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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양 May 10. 2022

19 여름 한낮의 호러 드림 (1)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을 통한 불면증 극복


*자각몽(Lucid Dream, 自覺夢)
: 꿈을 꾼다는 것을 인식하며 꾸는 꿈. 자각몽 상태에서는 꿈의 내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by. 다음 백과)





어릴 적에 나는 불면증을 앓았다.


오히려 지금은 머리만 대면 아무 곳에서나 곧잘 숙면을 취할 정도로 잠이 많아 문제지만, 어릴 땐 그렇게 잠이 오질 않았다.-그래서 키가 이렇게 안 큰 모양이다.-


머릿속엔 온갖 상상이 가득해 밤이면 귀신이 나타날까, 혹여 강도가 들진 않을까 별별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더 그랬던 듯하다.


(지금은 돈을 준대도 보지 않는 공포물을 그땐 왜 그렇게나 좋아했는지 꼬박꼬박 무서운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챙겨보곤 했는데 아마 그 때문에 밤에 잠을 더 못 자지 않았나란 생각도 든다.)


항상 엄마 옆에 꼭 붙어 잠을 청했는데 엄마는 한참 잠에 든 새벽에도 나는 말똥말똥 깨어있기 일쑤였다. 밤은 낮보다 감성이 충만해지고 우울감에 잠식되기 쉽다고 그러던가.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면 그 말은 명백한 팩트다. 낮엔 누구보다 씩씩한 척 지내던 나였지만 밤엔 누구보다 겁쟁이였으니. 얼마나 쓸데없는 망상에 젖어 스스로를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였는지는 불현듯 ‘자고 있는 엄마가 혹시 귀신은 아닐까?’란 결론에 도달해 혼자 이불을 둘둘 말고 엄마를 피해 저만치로 도망가 꼭꼭 숨었던 일화로 짐작이 갈 거라 본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꼬마는 무수히 덮치는 상념을 애써 털어내고 잠을 자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양 세기, 따뜻한 우유 마시기, 스스로에게 자장가 부르기, 억지로 눈을 감고 호흡법 해보기 등등 안 해본 방법이 없었다. 수 개의 불면증 해소법을 동원했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그 무엇도 없었고, 그런 다양한 방법을 계속 시행하다가 지쳐서야 겨우 잠들곤 했다.


그런 내가 불면증으로부터 벗어난 계기는 ‘꿈을 창조하면서’부터였다.


꿈을 창조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을 안다. 가능한지도 의문스럽거니와 애초에 꿈을 만들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테니. 하지만 꿈을 만드는 것은 실로 가능하고, 난 유년기부터 여러 차례 시도와 성공을 거듭해 불면증을 이겨내고 원하는 시간대에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는 아주 잘 자는 몸이 되었고.


계기는 역시나 잠들지 못하던 어느 밤이었다. 문득 들었던 잠드는 게 좋아지면, 자고 싶어지면 그러면 내가 이 불면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시초였다. 자고 싶어 지려면 필요한 게 무얼까 고민해보니 답은 ‘행복한 꿈’이었고, 그 행복한 꿈을 꾸기 위해 눈을 감고 즉석에서 스토리를 구상했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만들어낸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로 나는 자주 그렇게 꿈을 만들었다. 꿈에서 난 동화 같은 판타지 세계 속을 여행할 수도 있었고, 평소 동경하고 좋아하던 연예인과 만나기도 했으며, 재미있게 본 책이나 영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잠드는 게 하나의 과업처럼 느껴지던 이전과 달리 자는 게 즐거워졌다. 자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깨어나도 중간에 꿈이 끊겨 아쉬울 땐 도로 눈을 붙이기도 했다.


잠이 익숙해진 후론 (아주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날을 제외하고) 꿈을 만드는 일을 관뒀지만, 부작용(?)이랄까 그런 비슷한 게 생겼다. 보통 꿈이라 함은 장면도 빠르게 전환되고 사건 전개도 뒤죽박죽이며 금세 휙휙 새로운 꿈으로 덮여 깨고 나서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닌 게 일반적이나, 나름 기-승-전-결의 틀이 있는 스토리를 구상해 꿈을 꾸다 보니 몽(夢) 중임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전개가 매끄럽고 호흡이 긴 꿈들을 꾸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부작용이 아직 현재 진행형이란 것과 더 이상 ‘행복한 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굳이 꿈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으니 머릿속에 담겨있던 무의식과 현실 경험 등을 반영해 꿈이 알아서 생성되곤 하는데, 그런 꿈들 역시 대체로 진행이 자연스럽고 러닝타임이 꽤나 길다. 어차피 깨면 그만인 것을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물론 간혹 단순하고 기분 좋은 꿈들도 꾸긴 하지만) 대개 저절로 생겨나는 꿈들이 잔인하고 서늘하고 절로 소름이 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도 좀 많-이 잔혹 서사라서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다.



피를 보는 것을 정말 싫어해서 평소에 공포 스릴러 장르는 거들떠도 안 보고, 등장인물에 대해 감정이입을 과도하게 하는 편이라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질 만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도 기피하는 타입인데 어째서 매번 이런 꿈을 꾸는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어릴 때 많이 읽었던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나 추리소설의 영향인 건지 아님 나도 모르는 내 이드(id)가 실은 공격성과 폭력성으로 잔뜩 물들어 있는 건지. 아무튼 이런 꿈을 꾸면 그 후유증이 참으로 오래가서 종일 괜스레 우울하고 찜찜하고 그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웰메이드 4D 영화 하나를 보고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매우 불편하지만 묘하게 자꾸 생각나는 그런 영화를.


그때부터였다. ‘꿈 기록’을 시작한 게. 내게 충격을 준 그 꿈을 기억하고 싶기도 했고, 먼 훗날 스릴러물을 즐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 꿈을 시나리오화 해서 영화로 제작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몽상이 들어서였다. 또, 꿈속에서 마주친 인상적인 사람들을 어렴풋이나마 계속 기억하고도 싶었다.


몰입감이 센 꿈을 꾸다 깬 날이면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곧바로 핸드폰을 찾아 메모장에 꿨던 꿈을 상세히 적어 내리는 게 습관이 됐다. 휘발성이 강한 꿈의 특성상 왜곡 없이 생생하게 기록하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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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핸드폰에 많은 꿈 기록이 있었는데, 옮길 새도 없이 이불 빨래와 함께 세탁기 안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바람에 아까운 꿈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남아있는 일부와 앞으로 또 새겨질 새로운 꿈들 중 특히 소개하고 싶은 꿈을 간추려 종종 업로드해보려 한다. 꿈과 공포 스릴러물에 흥미가 있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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