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은 왜 남들이 가지고 있을까
나도 그 남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갑자기 이 말이 왜 떠올랐을까
며칠 전 퇴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만지작 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엄마에게 혼이 나서 삐쳐 있는 걸까 아니면 가기 싫은 심부름에 화가 나있는 걸까 뒤돌아선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그런데 다음날 늦잠을 자서 허둥대는 출근길에 그 아이를 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안녕?'
'친구 기다려요'
묻지도 않은 답을 하고는 나를 힐끔거리며 이것저것 엘리베이터 부착물을 매만지며 신경 쓰이게 한다. 왜 그러지? 뭔가 문제가 있는 아이인가? 눈치로 그러면 안 된다는 신호를 주고는 거울을 들여보다 깜짝 놀랐다. 의자에 걸쳐있던 동생 슈프림 티셔츠를 그냥 입고 나선 것이다. 낭패로구나 하필 업체와 미팅이 있어서 오늘만큼은 넥타이를 매고 가야 하는데 다시 올라갈까 잠시 고민을 하다 촉박한 서류 작업 때문에 그냥 냅다 뛰었다.
지난밤은 즐거웠다. 동생이 미국에서 놀러 왔기 때문이다.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뜬다는 동생 입담은 여전했다. 웃고 떠들다 브루클린에서 힘들게 사 왔다며 자랑한 슈프림 티셔츠를 숨바꼭질하듯 만져보고 입어도 보고 술도 한잔 하였다. 그렇게 밤은 길어지고 눈감은 새벽의 꼬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벌떡 일어났다. 늦었다. 머리만 잠깐 매만지고는 의자에 걸쳐놓은 옷을 둘러 입고 급히 나서던 길이다.
'내가 오늘 좀 그렇지?'
'아니 좋아, 나도 그런 옷을 좋아해 취향이 독특하네'
'오늘 오신 손님이 젊어서 그런지 편안해하시며 좋아하셨어요'
결국 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했다고 한소리를 듣고는 말았지만 다들 내가 입은 줄무늬 티셔츠에 관심이 많았다. 나를 달리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은 늘 기러기로 사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혼자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궁금하다며 자주 술자리로 불러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챙겨주는 옷 입고 아침밥 잘 먹고 다니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김대리의 습관적으로 매만지는 굵은 금 목걸이가 부러웠고 책을 잔뜩 쌓아놓은 박팀장의 책상이 부러웠다. 그리고 탕비실에서 먹는 컵라면도 좋았다. 하지만 김대리는 아내가 사준 목걸이가 거추장스럽다며 투덜 댔었고 박 팀장은 책상이 좁아 책을 쌓아둔다며 회사를 욕했다. 그리고 탕비실에 웬 컵라면이냐고 투덜대는 소리를 뒤로 들었다.
그들이 평범한 나의 일상을 부러워하듯 나도 그들의 일상을 부러워했다.
늘 그러하듯 미팅을 잘 마쳤다는 핑계로 술자리가 이어졌다. 거나해진 취기에 아파트에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앞에 그 꼬마가 이번에는 동생까지 데리고 또 오르락거리고 있다.
안 되겠다. 이번엔 단단히 혼을 내주어야 할 것 같다.
'너희들 뭐냐, 어디에 사니?
무서운 말투에 동그랗게 뜬 두 눈이 말한다.
'우리 1층에 살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