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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Feb 11. 2024

평범한 것이 특별하다고

벼랑 끝에 서보면 알 수 있다 했다


우리는 신정을 쇠었기에 구정이란 형식에는 얽매이지 않지만 그래도 설날은 특별하다.

어릴 적 우리는 큰집이라 작은댁 사촌들 까지 모두 모여 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마음껏 웃고 떠들고 설날 차례를 지내고 나면 사과 한쪽까지 모두 똑같이 나누어 받아먹었다. 그리고 다투어 새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흔들며 즐거워하던 추억의 즐거운 날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나눠 주고 어른들께도 드려야 하는데 더 이상 함께 모이질 않는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사촌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설을 보내기로 했고  또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 보니 설날은 우리 부부가 둘이서 보내는 평범한 날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설날에는 조용히 아내와 함께 떡국을 끓여 먹고는 새로운 다짐을 하고자 옆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텅 빈 공원에 들어서니 매일 나서던 발걸음의 흔적들이 여전하다. 공원의 사용에 다툼이 있었는지 게이트장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플래카드와 게이트장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플래카드가 아래위로 나란히 걸려 있다. 어쩌란 말인가. 굳게 잠긴 게이트장을 돌아 햇볕이 드러누운 곳으로 가니 어르신 몇 분이 장기를 두고 있다. 푹 눌러쓴 모자에 말없이 장기판만 노려보는 희미한 눈빛, 햇살에 부딪혀 애잔한 그림자가 길게 남는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기왕에 나선 걸음 뒷동산 위로 올라간다. 무거운 공기를 헤치며 잠시 오르니 익숙한 작은 능선이 가지런하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올라오니 산길이 비좁아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언덕을 넘어서자 햇살 가득한 큰 배드민턴장이 있다. 텅 비어있어 마음껏 빈 벤치에 널브러지니 편안하다. 더욱이 주변에 흩어진 햇살 조각들이 여유롭고 따스하여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실 그들은 8분 전 태양에서 출발하여 막 도착한 젊은 햇살로 망망 우주로 뻗어 나갈 것이 나에게 부딪혀 따스함을 넘겨주고 사그라진 것이다. 특별함과 평범함이 공존하고 있다.


문득 며칠 전 들었던 리아킴의 '위대한 약속'이 듣고 싶어졌다. 얼른 유튜브에서 찾는다. "~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벼랑 끝에 서보면 알아요 하나도 모르면서 둘을 알려고 하다 사랑도 믿음도 떠나가죠 세상 살면서 힘이야 들겠지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지금 이 평범한 일상이 벼랑 끝에 서보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고 노래한다. 혹자는 병마 속에서 또 남다른 금전의 고통 속에서 그리고 다른 장애 속에서, 가정의 파괴 속에서, 하찮은 바이러스의 고통 속에서 등등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이 대단해 보이는 이유가 많다. 감사하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라는 게 대단한 것이었고 평범한 일상을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 - 허지웅, 나 혼자 산다에서


설날 잠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남들과 똑같이 산다는 건 특별한 축복이다.

이것이 이번 설날 나에게 전해준 특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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