주의 바람 소리와 아스라한 별빛 같은 피아노, 나직한 베이스로 구성된 후주가 일품이다. 8번 트랙 ‘하얀’의 글 짓는 소리와 파도 소리는 2분 42초간의 오디오 작품이다.
치유의 사운드에 그렇지 못한 상실의 가사를 노래한다. 이 앨범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이유다. 저 너머의 빛을 봐야 한다며 두 남녀가 너른 들판을 달리는 풍경에는 안개 속 희미한 불씨만 보일 뿐이다. 결국 노래와 글을 태운다. 타이틀곡 <너른 들판>의 이야기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이 곡의 가사는 또 다른 타이틀곡 <밤하늘의 별들처럼>과 연결된다. 이 곡에서 두 사람은 다시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림 그리는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로 남진 않았다. ‘그래 나는 너무 어린 날 돌보지 않았어 / 더는 불가능한 길을 따라 달리고 있네’라며 자조 섞인 현실 자각을 하고, ‘비극’을 향해 달린다.
이 밖에도, 세상은 너무 차갑고 꿈은 식어서 노래마저 허무한 메아리가 되었다고 불놀이를 하는 <메아리>나, 아름답고 천박해 수상한 세상에서 영웅이 되어보자고 노래하는 <희극>, 전쟁 없는 전쟁터 속 군인이 되어버린, 거울 속 표정 없는 나를 마주하는 <거울을 봤어요>. 더는 불가능한 길을 따라 달리는 자신을 목도하고 위로하며 (<시인과 농부>), 커다란 위로 후 다시 정화된 글을 짓고 노래하는 <하얀>까지. 마지막 트랙 <푸른>에는 우쿨렐레의 가벼움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한 편의 영화다.
청춘의 힘듦을 노래하며 소리로 자연에 뉘어 쉬게 하는 듯한 형상이다. 실제로 여유와 설빈은 제주도에 거주하며 학교 일과 중국집 일을 하고 음악을 짓는다. 노량진에서 고시 생활을 하고, 음악과 관련 없는 일을 생계를 위해 병행하면서 몸소 겪어 낸 청춘의 편린을, 두 사람은 시적으로 풀어내었다.
포크는 가사가 중요한 장르다. 여유와 설빈은 전작인 ‘생각은 자유’에서 존 레넌, 밥 딜런, 한대수, 김민기에 대한 존경을 가사로 표했다. 이들 뮤지션들의 별칭은 음유시인이다. 80년대 이후 포크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는 건 가사에 집중할 일 없는 시대상 때문이라고 혹자는 말했다. 하지만 표현할 가사가 있었다. 언뜻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청춘의 내면에 뚫려있는 커다란 공허함을, 여유와 설빈은 놓치지 않고 주목했다.
이 앨범이 명반인 이유는 희극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과 사운드의 정밀함에 있다. 희극(사운드)과 비극(가사)의 교차를 시대상과 연관지어 표현해냈다. <메아리>, <희극>, <거울을 봤어요>에서는 약음기를 낀 트럼펫 소리를 넣어 블루지한 느낌을 냈다. <메아리>에서는 꽹과리와 징 소리를 더하며 불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을 냈다. 포크의 본질을 체화한 앨범이다. 모든 것을 우려내면서도 과하지 않다. 균형을 이루었다. <끝>
- 여유와 설빈 3집, <희극> -
01. 숨바꼭질
02. 너른 들판 (Title, 추천)
03. 메아리
04. 희극
05. 거울을 봤어요
06. 밤하늘의 별들처럼 (Title, 추천)
07. 시인과 농부
08. 하얀 (추천)
09. 푸른
https://www.youtube.com/watch?v=fx-c0cijWjg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