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힘
미제 참스캔디 아시나요?
알록달록한 사탕 그림이 있는 파란색 깡통의 미국산(Made in USA) 참스캔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과자 하나 만들기 어려웠던 1960대,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무렵 우연히 이 사탕을 맛보고는 천국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맛이!"
구멍가게에서 사 먹었던 눈깔사탕이나 알사탕과는 차원이 다른 독특한 과일향과 싸우어한 맛.
파란 깡통 안에서 구슬처럼 빛을 내던 연두, 자두빛, 빨강, 노랑, 흰색 사탕의 자태. 놀라운 건 색깔마다 맛이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엔 '미국산'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고 '미제', 또는 '미제물건'이라는 표현이 더 흔했는데요. '미제 하면 좋고 귀한 물건, 국산 하면 어설프고 조악한 거'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 따라 동네 근처 불광시장에 갈 때면 골목 한편에 작은 미제물건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저에게 신세계였고, 미국의 풍요로움을 알려주는 곳이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초콜릿, 버터, 분유, 소시지, 과자, 각종 통조림과 스팸 등이 진열대에 가득했습니다. 그 진열대에서 참스캔디 깡통을 처음 마주했습니다.
물론 어머니에게 '사주세요'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어차피 안 사주실 거라는 걸 알았고요. 그래도 가게 앞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재미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미제 가게 아줌마, 엄청 부자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일곱 살 즈음이었을까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일입니다.
안방에서 동생과 놀다가 우연히 장롱 한쪽 구석에서 파란 참스캔디 깡통을 발견했습니다.
'어, 이거 참스캔디 아니야?, 이게 왜 여기 있지?'
순간 묘한 느낌이 들면서 곧바로 떠오른 한 문장.
"아버지가 숨겨놓으셨구나."
깡통을 꺼내보니 뚜껑은 이미 열려 있었고 사탕도 꽉 차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미 먹은 흔적.
약간의 배신감과 "이미 열렸으니 조금 먹어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아빠가 혼자 드셨구나, 혼자'
동생 손이 다급하게 깡통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동생은 지난 추석에 맛봤던 그 '미제사탕'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나는 형의 위엄을 세우고 동생을 진정시켰습니다.
"야, 우리 딱 세 개씩만 먹고 제자리에 갖다 두자."
"아빠한테 혼날지 모르니까 너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우리는 신중하게 색깔을 고르고 하나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연두색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그 순간 입안에 퍼지던 새콤달콤한 인공 과일향은 신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참 어색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좋은 걸 숨겨두고 혼자 드시는구나."
어린 나이에 처음 느낀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나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지만요.
그날 저녁, 아버지가 퇴근 후 집에 오셨을 때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군요.
"너 장롱 속에 있던 참스사탕 먹었니?"
혼날까 봐 쭈뼛거리며 동생과 딱 세 개씩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발견 당시 뚜껑은 이미 열려 있었다고 했고요. 아버지는 난처하셨던지 야단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부터 먹고 싶으면 꼭 이야기해라." 간단한 훈계를 듣고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날 이후 그 깡통은 없어졌습니다. 분명 아버지 철제 캐비닛 서랍 속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서랍은 열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군것질을 좋아하셨습니다. 식사 후엔 꼭 과일을 드셨고, 가끔은 과자와 사탕을 드시곤 했습니다. 아귀 같은 아들 세 명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시고는 본인 몫은 따로 챙겨두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납니다. 아버지도 참.
그 시절, 군것질은 아버지의 소소한 낙이었을 겁니다.
얼마 전 추석,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던 길, 차가 막혀서 짜증이 날 때쯤 제가 준비한 사탕을 아들, 딸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내는 사탕을 좋아하지 않죠. 요즘은 다양한 사탕과 과자가 넘쳐나는 시대라 굳이 숨겨둘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 사무실 서랍에는 늘 종류별로 사탕과 과자 몇 봉지, 아몬드 같은 견과류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재고가 바닥나지 않게 관리합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혹은 그냥 심심할 때 손이 그쪽으로 향합니다.
부전자전.
아버지의 DNA가 고스란히 제 안에 살아 있는 걸 느낍니다.
이제는 고혈압, 고지혈증, 그리고 당뇨를 조심해야 하는 나이이니 자제하긴 해야 합니다. 담배는 한 방에 끊었고, 술도 자제할 수 있지만 군것질은 참 끊기 어렵습니다. 인생 최후의 소소한 즐거움.
그래서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마트에서 과자 코너를 기웃거리다 오징어땅콩과 짱구, 꼬깔콘을 카트에 담고,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누가바와 팥빙설을 집어 들고,
편의점에서 새로 나온 과자를 만지작거립니다.
마치 손자, 손녀에게 과자를 사주려는 할아버지 모습 같은데,
아직 손주는 없답니다.
(파란 깡통의 역사)
참스캔디는 미국인에게 오랜 세월 사랑받은 캔디(아마 1, 2차 세계대전 때도). Charms Candy Company는 1912년 설립. 1988년 Tootsie Roll Industries가 인수. 요즘도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온라인 구매 가능. 천연색소 캔디이며, 체리, 레몬, 라임, 오렌지, 파인애플, 라즈베리 총 6가지 맛. 국내에는 1990년대 롯데 사랑방선물사탕이라고 해서 참스캔디와 유사한 디자인의 사탕이 출시됨. 한때 잘 팔렸으나 참스캔디와 맛이 달라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