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말로 밴프지역이 여행 절정기라서 호텔 구하기가 힘들고 개인 차량은 진입 안 되는 곳이 많고 또 넓은 지역이라 단시간에 구경하기에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곳이라 해서 이번 여행을 패키지로 신청하여 가이드의 안내에 따르기로 했다.
계약은 한국 유명 여행사에서 했지만 실제 현지 운영은 캘거리에 사시는 교민분이 운영하시는 여행사가 맡아서 하는 방식이다. 우리 팀은 대략 열아홉 분으로 젊은 친구들이 다섯 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나이대가 비슷한 50 이후의 어른들이었다. 첫날 기대에 가득 찬 눈들은 미국 스쿨버스에 검은색으로 칠한 형태의 차량에 탑승하면서부터 서로들 갸우뚱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예상 대로였다. 우리는 이 차량을 타고 매일 캘거리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밴프마을까지 편도만 2시간 넘게 이동하며 마치 매일 출퇴근하듯 여행을 했다. 이동시간이 길다 보니 틈만 나면 가이드의 화장실, 화장실 외치며 재촉하는 통에 화장실 노이로제가 걸릴듯한 이동이 힘든 단체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점은 특히 아쉬웠다.
하지만 긴 이동 시간 덕분에 좋은 것도 있었다.
지질학을 전공하신 가이드의 록키산맥의 암석과 나무와 풀 그리고 캐나다 인물과 역사 설명을 잠과 싸우며 매일 듣다 보니 덕분에 캐나다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채워졌다. 그리고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꾸깃꾸깃 종잇장처럼 말려진 엄청난 세월의 록키산들을 바라볼 때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감정에 낯설어하는 재미도 가득했다.
이렇게 시작된 4박 5일 캐나다 밴프여행은 일부 지역이 산불로 막히면서 ( 콜롬비아 대빙원/설상차로 만년빙하체험 - 페이토호수 - 보우폭포, 서프라이즈코너 - 모레인호수 - 에메랄드호수 - 자연의 다리 -존스턴캐년 - 레이스루이스 호수 - 벤프 곤돌라 ) 조금 변형된 형태로 진행되었다.
여행은 흥미로웠다. 멋진 비경과 자연의 속삭임 그리고 드러낸 오랜 역사의 흔적에 감탄과 울림을 받았다. 하지만 모두 스냅사진을 보는 듯 왠지 모를아쉬운 허전함은지울 수가 없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작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본 록키 산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가 아니면 너무 광활하여 빈 곳이 함께 보여 그런 것인지, 장구한 회색 역사 흔적에 압도당해서 인지 밀려드는 공허한 감정.
이것은 무엇일까?
드디어 정신없이 쫓아다녔던 여행 마지막날.
로키의 빙하가 만들어낸 '레이크 루이스'호수 산책을 했다. 절정의 비경에 감탄하며 둘레길을 걷고 사진도 듬뿍 담았다.
잠시 호숫가 벤치에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려 앉았다. 그래도 뭔가 찾던 것을 못 찾은 것 같은 아쉬움은 계속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마지막인데 마음을 내려놓고는 가이드 안내에 따라 쫄깃쫄깃 춤을 추는 벤프곤돌라를 타고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장관이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그동안 조각조각 흩어진 퍼즐이 제자리를 찾는 듯 각자의 머리에 빙하를 이고 병풍처럼 둘러 선 로키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느 곳에 눈을 둘지 아니면 어떤 것을 선택을 할지 빙글빙글 맴돌고만 있다.
아~ 이 감정을 어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감격하다가 문득, 여행 내내 계속 공허했던 감정의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몇천만년 막혀있던 시간들이 폭포수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게 달려들어 왔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울림이 컸던 여행을 마치고 안정을 찾자 몇천만년 버텨온 로키산들이 그동안 외쳐댔던 소리가 이제야 제대로 들려왔다.
'흐름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을 충실하게 의미있게 보내라'
거대한 빙하가 조용히 흘러가듯 우리의 삶도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러니 아집으로 또는 타인을 위한 배려로 자신을 멈춰 세우려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며 늘 새로움으로 나가라 어차피 밟고 넘어서며 꿈틀대는 시간은 계속 흘러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