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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 Apr 29. 2023

덕질은 자연스럽게

여행으로 덕질을 탐내 보았어요.

  유럽에서 살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한 많은 여행을 다니자고 가족들과 이야기했다. 스타벅스를 좋아해서 여행 가면 늘 스타벅스를 방문하고 여러 컵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지인이 있다. 멋있다. 무엇인가 푹 빠진 매력을 가진 사람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가족도 여행의 테마를 가져보자고 빅오가 먼저 제안해 주었을 때, 그 대화가 즐거웠다. 각자의 영역을 정한다. 빅오는 미술관, 리틀오는 열쇠고리 모으기 그리고 나는 각 나라의 고유 아침을 먹어보기로 했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5개월이 지났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주말을 활용해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우리는 여행의 테마를 유지했을까?


대답은 네. 니오.     






 어떤 여행에서는 연휴 시즌이라 미술관과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고, 열쇠고리보다 더 탐나는 기념품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무렵에 ‘아차차 내 테마를 생각도 못했네?’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리틀오는 열쇠고리 모으기에서 나라별 해피밀세트를 먹고 장난감을 모으겠다고 테마를 변경하기도 했다.


 무엇인가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었나 싶은 나는 덕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몰입의 즐거움이 전문영역으로 확장해서 성공하는 스토리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인지. 덕질로 배움에 꽂히고 인생 역전하는 반전을 꿈꾸었던 것인지. 가족이 같이 이런 전문성을 가져보겠다고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희망찬 미래를 김칫국 마시듯 드링킹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았던 상태였던 것 같지만.






 영어가 안 통하고 키오스크가 없는 나라에서 해피밀주문은 난이도가 최상급이다. 옵션 선택이 어려워 모든 옵션이 주문된 경우도 있고, 햄버거 대신 너겟이 대체되는 경우도 있었다. 더욱이 미국의 맥도널드를 유럽에서 먹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것만큼 가격이 높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맥도널드 해피밀을 주문하면 매우 성가셔했다.


하지만 덕질을 향한 나의 경외감은 성가신 해피밀 주문도 해내게 한다.

'그래. 우리 아이가 덕질을 경험해보겠다는데. 내가 이 정도는 서포트해야지.' 라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하는데 맥도널드에 들리지 못하고 출발하면 아이보다 내가 더 애가 탔다. 마지막 맥도널드를 지나치는 고속도로에서 참지 못하고 빅오와 리틀오에게 묻는다.

"리틀오가 나라별로 맥도널드에서 해피밀 세트 먹자고 한 것 잊었어?"

"응 알아. 근데 괜찮아. 지금은 배 안 고파"

'그랬구나..  괜찮았구나..'

덕질은 만들어줄 수도 없고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어색했다. 자연스럽게 좋아서 하던 일이 쌓이는 것일 텐데 그 의미를 퇴색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만의 여행 성격을 찾아보고 싶었다.

가성비 타입? 음. 아니야. 우리는 바가지도 쓰는 일도 종종 있고 안전한 걸 추구하기도 해.

럭셔리 타입? 음. 아니야. 우리는 삐그덕거리는 좁은 침대에서 셋이 자는 선택도 해.

미식가 타입? 음 우리는 맛집을 가기도 하고 되는대로 먹기도 하는데.

계획형적인 타입? 즉흥적인 타입? 휴양형 타입? 활동형 타입? 행동파 타입?

무엇하나 딱 이거구나 싶은 타입은 없다. 우리는 타입이 없는 타입인가.


그래. 우리의 여행은 고무줄 타입이다. 잔뜩 힘을 주었을 땐 팽팽하게, 힘을 빼면 느슨하게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행을 돌아보면 시간단위로 계획 세워서 관광하는 여행을 잘 소화했다. 그렇더라도 날씨가 궂으면 명소를 포기하는데도 크게 불협화음이 없었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끼니를 넘기기도 하고. 때로는 힐링하고 때로는 관광하고 때로는 체험하고. 물론 여행에서 사소한 다툼은 늘 있었다. 그런 어긋남을 맞추어나가는 과정이 우리가 가진 고유함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그토록 원하던 여행의 특색이 우리도 모르게 하나씩 쌓이고 있었다. 빅오는 인스타로 짧게 여행의 기록을 남겼고 리틀오는 여행마다 기념품을 사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행의 나날들을 조금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계획과 다른 테마일지라도 무엇인가를 꾸준히 했던 것을 칭찬하련다. 혹여 그 무엇인가가 끊기거나 새로워지더라도. 꾸며서 무엇인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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