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산책을 마쳤을 뿐인데 벌써 10시가 넘었다. 나의 신체 시계로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침대로 들어오니 마침 아내가 구독하는 요리 라방이 한창이다. 침대에 누웠지만 책상머리의 소리에 절로 귀 쫑긋하고 있다. 마침 요리를 하면서 중간 기다리는 시간인지 갑자기 먹는 습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요지는 현미는 무조건 푹 불거야 하며 또 천천히 씹으며 먹으라는 것이다. 껍질이 단단하여 그러지 않으면 소화가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며 특히 옥수수는 껍질이 강해서 그냥 꿀꺽꿀꺽했다가는 소화가 안되어 장이 썩는다는 충격적인 검증 안된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다.
뭐래 ~
덧붙여 함께 맞장구치시는 분은 자기 아이들 사례를 들며 위험했던 경험담을 늘어놓기에 늘 소화가 불편한 나로서 긴가민가 빠져들면서도 끄덕이고 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정량만 먹자.
큰 아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다.
한참 지난 옛이야기지만 그때를 잊지 못하는 것은 내가 변한 부분의 이유가 있어서다. 당시 아버님을 모시고 동생이 일하고 있던 일본 교토로 놀러 갔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던가 무척 더웠었는데 동생과 같이 일하시던 분 께서 멀리까지 마중 나와주셔서 감사하게 편히 들어갔던 기억 그리고 무척 친절하게 잘 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또 동생의 배려로 맛난 야키니쿠 부터 아기자기한 음식들을 실컷 즐기고 그렇게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 또 그분께서 김밥을 맛나게 싸 오셔서 갑자기 먹으라며 공항에서 꺼내 주시는 것이다.
난감했다.
시간도 별로 없는데 먹으라 하신다. 당황스럽지만 그 친절에 조금 집어 먹다가 아버님께 남은 것을 버리고 가자고 하였더니 큰 손사래를 치시며 손주까지 다시 앉혀 놓고는 마저 급하게 다 드시는 것 아닌가 시크했던 젊은 나로서는 일어나 가버렸다. 당시 아무리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시며 음식의 아쉬움이 컸다지만 음식 남김에 너무 집착하시는 아버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시다 탈이라도 나시면 어쩌실까 염려도 되지만 못된 아들은 그저 못 본 체 회피만 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지금 똑같이 데자뷰가 되어 나는 꾸역꾸역 남기지 않으려 먹고 있고 아들놈은 남겨 버리라고 옆에서 핀잔만 늘어놓고 있다.
얼마 전에도 맥킨리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피자집에서 맛있게들 먹고는 싸 가져가기도 애매하게 남았다. 당연 아들은 그냥 일어서려는데 내가 마저 먹어야 한다며 조금씩 나누어 먹자고 했다. 하지만 강한 손사래를 치는 통에 내가 마저 먹었다만 또 돌아오는 내내 아들과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렇잖아도 소화제를 달고 사는 나로서도 참 이상했다. 왜 그런지 스스로 한심하기까지 하다. 분명 젊어서는 안 그랬는데,,
그 습관을 고쳐야 한다.
이제는 나이도 먹고 몸관리도 운동도 열심이니 남겨진 음식을 억지로 다 먹으려는 습관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집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적게 담기에 상관없지만 이렇게 여행을 하거나 외식을 할 때가 문제다. 그놈의 남기지 못하는 습관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습관을 고칠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것도 마침 미국에 와있으니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무엇을 주문하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짜다. 그러니 남은 음식 싸가지 않을 바에는 맘 편히 남기는 것이 새가슴의 나로서도 용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