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크고 나도 크고
육아를 하며 '어렵다' 느끼는 일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감정을 다듬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언제쯤 능숙해질까?
리틀오와 함께 미술관에 가기로 한 날이다. 헝가리의 미술관 위치는 페스트지역이고 우리 집은 부다 지역이다. 서울로 따지면 강북에 살고 강남 도심지로 향하는 것과 흡사하다.
대중교통으로 페스트까지 가는 길은 익숙하다. 운전을 하지만 운전하기 싫어서 대중교통에 빠삭해졌다. 그런데 비 오는 오늘 아침에는 주차장에서 서있는 차가 나를 비웃는 듯싶다.
'다리 건너는 운전이 두려워 나를 사용하지 않다니. 비도 오는데 어리석구먼‘
그래. 차로 가자.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애 데리고 뭐 하는 짓이야. 가는 길, 오는 길 그리고 주차장까지 빠삭하게 검색한다. 의외로 주차시설이 현대적이고 안정적이다. 갈만하다 마음먹으려고 자기 암시를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로 가는 것에 대한 구미가 당겨지지 않았다.
도대체 운전에 대한 이 막연한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부모님 댁에도 지하주차장에서 잠자고 있는 승용차가 한 대 있었다. 그 시절 대한민국 중산층의 표본처럼 열심히 일 하셨고 집과 차를 순서대로 마련하셨다. 당시 국민차, 은색 소형 승용차, 엑셀을 첫 차로 선택하셨다. 차가 생긴다고 들었을 때 꿈꿨었던 이미지가 있었다. 아빠는 운전석, 엄마는 조수석, 언니와 나는 뒷자리에서 타고 주말마다 나들이 가며 하하 호호 웃는 그런 모습. 그때나 지금이나 TV를 너무 많이 봤던 것인지. 아무튼 막연한 나의 상상 속 우리 가족 모습은 그랬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과 매우 달랐다. 아빠는 그 차를 이용하지 않으셨다. 초반에 어려움을 느끼셨었는지 운전은 그만두시고 가끔 나가서 시동을 걸어주고 차를 열심히 닦으셨다. 그 모습이 답답했던 엄마는 가끔 용기 내서 마트나 급한일에 운전대를 잡으셨다. 그런 날에는 늘 두 분이 크게 다투셨다. 아빠는 엄마의 굼뜬 반사작용에 화를 냈고 엄마는 본인은 못하면서 훈계를 한다고 성내셨다.
엑셀이 움직이는 횟수도 적었지면서 조수석의 주인도 바뀌었다. 아빠에서 언니 그리고 나. 조수석에 앉았다면 엄마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어야 했다. 엄마는 내비게이션을 읽고 운전을 동시에 할 수 없었기에. 조수석에 타면 바싹 긴장해서 운전한 것 같은 피곤함을 느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늘 긴장감으로 기억되었다.
부모님께서 자동차 사용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전달해 준 것은 맞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그분들을 원망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부모님 입장을 고려해 보자면 남들도 사니 그분들도 차를 구매했고, 막상 운전해 보니 본인들과 안 맞았을 뿐이다.
다만, 나 역시 아이에게 그 불안감을 똑같이 전달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아이와 나눈 대화에서
"리틀오, 다음 방학엔 엄마랑 네덜란드 갈래? 아빠는 회사일정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네덜란드에 레고 마을이 있데"
"아.. 별론데?"
"왜 그래? 아빠랑 함께할 수 없어서? 아빠가 그 말 들으면 좋아하시겠네"
"아니 엄마가 네덜란드까지 운전하는 차 타는 거 싫은데"
"아니야.. 네덜란드는 여기서 많이 멀어서 엄마가 운전해서 못가"
"오 그래? 그럼 비행기야? 가자 가자"
"엄마가 운전하는 차는 불편해?"
"엄마는 가는 길은 잘 가. 그런데 새로운 길 가면 말도 못 걸게 하고 노래도 못 듣게 해서 그런 길에는 아빠가 있어야 해"
가볍게 스쳐간 대화였는데 그 간의 스트레스가 짐작되었다.
운전 경력은 어느덧 10년이지만 초행길에서 실수가 더러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예상하는 시간보다는 대부분 오래 걸렸다. 목적지를 잘못 찍어서 돌아가기도 했다. 실수가 많은 만큼 긴장도 많이 했었다. 그때마다 나의 조수석엔 대부분 아이가 앉아있었고 아이도 함께 걱정하고 긴장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끼어들어" 이렇게 아이가 말하면 “엄마 지금 집중해야 하니깐 조용히 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 아이는 음소거 모드로 기다려줬다. 삐쭉삐쭉했던 것 같기도 하고.
강한 불안의 표현은 무의식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 아닐까? 내 불안을 너도 함께 감수하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를 완전하게 탓하지 말아라. 나는 이미 전달했으니 너도 이 감정을 느껴보라 말하는 것 같다. 불안은 전염성도 강하다.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를 방어하며 타인 역시 불안하게 만드는 기묘한 기운. 그래서 자신 있게 리드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실제 자신감이 있든 없든 그 순간의 불안감을 혼자 가지고 책임지는 것이니. 그렇다고 감정을 완전히 숨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드러냈고 그 대상이 아이였다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최근 딱 한번 나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있다. 자신 있게 운전할 수 있었던 쇼핑몰로 출발했는데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은 전혀 모르는 길이었다. 속으로 당황하고 갈등했는데 내비게이션을 믿어보자 마음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중얼거렸겠지. '어! 이길 아닌데? 헐 어떻게 왜 이래? 나 어디로 가?'
그날은 그냥 왠지 마음속으로만 불안하기로 했다. 이 정도는 입 밖으로 표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를 잘 찍었는지만 다시 확인해 보고. 침착한 연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연기는 통했다. 연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입이 근질근질했고 어려웠다. 이것으로 어른스러움에 조금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미술관행은 비가 오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련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조수석에서 스트레스받았던 어린 나의 마음 역시 돌보아 주고 싶어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한다. 스스로가 다리 건너는 운전을 할 마음이 들 때까지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