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까 싶었던 부다페스트행은 우리를 이곳에 살게 했다.
커다란 짐가방 두 개 들고 왔는데
가방 가득히 넣어도 담을 수 없을 짐이 생겼다.
세 식구의 젓가락 숟가락 두벌만 있어서 밥 먹는 것조차 불편할 때도 있었다.
언제 또 숙소를 옮길지 몰라 짐을 풀지 않았고
여행 온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자 마음먹어도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앞일을 계획할 수 없는 막막함에 잠이 오지 않았다.
놓고 온 것에 대한 미련이 깊어졌고
지금 같이 있는 사람에 대한 원망도 생겼었다.
기약 없지만 이곳에 얼마간 더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집이 생겼고
차가 생겼고
생활도구가 생겼다.
계절이 좀 더 포근해지면 입을 옷은 없지만 그 정도는 살 수 있다.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삶이 꾸려져 가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방랑적인 삶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인생에서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니
그 기회를 나와 남편이 만든 것인가 싶다.
안될 수 있었던 해외살이를
어떻게든 알아보고 결정하고 행동해서 해볼 수 있게 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은 의지의 동물인가.
의지를 표현하면 그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지금 이곳엔
방충망이 없고
나와 아이의 물건이 없고
한국엔 정리하지 못한 물건이 많다.
아직 쓰던 내 소유의 물건에 대한 미련이 있다.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것들이 없어 느끼는 불안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별탈없이 살아지는 이 생활이 감사하다.
가족 안에서
네가 못하면 내가 하면 되고
내가 못하면 네가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아간다.
힘이 들면 잠깐 쉴 테니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해도 편안한 쉼이 되어준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살아가는 것에 실감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말로는 쉽지만 행하기 어려운
가족사이의 의지라는 것을
이곳에서는 경험해 본다.
그래서 지난 5개월은
우리 인생에서 세찬 바람이 불었지만
따뜻한 온기가 있는 시간이었다.