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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Aug 18. 2024

우리 선 넘지 말자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여름이 선을 넘었다.

예전에는 8월 중순이 되면 동해안에 찬물이 감돌아 해수욕장도 문을 닫고 으레 껏 가을을 준비하는 감성으로 돌아선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올해는 8월 중순이 넘어가는데도 밤을 꼭 붙들고 있는 게으른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오늘도 뻐근한 몸을 새벽운동으로 달래고는 아내와 차 한잔 하며 TV를 보고 있다. (참고로 우리는 정규방송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시청한다) 마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나온다. 너무 씨끄럽게 웃고 떠드는 정신없는 방송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라 건성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귓속에 뻑 하고 들어가는 팩폭이 꽂혔다.


차승원 배우가 나와 한참 이야기 하더니 갑자기 유재석 씨가 어떻게 유해진 씨와 오래가는 절친이 되었나 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대단다.


'사실 유해진과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뭘 해도 풀리지 않는 사이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감각적으로 마지노선을 절대로 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친해질수록 상대의 영역의식에 둔감해지고, 그래서 여러 가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허물없는 사이니 괞챦겠지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무심코 한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어쩌면 상대방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친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청소년기에는 친구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미주알고주알 네 것 내 것 없이 같은 길을 걸어야 절친이라 생각했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대체적으로 질풍노도의 시대에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존심이 지키는 자신의 영역이 분명 있는데 그 선을 내주는 인내는 점점 벽을 치게 된다. 사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 친구가 지금까지 절친으로 유지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동창으로 아니면 동향으로 그냥 추억을 간직한 귀한 친구로 유지될 뿐 마음까지 건네는 절친의 영역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만다. 어디 그뿐인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회사동료 그리고 이웃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결국 사소한 선 넘는 행동과 말로써 상처를 주고 상처가 아픔이 되어 결국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 않던가?


나도 보면 지금까지 절친으로 유지하는 사람은 어쩌다 카톡을 주고받고 있으며 가끔 만나 소식을 나누는 정도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멀찍이 지켜보며 그의 행동과 말에 동의하고 같은 감정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깊이 간섭하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직접적인 궁금을 갖지도 않는 서로의 영역을 보호하며 유지해 나가는 좋은 사람들. 그 외는 팔로우/팔로워로서 맘껏 교류하며 관심을 나누고 산다.


그렇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다닌다고, 돈을 잘 번다고, 해외를 많이 다녔다고 절친을 가르쳐 든다면 서서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해도 절대 그렇지 않은 절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시험해 봐라 그럼 갑자기 그 친구 일상에 바쁜 일 많이 생겨 만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환갑이 넘어가서야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아내와 자식에게도 그렇다. 이제는 동창이나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나도 일정 선을 유지한다.

그동안 제 잘난 맛에 살아온 것 같다.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사람은 왜 불행해질까? 고독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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